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문화의 매력으로 번성한 칠성리 서북마을

광양읍 칠성리 서북마을은 옛날 서외리(西外里)와 당촌리(堂村里) 남쪽 지역인 남당(南堂)을 포함한 마을이다. 조선시대 칠성면 서외리라 한 것은 서문 밖이라는 것이고, 당촌은 곡물 창고인 당집이 있었다는 뜻이다. 서천 건너 봉강면 석사리에서 신석기 유물과 지석묘가 있듯이 이곳에도 지석묘와 원삼국시대 유물 산포지가 있었지만 택지로 개발되면서 모두 사라졌다.

광양읍의 중심 기능을 맡으며

서천을 끼고 있는 들판을 서평뜰이라 했고, 시냇물 건너는 서산이다. 읍내리에서 서남 방향의 마을이 서평, 서천, 서산으로 이어진다. 원도심 가까운 광양서초등학교 앞길부터 나아가 광양여자중학교와 광양여자고등학교가 자리를 잡은 부근의 주택이 마을을 이루고 들판, 시내, 산으로 펼쳐진 마을이다.

광양읍이 확장하는 시기에 서평뜰이 자연스럽게 개발되며 차근차근 채워졌다. 산림조합이 들어선 앞에 읍사무소가 2007년 이전함으로써 5만여 읍민을 품어주는 요람의 기능을 맡았다. 읍사무소 동편 어린이를 위한 희망도서관은 성북마을 출신 황재우 씨가 30억 원을 광양시에 기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2017년 개관했다.

▲ 광양읍사무소 전경

광양시새마을금고 광양읍지점이 2015년 서북 도로변에 입점하고 시민에게 문화 공간을 제공해준다. 영업장과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전시회나 공연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서 이용자의 선호도가 높다. 또한 2층에는 광양YWCA의 사무실이 있어서 시민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쳐 가고 있다.

이렇게 관공서가 자리하면서 서평뜰 택지 개발은 거의 완공되었고, 서천변으로 공동주택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내며 생동감을 더하게 되었다. 상아아파트 2동이 들어섰을 때만 해도 주변이 썰렁했지만 ‘이 편한 세상’과 ‘덕진의 봄’이 들어오면서 인기 있는 주택지가 되었고, 대단위 주택단지가 아니어서 자연과 조화를 이뤘다.

상가와 종교 시설의 번성

덕례리를 오가는 서산교에서 서천을 거슬러 오르는 길목에 ‘광양 불고기 파크’간판이 섰다. 이곳 상가는 불고기 식당이 특화되어서 조경 시설물도 설치했다. 읍내리의 좁은 가게에서 영업하던 불고기 식당이 옮겨오거나 새롭게 문을 연 식당들이 제마다 이름난 광양 숯불구이 맛을 선보인다. 시내식당, 광양한우불고기, 삼대광양불고기, 행복한한우 등은 일시에 수백 명의 손님 대접을 깔끔하게 해낸다. 아울러 해동가든, 세풍식당, 진주명가냉면 등의 다양한 식당과 개성 있는 카페들이 줄지어 영업을 한다.

상아아파트 입구에서 광양병원으로 난 도로의 상권은 읍사무소 주변까지 이어진다. 읍사무소 뒷길에 소나무 몇 그루가 편안하게 맞아주는 카페 소나무집을 운영하는 정미자(64) 씨는 주택의 담장을 허물고 차와 식사를 겸하는 영업을 한다. 식사하고 차 마시는 일을 한꺼번에 해결하여 시간과 경비를 절감해주는 카페에 좋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서 재미있다. 처음 카페 영업을 반대하던 부군도 손수 정원 관리를 해주면서 시민과 함께 하는 공간을 만들어간다.

▲ 카페 소나무집과 정원

마을의 이 골목 저 골목에는 신설된 교회들이 아담하게 자리한다. 교회와 십자가는 너무 많이 있어서 관심을 끌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데 공동주택 안길 택지 가운데 보광사란 절이 있다. 새로 형성된 마을에 전통적인 절이 들어서서 돋보인다. 현능(67) 스님이 보광사의 내력을 전한다.

