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 오규원


오규원

강은 언제나
앞과 뒤
그리고
옆을 둘러보며
천천히
흘러간다

천천히 가다가
산이 좋고
물이 좋은
곳을 만나면
집과 집이
서로 정답게 껴안은
마을을
옹기종기
매달아 놓고

들이 시원하고
바람이 시원한
곳을 만나면
곡식과 채소가
다투어 자라는
논밭을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만들어 놓고

심심한 아이들이
뒹굴고 놀
넓은 모래밭을
펼쳐 놓고
염소와 송아지가
풀을 뜯고 쉴
풀밭도
펼쳐 놓고

강은
어두운 밤이 되더라도
달이나 별이 찾아와
목욕할 수 있도록
언제나
다니는 그 길로
꼬박 꼬박
그리고 천천히
흘러간다

시인 오규원

  1. 년 경남 밀양 삼랑진
  1. 년 시 <겨울나그네> 현대 문학 추천

시집 <이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외 다수

현대문학상 외 다수

  1. 년 사망

시인 오규원은 패러디에 능하다. 패러디는 야유와 풍자를 언어의 반란인 동시에 시대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자신의 시의 영역에 패러디를 끌어들인 이유에 대해 “전통적인 서정시를 가지고는 자본주의라는 이 거대한 체제와 싸우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 속성과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과감하게 패러디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그러한 면모는 그의 다섯 번째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상품적 메시지를 통해 형식을 파괴하고 일상을 떠도는 관념을 해체하면서 아주 불편한 시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런 면에서 오늘 밥상에 올려진 그의 시 <강>은 그러한 그의 형태를 깬 몇 편의 시 가운데 하나다. ‘잔잔함과 평온함’이 흘러가는 그의 강이 낯선 이유이기도 할 것이나 풍자와 야유를 들어낸 뒤에 그가 추구하는 시세계에 대한 염원의 한 자락을 읽을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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