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인터뷰) 서우석 씨

“신문이라면 권력과 특히 자본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올곧은 편집권을 보장받아 시민들과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독립신문이 돼야 합니다”

광양시민신문을 직접 찾아와 소중한 주주가 되어준 서우석 씨가 창간을 앞둔 광양시민신문에게 던지는 한 마디다. 그는 광양읍 목욕탕 중 가장 오래된 오래된 곳 가운데 하나인 인서리 중앙탕에서 이발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이발관은 목욕탕과 한 통으로 트여진 4평 남짓한 곳이다. 서 씨는 이곳에서 사람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또 소통한다. 이 작은 공간은 그가 손님들이 전하는 세상 밖 이야기를 통해 광양과 대한민국을 가장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 씨를 만난 것은, 새벽 목욕탕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조금은 한가한 시간이다. 이 잠깐의 여유 동안 그는 하얀 이발사 가운을 잠시 벗고 좋아하는 황칠차(茶) 한 잔을 마시며 독서하는 즐거움을 즐긴다. 이발관 한 켠에 자리 잡은 서가에는 책들이 가지런하다.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죠. 틈틈이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는 일이 즐겁다”며“ 책이나 신문을 통해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일의 즐거움이 크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웃음이 너그럽다.

서 씨는 광양시민신문 창간 광고가 모 생활정보지를 통해 나오자 이를 스크랩 해뒀다가 지난해 12월 중순께 주주모집 시작과 함께 쌈지 돈을 모아 주주로 참여했다. 많은 이들이 건강한 신문의 탄생을 기대하며 각양각색의 사연을 담아 주주로 참여했지만 서우석 씨의 주주참여 이유는 퍽이나 남다르다. 아니 그 사연이 아프고 서럽도록 웅숭깊다 해야 할까.

그는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온 몸으로 겪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켰던 시민군이었고 가족에게는 잠시 동안 행불자였다. 현재도 당시 고문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다.

서 씨는“ 소시민이었던 내가 광주항쟁을 통해 가짜 세상 너머 진짜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며“ 하지만 당시 언론이 국민들을 속이고 군사독재정권에 아부하며 기생하는 것을 보면서 언론의 정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선지 그는 1988년 한겨레신문의 창간을 누구보다 반겼다. 국민의 목소리를 전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매체라도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서울생활이었지만 국민주를 사고 창간에 힘을 보탰다.

서 씨는“ 당시 생활이 굉장히 어려웠지만 군사정권에 아부하던 조중동이 서민들에게는 하나의 권력이 되는 현실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며“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버리고 정권에 유리하도록 기사를 왜곡하는 언론의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한겨레 창간에 작지만 정성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광양시민신문의 보내는 지지의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서 씨는“ 우리지역에 많은 신문들이 있지만 지배구조가 편중된 구조로는 (사주의)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민신문은 시민이 주주이기 때문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올바른 기사를 생산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직언했다.

또“ 다른 신문과는 달리 시민주로 탄생되는 시민신문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올곧게 전달해야 한다. 특히 지역토착 권력 등에 복종하는 신문이 돼서는 안 된다”며“ 광양시의 발전을 위해 제 갈 길을 가는 시민신문이 나오면 지역민의 신문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바른 시민주 신문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시민여러분도 도와줘야 한다”며“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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