80년 전, 구산 스님이 상백운암에 들어가 3년 만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하고 처음 설법을 한 집이 보광사가 되었다. 송광사에서 구산의 제자였던 현능이 2001년 보광사에 왔더니 스승의 냄새가 났다. 구산의 영령이 깃든 특별한 절인데, 소방도로에 편입되어서 이전을 하게 됐다. 보상비에 맞춰 산으로 가서 법당을 지으려 하는데, 많은 분들이 시중의 절이 왜 산으로 가느냐며 말렸다. 그래서 이곳에 대지 500평을 사고 맨손으로 절을 짓게 되었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모델로 삼고 처마를 길게 뻗도록 했다. 절은 문화재의 가치가 있어야 하고 조형미를 갖춰야 한다는 신념을 반영하여 3년 공사 끝에 2005년 준공한 것이다.

▲ 보광사 전경

생활하며 문화와 어울리는 서천변

광양시는 여러 마을과 다리가 이어진 서천 둔치를 손질하고 가꿨다. 잔디밭에 무대를 만들고 봄, 여름, 가을마다 꽃피는 화초를 가꾼다. 산책로와 자전거 길이 났고 쉬어갈 의자와 원두막이 있다. 시냇물이 흐르는 가운데 설치된 무지개분수가 작동을 하는 여름밤이면 상쾌하기 그지없다. 시냇가를 산책하다 좀 더 강도 높게 운동하고 싶으면 해발 253미터의 서산의 등산로와 둘레길을 이용한다. 이러한 서천의 중심은 개머리보가 있는 서북마을이다.

상아아파트에 거주하는 배순아(46) 씨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활동을 보면 학원 운영자라기보다는 공연의 마력을 내뿜는 예술가다. 연주자로서 공연하는 일은 언제나 희망 사항인데 음악학원의 선생님들과 함께 네 개의 독주 악기로 합주하는 ‘B 콰르텟’을 구성하고, 2012년 서천 분수대 앞에서 연주를 했다. 서산, 서천, 연주자, 관객이라는 네 가지 조합이 자연스러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배순아 씨는 시청 공무원에게 서천 분수대를 배경으로 한 수상무대를 만들고 산책로 아래 계단을 객석으로 삼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그대로 설치되었다. 이 무대는 광양시 예술인들의 찾아가는 공연장으로 널리 활용된다. 무대가 있는 서천변은 주민들의 산책길이고, 불고기 식당들이 밀집해 있어서 손님으로 왔던 사람들도 거닐면서 자연스럽게 관객이 되었다.

▲ 서천 무대, 2020 광양챔버오케스트라 연주

구선교회 사택에 사는 김양임(60) 씨는 광양YWCA 직전회장이며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사로서 여성가족부에서 인정하는 양성평등교육을 비롯한 7개 분야의 전문강사로 활동한다. 남편을 따라 1987년 광양읍 목성아파트 부근에 와서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서천변에 교회 지을 땅을 사서 1995년부터 5년 동안 시나브로 건축한 것이 구선교회다. 그렇게 땅을 사고 건축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변두리로 막연한 곳이었는데 주택과 상가가 채워지고, 서천 둔치가 축제장이 되며 달라졌다. 힐링하는 문화 공간의 변모를 살피는 것도 보람이다.

오래 전부터 사람이 터를 잡고 사는 마을은 나름대로 살만한 조건을 갖췄다. 우선 자연환경이 좋아야 한다. 산과 물과 들판이 연결되는 지점에 있는 마을들이 그렇다. 주택이 넉넉하게 자리를 잡으면 상가가 들어서고 관공서까지 갖춰지면 제법 번성한 마을이 된다. 이에 더하여 여유 공간에서 문화 활동이 이뤄지면 생동감이 솟는다. 서북마을은 이런 조건을 갖추고 매력 있게 가꿔서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찾아드는 활기찬 마을로 번성했다.

글, 사진 : 박두규 광양문화연구회장

(※ 이 글은 2020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비를 지원받은 연구보고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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