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으로 가며 - 고형렬

나는 매일 밤 수색으로 가는데 수색은 보이지 않는다.
모래내를 지나 소색 표지판 밑으로 들어가지만
여기가 수색 같지는 않다.
수색은 이곳이 아닐 것이다 수색이란 말만 있을 뿐이지

붙어 있을 뿐이지 수색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수색이라 하여도
안개가 낄 대 눈이 내릴 때
내가 매일 밤 수색으로 가면서
왜 내가 수색에 다다르지 못할까?
날이 갈수록 낯선 이곳 행정과 기사들이 수색이라 하지만
결코 수색은 이런 곳이 아니다 수색은
이렇게 화려하지 않은 곳이다.
거기는 적어도 태백 같은 산이 있고 석탄이 캐지고 삶 천지요
그리고 몇 개 상점에
철사로 걸린 남포등이 어둠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서울의 일부
아무런 꿈도 무서움도 없는 천박하고 저 더러운 식민의 부스럼이다.
나는 매일 밤 수색으로 가면서
여하튼 수색으로 가지 않는다.
수색은 지금 어느 어둠 속에서
가명으로 누명으로 앓고 있을 것이다.

※ 시인 고형렬

  1. 년 강원 속초 출생
  1. 년 현대문학 시 <장자> 발표
  2. 시집 <사진리 대설> 외 다수

국제시동인 <몬순> 결성
창작과 비평 편집부장 등 역임
현대문학상 외 다수

시인 고형렬은 겨울 바다가 차갑게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는 강원 속초에서 태어났지요. 가끔 그의 시에서 보이는 동해의 갯내음은 거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소설가 김훈은 그런 고령렬의 작품 속 바다를 두고 “경험되지 않고 인식되지 않는 새로움의 세계이며 현실에 대한 형이상학적 대안”이라고 속을 들여다봤지요.

하지만 아버지의 고향인 전남 해남군 삼산면 할머니 집에서 초등학교 다녔고 십대 후반 방황을 통해 진도, 구례 등지를 떠돌며 남도 특유의 정서를 몸에 익혀냈습니다. 특이한 점은 해남과 진도 등 그가 거쳐 간 대부분 땅에는 바다가 있다는 것이지요.

바다는 ‘열여섯 시간 노동의 대가로 4천원을 받는 어머니의 핍진한 바다’인 동시에 무한대로 뻗어 나가는 이데아이기도 한 장소입니다.

군사분계선이 지나가는 강원 고성군 한 면사무소에서 5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요, 그가 면서기 시절 어업담당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의 삶에서 바다를 떼어놓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그는 설악문우회 <갈뫼>에서 동인활동을 하며 시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다가 이윽고 1979년 현대문학에 <장자>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인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고형렬은 시원의 자유에 주목합니다. 그의 유유자적하고 초월적인 시풍은 여기에서 비롯된 게지요.

탈공간적, 탈영세적인 겁의 시간이 등장하고 시공을 무시로 넘나들면서 초현실적 세계를 내어놓지요. 분단과 통일이라는 딱딱한 주제조차도 그를 만나면 아프거나 서럽지 않고 순정해지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여전히 바다가 있습니다. 고형렬은 ““저는 이제 바다 속에 살고 있는 나를 그리워하며 철썩이는 해안에서 시달린다”고 털어놓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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