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가수 박진영은 몇 년 전 인터뷰에서 “내가 성공한 것이 노력 때문인가 운 때문인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노력은 30%, 나머지 70%는 운이었다. 하늘에 감사했다. 누가 있구나.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진화에도 돌연변이가 큰 역할을 했고 첨단과학과 창업의 메카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도 운의 영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나 역시 지난 삶을 뒤돌아보니 37년의 직장생활과 퇴직 후 16년을 살아오며 참 운이 좋았다 생각되어 자주 벗들과 자식들에게 이야기하며 일상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산다. 젊은 시절 농협 시군조합 초짜 직원은 지금은 지역농협이 담당하는 영농자재 지원과 농사자금의 지원과 회수를 위해 버스나 자전거로 출장을 많이 다녔다. 교통이 끊기면 시골 마을에서 숙식을 할 때도 있어 교통사고나 연탄가스 중독, 현찰의 수수 과정 착오로 곤란을 겪기도 했으나 나는 그런 어려운 경험이 없었다. 퇴직 후에도 50여 작물을 삽과 괭이로 지어본 10여 년의 유별난 농사, 경로우대의 나이부터 4년간 가져본 국어국문학 공부, 칠순기념으로 다녀온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도보여행, 수필가로서의 글쓰기 등 벅찬 고비마다 성취와 깨달음의 이어짐은 누군가가 도와주듯 나에게 용기와 지혜와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독서와 글쓰기를 하고 노년에 갖는 행복한 삶을 숙고도 하고 정리도 해 보면서 어려운 문제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노력과 운은 어떠한 관계이며 구분의 개념인지 보완적 역학 관계인지를 생각해본다. 열심히 살며 무심코 잊고 지낸 맑고 푸른 하늘을 눈여겨보고, 더위와 가뭄을 쫓아주는 시원한 바람과 소나기도 경험해 본 때문 일까. 추운 겨울 땅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새싹들의 따뜻한 솜이불이 되고 세상을 새하얗게 감싸주는 눈도 보면서 세상에는 참 고맙고 소중한 것도 많다는 느지막이 깨달음도 일조한 연유일까. “좋은 인생은 좋은 이야기”가 돼서, 나이 들며 선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삶은 반반의 사실도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좋게 해석하고 즐겁게 기억하는 이유 때문일까. 세상이 고맙고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커져만 가는 것 같다.

집사람의 생일과 설날이 다가와 일남이녀의 자식들이 극구 말려도 형편에 맞춰 나누어서 방문한단다. 먼저 찾은 아들 부부와 두 손자 녀석이 용돈과 선물보다 더 큰 기쁨을 주고 간다. 나와 집사람이 세뱃돈을 주고 아들 부부가 우리에게 용돈을 주자 큰 손자 녀석이 우리 부부에게서 받은 세뱃돈을 엄마 아빠에게 주며 “나도 이제 6학년이 되었으니 아빠 엄마에게 용돈을 드리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들이 용돈은 어른이 되어 스스로 벌어서 주는 것이라 말해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작은 손자 녀석은 혼자 따라와 들린 종가댁에서 받은 세뱃돈 5만 원 중 3만 원을 형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닌가. 네가 받은 돈이니 네가 3만 원을 가져 라는 아빠의 말에도 망설임 없이 주고 만다. 녀석들에게는 모처럼의 큰돈인데 손자 녀석들 심성의 착함에 큰 기쁨을 경험했다. 아들딸보다 네 손자 녀석들의 맑은 눈동자가 ‘나의 일 거수 일투족’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생각에 즐거움과 숙연함이 교차하였다. 나는 이제 내가 아니라 아들딸의 아버지로 손자들의 할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다. 손자 녀석들의 착함이 나나 아들 부부의 노력으로 될 일인가.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인류의 역사는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키는 자기 수련의 역사이었다. 그 환경의 중심은 자연이 존재하였고 모든 것이 부족하고 품은 꿈보다 능력이 미흡한 인간은 조심과 겸손으로 기원하고 안도와 고마움으로 감사하며 살았을 것이다. 역사 속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편의 기준은 언제나 ‘착한 사람‘이었다. “착함은 행복과 궁합이 가장 맞는 모든 시대의 미덕”이기도 하단다. 누구나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크든 작든 말로 다 할 수 없는 노력 없이 성취한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의 노력보다 이웃과 사회, 세상과 자연에 대한 고마움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자신의 노력보다 고마움을 생각하며 운이 좋았다고들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박진영은 ‘하늘에 감사했다’라고 말하지만 마이클 센 델 교수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감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내가 강한 자여서가 아니라 요행 덕에 살아남았다.”라고도 말한다. 꾸준한 산행에서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깨달아가고, 사회의 일원이라는 책임과 의무감으로 서로 잘해보자며 격려와 감사를 주고받는다. 나보다는 자식들이, 자식들보다 손자들이 더 발전하기를 소망하며 생각과 언행을 한 번 더 숙고도 해 본다. 매사 살아감에 감사하며 살다 보니 노력보다 도움 받은 운이 더 소중하였다 생각되는 것은 이 또한 나이가 가르쳐 주는 최고의 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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