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는 여자 - 최승호

썩는 여자

최승호

 

그녀는 지하생활자가 되어간다

지하철을 타고 지하상가의 많은 물건들을

방에다 가득 채우는 그녀의 머리에

끈끈한 음지식물들이 자라는 것을

나는 보고 있다 그녀는

지하생활자가 되어간다 습기와 시멘트 냄새,

하수구의 악취,

그녀의 살가죽은 눅눅하고 퀴퀴하게

속으로부터 썩으며 곪고 있지만 아직

구멍이 난 것은 아니다 새끼들을 치고

부엌에 나타나 뻘뻘거리는

쥐며느리, 바퀴벌레, 그리마

축축한 벽지를 들고 일어나는 곰팡이와

그녀의 싸움은 결국 곰팡이들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밤이면 관 속에 누워 있는 여자,

천장 위에 이사 온 사람들이 못질하는 소리,

그녀는 조금씩 시체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발가락들은 헐어 진물을 흘리고

화장품은 더 이상 그녀의 주름살을

덮어주지 않는다 때때로 그녀도 책을 읽는다

늙은 학자의 흰 수염처럼 하얀 벌레들이 기어 나오는 책을

그러나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중얼대다 잠든다

컴컴한 문명 속의 이 문둥이 여자를

그 어디

햇볕 좋은 땅 위로 데려가

그녀의 머리에 끈끈하게

거머리처럼 자라난 음지식물들을 말려 죽여야 할까

 

※ 시인 최승호

  1. 년 강원도 춘천
  1. 년 현대시학 추천

시집 <대설주의보> 외

  1. 년 김수영 문학상 외 다수

 

최승호의 시는 괴기스럽다. 그것은 현대와 그로 인해 형성된 도시 속에서 자라나는 음험한 것들에 대한 탐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훼손된 휘황한 도시 이면의 속살은 썩고 부패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종말론적 결말과 맞닿아 있다. 현대문명을 뒤덮고 있는 온갖 병적인 현상과 죽임과 죽음이 흐르는 강을 마주하고 있는 시인의 시선은 내내 어둡다. 그것이 1970년대 이후 급격히 몰락한 농경사회를 대체한 천박한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다. 부패한 자본주의는 인간의 자동화된 습관을 조작해 끊임없는 가짜 욕망을 창조해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최승호의 시세계를 평론가 김현은 “거대한 변기의 세계관”이라고 명명했다. 파괴되고 버려지는 것들의 반복적 순환과정을 통해 산업사회의 인간이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를, 병든 인간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는다.

시 <썩는 여자> 역시 그간 최승호의 시 세계와 다르지 않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밑에 얽혀 있는 수많은 지하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지하의 세계에는 지상의 욕망을 뒷받침하는 분주함이 가득하다. 땀 냄새와 하수구에 숨어 서식하는 무수한 벌레들이 서식하는 공간인 지하의 세계에도 수많은 욕망들이 꿈틀댄다.

지상의 욕망이 뒤엉켜 누군가의 욕망이 누군가의 욕망을 집어삼키는 공간인 것처럼 지하의 욕망 역시 치열한 생존의 게임을 벌여지는 공간이다. 다만 드러내지 않음으로 인하여 음습할지언정 마침내 승자가 가려지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확실한 것은 그들 모두 심리적 불안과 강박 관념적 소외 의식에 빠져 있는 병든 주체라는 것이다. 병든 주체라는 점에서 그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가련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펼쳐놓은 뒤 시인은 이것이 헛된 수사에 불과하다는 채근을 시의 그림자 속에 숨겨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읽어내기에는 최승호의 시는 한 걸음 더 썩어 짓물러진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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