마을의 변화와 생활공동체 가꾸는 일꾼들

광양읍 용강리는 옥녀봉과 마로산 아래에서 동천으로 뻗어가는 사이에 와룡, 관동, 기두, 검단, 석교, 강정 등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었다. 남해고속도로 광양 나들목은 동천과 용강리를 맴돌며 만들어졌다. 이곳의 옛날 풍경은 동천에 흐르는 물로 농사하며 고기도 잡고 산나물 캐러도 갈 수 있었다. 산과 물이 만나고, 사람의 생산 활동이 풍성하게 펼칠 수 있는 이곳에서 광양 역사가 시작했던 만큼 미래의 숨결도 용틀임하고 있을 것이다. 개천에 든 소가 양쪽 언덕의 풀을 즐기듯이 넉넉한 마을이다.

베틀머리 모양의 땅에 깃든 기두마을

기두(機頭)는 북쪽 옥녀봉의 옥녀가 베틀에서 베를 짜는 모양의 머리에 해당된다 하여 ‘베틀머리’다. ‘배트머리’라고 발음하므로 관동 입구까지 들어온 배들이 방향을 틀고 배를 타던 곳이라고도 한다. 고속도로가 나면서 베틀의 다리가 파헤쳐졌으나 나들목으로 차량이 많이 오가는 것은 베틀에서 실을 담은 북이 오락가락 하는 것과 같아서 마을이 풍성할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 1999년부터 용강택지개발지구 사업이 추진되어 창덕에버빌아파트가 우람하게 산을 마주하고 들어선 뒤, 용강초·중학교가 개교하고 용강도서관까지 문을 열면서 살기 좋은 마을이 구비됐다. 택지개발 사업을 진행할 때 마을 가운데서 고인돌과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발굴되어 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 유적지 조사를 했는데 고인돌 4기와 석곽묘 30기,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물 내리는 구멍, 통일신라시대 석곽묘 등을 확인했다. 출토 유물은 무문토기와 붉은토기의 조각, 돌칼, 돌끌, 돌화살촉, 작은 옥구슬 등 청동기시대를 알려주는 것들이다.

▲ 고인돌과 주거지를 이전해 놓은 기두마을 공원

마을 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하여 택지개발을 했기 때문에 예전 마을의 중심지는 그대로 보존했다.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 방식과 다르게 기두, 관동, 와룡 세 마을 주택은 그대로 살려두고, 공동주택단지가 별도로 들어선 것이다. 오래된 마을까지 모두 밀어버리고 택지개발을 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옛 마을과 새롭게 치솟은 공동주택이 공존하는 모습은 조화로운 그림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제철소로 출근하기도 좋고 고속도로 나들목을 통해 먼 곳을 드나들기도 편한 마을이라서 생활의 터전으로 삼는 이들이 많다.

삼거리가 사거리로 달라진 석정마을

석정은 자연마을 검단, 석교, 강정을 묶은 행정마을이다.

검단은 마로산성 아래 칼끝에 해당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작은 마을 앞뒤로 도로가 개설 되면서 숨통을 조이는 형국이 되었다. 1960년대는 철도가 마을 앞을 가로막았고 70년대엔 고속도로가 뒤편을 단절시켰다. 그 중 철도가 옮겨가고 언덕길로 사용되어서 마을의 연결 통로가 되었으니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 1935년 건축된 김녕김씨 재실의 솟을대문이 특이한데 폐쇄된 상태고, 주변의 폐가들도 손질을 기다리고 있다.

석교는 섬돌이 놓인 다리가 있어서 섬다리였고, 읍에서 옥곡과 골약 방면으로 나가는 세 갈래가 난 삼거리였다. 그런데 덕례리에서 읍내를 우회하는 도로가 개설되어서 커다란 사거리가 되었다. 예전부터 국도2호선이던 큰 도로로 스쳐지나가는 마을이었는데, 이제는 마을 앞 도로변에 기업과 영업소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상승하는 분위기를 풍긴다.

강정은 동천이 섬다리를 지나면서 물줄기가 커지므로 동강이라 했고, 이 강변에 정자가 세워져 부르게 된 이름이다. 하지만 정자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최근 들어 철도 터널이 셋이나 뚫리면서 주택은 모두 사라졌다. 자연마을이 없어진 것이다. 여성문화센터 옆에 오직 한 채의 주택과 공공시설들만 남았다. 마을 뒤 가오리산의 용강정수장은 광양읍에 물을 공급하고, 산 아래 폐선이 된 철도 터널은 와인동굴과 에코파크라는 휴식과 놀이 공간으로서 탈바꿈했다. 여성문화센터는 소규모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광양남초등학교가 마로초등학교로 이전한 곳에 들어선 ‘이음학교’는 전라남도교육청의 기숙형 중학생 위탁교육기관이다.

