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읍 죽림리 대실마을

구한말 어려운 시대와 제14연대 반란사건, 6∙25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도 마을에는 인명피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아 주민들로부터 ‘피난복지(避難福地)’라 불리우는 마을.
광양읍 죽림리 대실마을이 그곳이다.

현재 대실마을은 36가구 66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주민 대부분은 감과 밤, 매실 등을 재배하며 살고 있다.

대실마을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대곡소(大谷所), 사라곡리(沙羅谷里), 사라곡면(沙羅谷面), 사곡면(沙谷面) 죽곡촌(竹谷村)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그리고 1912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사곡면(紗谷面) 죽곡리(竹谷里)로 불리다 행정구역 개편 후인 1917년 이후 광양군 광양면 죽림리(竹林里)에 속하고 현재는 광양시 광양읍 죽림리(법정리)에 속하여 행정리상 대실마을이 됐다.

대실마을은 큰 골짜기에 둘러싸인 마을이란 뜻의 대곡(大谷)이라 불렸다. 그러다가 대곡의 순우리말인 ‘대실’로 불리다 다시 한문식으로 음차하면서 죽곡(竹谷)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죽곡(竹谷)이란 원래 대나무가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의 문(文)을 의미한다.

또한 이 마을과 1km 거리 아래에 있는 호암마을과 관련해 호암의 정자나무 앞에 호랑이 형상을 가진 큰 바위가 있어 ‘범바구’라 부른데서 호암이름이 유래하였는데 이는 무(武)를 뜻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호암과 죽곡이 문무(文武)를 겸비하고 있다는 뜻이 담긴 이름을 갖고 있는 자랑스런 고장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대실마을의 문화유산으로는 봉서정(鳳棲亭)이 있다. 봉서정은 옛날 이 마을에 봉서재(鳳棲齋)라는 서당이 있어 주변마을 서생(書生)들이 모여 강학(講學)을 했고 특히 조선후기 영조 때 죽암 김곤(金坤)과 고종 때 전남 보성에서 입향한 소사(素史) 박중범(朴重範)이 진사가 되어 마을이름을 떨쳤으나 왜정시대에 봉서재가 없어졌다. 이를 지난 2003년 출향 인사 박태상의 발의로 옛 봉서재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했다.

국사봉 아래 봉황의 자리라 불렸다는 대실마을. 그래서 예로부터 인물이 많이 나기로 유명했던 마을이기도 하다.
대실마을 출신으로는 △박세래(제10대 옥곡면장) △박태상(조선대학교 교수) △박형관(조선대학교 교수) △박노회(광양문화원장) △박노신(광양시의회 의원) △박판규(국방과학수사연구소 2과장(서기관)) △박병호(행정자치부 제도혁신 과장(서기관)) 등이 있다.

또한 대실마을에는 예로부터 효자, 효부, 열부가 많기로 유명했다.
효자로는 이강학(1922년생, 어머님 병환위급 시 단지주혈로 소생케 하였으며 사후에도 3년간 지극정성으로 장례를 치러 마을주민들이 감동하였으며 향천의 추천으로 효자상 수상)과 박준호(1884년생, 모친의 완명 시에 단지주혈로 3일간 연명케 하였음)이 유명하고 광산김씨(光山金氏∙1856년생), 진양정씨(晋陽鄭氏∙1865년생), 광산정씨(光山鄭氏∙1896년생) 등이 이름 없는 효부, 열부로 전해져 오고 있다.


▲ 백성석 대실마을 이장
“주민 소득 위해 이장이 나서야죠”
예로부터 어른을 잘 모시고 효자효부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고 자랑하는 대실마을 백성석 이장.
약 7년 전 타지에서 돌아온 백 이장은 올해로 3년째 이장직을 맡고 있다.

공무원 출신인 백 이장은 이장을 맡은 후 현금출납부를 정비하는 등 모든 자료와 규약을 재정비해 마을 살림살이를 일목요연하게 문서화했다.
또한 대실마을 특산품인 감, 밤, 고사리, 매실 등을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하기 위해 재배면적 확장을 신청한 상태다.

백 이장은 이외에도 마을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하고 있다.
백 이장은 “마을 인근에 많은 돈을 들여 조성한 저수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세공원과 국사봉이 있죠. 이곳 저수지 주변을 개발해 보트도 탈 수 있고 쉼터도 만들고 등산로도 개발하는 등 다양한 휴양시설과 편의시설이 들어서면 마을 주민들의 소득도 더 늘어나고 관광자원으로서 가치도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백 이장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저수지 상부에 마그네시아 공장이 들어선 답니다. 수십억을 들여 조성한 저수지가 오염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마을의 생존권을 위해서라도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막을 것입니다”라며 “우리 마을 66명의 주민들 대부분이 노인들입니다. 7~80대 어르신이 대부분이고 90대, 100세가 넘는 분도 계세요. 그분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공해물질을 발생시키는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라는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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