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95명에 50억원 지급…1억원 이상 수령도

사회적응 제도라더니 인사적체 해소 수단 전락
“공정성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제도, 바꿔야”

‘무노동 무임금’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에도 지난 1993년 도입된 이후 28년째 꿋꿋하게 유지되는 공무원들의 '공로연수제도'가 다시금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랜 기간 근무한 퇴직 예정 공무원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지만 별다른 사회적응 교육 등 프로그램 참여 없이도 일정 기간 급여를 수령하는 게 옳지 않다는 따가운 시선에 더해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으로 자영업자 등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출근조차 하지 않고 월급을 챙기는 것이 맞느냐는 불만이 상당하다.

광양시는 지난 2014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에서 6개월에 이르는 퇴직 예정 공무원 공로연수로 인해 모두 50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광양시가 백성호 광양시의회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월부터 102명의 4~5급 공무원이 퇴직한 가운데 명예퇴직자 등 7명을 제외한 95명이 퇴직 전 공로연수에 들어가 이 기간 동안 작게는 연간 2700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급여를 수령하는 등 총 50억원 가까운 예산이 집행됐다.

2014년 1월부터 8년 동안 공로연수 기간 전 직급은 4급이 25명이었고 5급은 7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연 4천만원 이상 수령자가 66명을 차지했고 8천만원 이상 수령자는 21명으로 나타났다. 9천만원 이상 수령자는 15명이었고 이 가운데 1억원이 넘는 수령자도 3명이다.

여기에다 광양시가 최근 4급과 5급 직제를 크게 늘린 데다 정현복 시장이 향후 더 늘리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공로연수제에 따른 예산 규모가 해마다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30년 넘게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도 공무원 직위를 유지한 채 최고 1년간 쉬면서 월급을 받아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행정안전부가 원하는 공무원에 한해 선별적으로 시행하라는 권고안을 내놓았으나 일선 지방자치단체 반응이 시큰둥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무원 공로연수제도는 정년퇴직을 6개월∼1년 남겨둔 공무원에게 사회에 적응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1993년에 도입됐다. 시행 여부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에 맡기고 있으나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은 직원에 대한 보상’이라는 공직사회의 관행이 된 지 오래다.

공로연수자는 지자체별 자체 계획에 따라 민간 교육훈련기관에서 합동 연수를 받게 되는데 공로연수 기간에는 특수업무수당과 위험근무수당 등을 제외한 보수가 전액 지급된다.

영어나 컴퓨터 교육 등 민간 연수기관에서 받는 교육 훈련비도 지자체가 전액 지원한다. 광양시의 경우 공로연수자에게 소요되는 예산은 연수 인원에 따라 매년 차이는 있으나 지난해 경우 9억원이 넘는 예산이 이들 공로연수자에게 지급됐다.

문제는 이런 공로연수제도가 도입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행안부 예규는 공로연수 기간 교육훈련기관 합동연수를 60시간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당사자 재량에 맡기다 보니 실제 연수를 받는 공무원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 집에서 쉬거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뚜렷이 하는 일도 없는 공무원들에게 상당액의 예산이 소요되는 셈이다.

광양시 등 전국 수많은 지자체가 공로연수제도를 포기하지 않는 데에는 승진 등 공직사회 내부 인사적체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공로연수는 인사상 파견근무에 해당돼 결원을 보충할 수 있는 까닭에 퇴직을 1년 앞둔 공무원이 보직을 내놓고 공로연수에 들어가면 연쇄 승진 사유가 발생하면서 인사 적체 해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광양시 관계자는 “선배 공무원이 공로연수에 들어가지 않으면 후배 공무원의 승진이 6개월에서 1년가량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공로연수제는 지자체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창구”라고 말했다.

까닭에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구시대적 제도는 폐지하되 공직사회에도 임금 피크제와 같은 민간 기업 인사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퇴직을 앞둔 고위직 선배 공무원을 현업 부서에 배치해 후배 공무원의 인사 불만을 최소화하는 등의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요즘 같은 경쟁시대에 놀면서 세금을 월급으로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직사회가 내부 편의를 위해 당초 목적을 상실한 제도를 고집하는 것은 공정성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또 “시대가 변했고, 공무원 보수 수준도 민간 수준만큼 오른 상황에서 과거 후생복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퇴직 공무원의 사회 적응을 돕는 게 목적이라면 퇴직 직전에 교육할 것이 아니라 재직 중에 틈틈이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연수제도를 활용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으로 소상공인 등 모두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어기고 있는 공직사회를 어느 시민이 달갑게 볼 수 있겠느냐”며 “위기에 빠진 시민사회 분위기와 크게 동떨어진 공로연수제를 개선할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광양시 공로연수 인원수는 4급 7명, 5급 4명이다. 4급 재직자는 파견근무 포함 11명, 5급 재직자는 파견 포함 65명으로 최근 들어 크게 증가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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