▲ 폐철도 터널을 활용한 와인동굴과 에코파크

광양읍 동천은 백운산 정상에서 옥룡면을 거쳐온 시내다. 큰비가 내리면 강정마을 앞으로 강물처럼 거센 물줄기가 쏟아진다. 그런데 광양읍 택지개발이 서천변과 덕례리 방면을 우선하고 보니 서천변이 먼저 정비되었다. 이제는 목성리 동뜰에 대규모 공동주택단지가 건축되고 있으므로 동천의 활용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마을 공동체를 가꾸는 일꾼들

기두마을 주택에서 평생을 사는 박점옥(84) 씨는 남편이 사회활동을 적극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농사를 부지런히 지으며 20대 후반 새마을부녀회장에서 시작하여 여러 단체의 회장을 역임했다. 사회활동 중에서도 향교의 전례에 정성을 들여서 여성으로서는 드문 성균관전인(典仁)이 되었고, 향교의 서예 프로그램에는 추천작가로서 참여했다. ‘광양시민의 상’과 ‘국무총리 상’, ‘평등부부 상’도 받도록 70대까지는 노인복지회관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창덕아파트단지의 강필성(51) 씨는 창덕마을공동체 ‘해봄’의 대표이며 창덕아파트 1단지 입주자 동대표로 역할을 한다. 밖으로는 광양교육희망연대 대표와 ‘전남 혁신학교 네트워크’ 공동대표이며, 광양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창덕아파트 주민들의 소통 창구를 만들고 벽화를 그리며 동아리 활동을 펼친 것이 전국으로 알려져 전라남도·광주광역시·KBC광주방송이 공동으로 주최한 ‘좋은이웃 밝은동네’ 시상식에서 좋은이웃 으뜸상을 받았고,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지방자치 활성화 공로자로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창덕아파트 1~2단지에 근무하는 경비원과 미화원 39명에 대한 노동인권을 보장하는 일도 마을공동체 업무로 받아들였다. 전남노동권익센터의 도움을 받아서 ‘노동인권 보호와 행복한 아파트 만들기 협약식’을 진행했다. 경비원과 미화원을 단기계약으로 묶지 않고 갑질 안하겠다는 등의 내용을 입주자회의를 통과시켜서 전남 지역 최초의 협약을 했다.

▲ 2020년 창덕아파트 경비원과 노동인권 협약식

용강도서관 건너 광양책빵 운영자의 한 사람인 문미령(57) 씨는 북큐레이터 활동가다. 5명이 뜻을 모은 광양책빵은 공정무역 커피를 싸게 공급하며, 북카페로서 그림책 낭독, 동아리 모임, 콘서트를 열어보려는 계획들을 가졌다. 코로나19 시대가 되어서 뜻대로 추진하기는 어렵지만 임대료를 충당하는 정도의 매출은 되었다. 광양책빵 운영자들은 책을 배달하는 문화운동을 펼쳐서 도서관과 책을 재미없다고 하는 아이들이 책과 연애하도록 이끌고 싶어 한다.

이동구(50) 목사는 용강중앙교회 옆에 2019년 11월 작은 카페를 마련했다. 컨테이너 박스 모양의 아담한 카페가 너른 마당을 안고 있다. 카페 앞에는 주택의 마당처럼 꽃과 나무를 심고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쉬고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했다. 교회의 프로그램도 카페에서 하면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고, 주민들이 각종 모임을 하는 공간으로도 사용되기를 바라고 운영한다.

2020년 7월 창덕아파트 1단지 옆 큰 도로변 상가에 ‘카페 로담’이 문을 열었다. 창덕마을공동체 ‘해봄’이 마을기업 운영을 권유받고 아파트 주민 9명으로 ‘주식회사 해봄’ 법인을 출범시킨 것이다. 영업 활동을 그런대로 펼쳐가는데 가을 들어 코로나19가 확산되어 매출이 줄어들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카페 로담은 마을기업으로서 해봄에서 진행하는 퓨전음식, 꽃차, 수납정리 등의 동아리들이 수익을 내고 싶으면 나아갈 방향의 가늠자가 될 듯하다.

(※ 이 글은 2020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비를 지원받은 연구보고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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