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동천과 서천에 흐르는 물이 눈이 시리도록 맑고 바위와 자갈과 모래가 눈이 부시도록 깨끗한 시절이 있었다. 맑고 깨끗한 물속에서 노니는 피라미는 물을 닮아 몸이 투명하여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여서 신기하기까지 하였다.


부족함이 많은 시절 모처럼 추수를 하고 탈곡과 도정을 하여 초가삼간 좁은방 윗목에 쌀가마가 놓이면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행복에 겨운 시절도 있었다. 마을 초입 당산의 느티나무는 여유롭게 가지를 뻗어 그늘을 드리우고 정겨운 매미소리가 시원함을 더해 주었다. 소는 고됨도 잊고 평화로이 되새김질하며 졸며 서 있고, 멍멍이는 차별 않고 꼬리를 흔들며 마을을 찾은 누구든 반가이 맞아주었다. 지게를 지고 들로 향하던 남정네도 물동이이고 우물로 가는 아낙도 야위고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가볍고 평화로웠다. 봄에는 꽃처럼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비 오는 날 무지개는 왜 그리 고왔던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과 조우하고, 무슨 말을 해야, 나에게서 향기가 나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고, 서로에게 살아가는 보다 나은 의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삶이 될까.


헤르만 헤세는 어려서는 방황으로 한때는 포도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세계대전 이후에는 정신적 고통 속에 10여 년 이상 칩거로 세상을 보냈다 한다. 쉽고 편하게 사는 것에 익숙지 못했으나 지팡이나 찻잔 등 가까이 쓰는 물건들을 아끼고 정으로 손때가 묻고 정원 가꾸기에 심취하며 삶을 아름답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가 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에는 철학과 종교 문제로 고뇌에 찬 얼굴이 아니라 밀짚모자를 쓰고 마르고 주름져도 해바라기를 마주 보며 환히 웃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맑은 공기와 물을 마시고 바른 생각을 하면 어릴적, 동서천 피라미처럼 깨끗하고 투명해 보일까. 내 몸과 마음에 무엇을 다복다복 담아가야 쌀가마처럼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풍요로워 보일 수 있을까. 고됨을 이겨 내고 죽음을 초월하는 소의 깊고 순박한 큰 눈은 무엇을 유심히 보며 그렇게 평화로웠을까.


유튜브에는 말년 운을 개선하는 방법이 뜬다. 표정과 자세를 바르게 유지를 하고 자신감으로 패션 감각을 업그레이드하며 고른 음식과 마음 관리로 피부를 윤택하게 관리하란다. 퇴직 후 나는 보폭을 넓혀 걷듯 삶의 일상을 조금씩 넓히며 변화해 보았다. 가능하면 밝고 고운 옷을 선호하고 모자나 스카프, 청바지 등으로 개성을 연출해 보았다. 산행과 팔굽혀 펴기 등 스트레칭으로 몸에 힘을 기르고 가슴을 펴고 허벅지에 힘을 주며 당당히 걸으려 노력하였다. 자식들이 사서 보내 주는 각질제거제나 자외선 차단제, 영양크림을 때에 맞추어 세면 후 꾸준히 발라주었다. 이제 칠십 중반이고 나무 양판이 쇠양판 될까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여성분들이 “연세에 비해 참 옷을 곱게 입으십니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고의성은 없어도 글을 쓰다 보니 일상 속 나보다 더 도덕적이고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한다. 때론 이웃들로부터 건강하게 노력하며 사는 어른으로 대접받기를 소망도 해본다. 그러다 보니 벗들과 카톡으로 주고받는 노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낸다는 판에 박힌 10 여 가지 항목 중 밝은 마음으로 살기, 몸을 꾸준히 움직이기, 독서 등 지적탐구를 하기, 과로나 고민 말기, 좋은 인과관계 유지하기 등 8,9가지는 의례 내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행복감을 느낀다. 항시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보고 좋은 쪽으로 해석하며 타인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기도 이제 습관이 조금은 된 것도 같다.


일생을 바쳐 삶의 주제를 고뇌와 열정으로 완성한 책들을 보는 즐거움을 늦게나마 알았다. 그러면서도 연고팀 프로야구의 대단했던 추억 속 영광을 고대하며 연패하는 경기를 욕을 하며 보기도 하고, 집사람이 즐겨보는 시답잖은 드라마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자식들 성화에 못 이겨 상경한 후 종합 건강 검진을 받고, 손주 녀석들 자전거 타는 모습도 보고, 자식들이 사주는 특색 있는 베트남·일본·중국·멕시코 음식을 먹고, 예약을 핑계 삼아 귀가 기차를 탔다. 방안퉁수라 그런지 자식들 집도 내 집보다는 덜 편한 것 같다. 자식들 사는 모습이 올망졸망해도 서로가 편해 보이고 손주 녀석들 건강하게 커가는 모습 보니 대견하고 고맙다.


“삶은 단순 무식하게 살아 내야 할 의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큰 바위 얼굴’ 이야기가 아니 라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고 현실화하는 힘이 있는 것. 글을 쓰며 나이가 드니 나의 삶이 자식들은 물론 주위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무겁게 다가온다.
오직 내 영혼의 자유를 꿈꾸며 그 누구의 평가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요즘의 삶이다. 등산 길에서 보게 되는 이름 모르는 나무나 풀들처럼, 거실의 석부작 풍란같이 햇빛과 물기와 공간을 공유하며 내 몫만큼만 충실하고 최선을 다해 뿌리내리고 가지 뻗기를 하고 있는지 성찰의 시간을 가져본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