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마동, 폭풍 성장하다

중마동의 변신은 무죄이다. 중마동은 광양시의 중심지이다. 행정의 중심지이고, 경제, 문화, 교육, 주거 등의 사회 전반에 걸친 중심 지이다.
그러나 중마동은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중마동’이라는 지명 명칭 자체도 없었다. 1980년 대 후반부터 ‘중마동’이라는 지역 명칭이 등장 하기 시작하여 30여 년이 지난 2021년대에는 광양시의 중심지로 급격하게 폭풍 성장을 하게 되었다.

▲ 1980년초반 중마동 일대 사진=신윤식 사진작가

 

1985년에 이 지역은 골약면에 속해 있었는데, 골약면 전체 2114세대에 1만 524명이었다. 1986년에 중마동이라는 명칭이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할 당시 전체 1441세대에 11만 267명이었으나, 2021년 3월말 현재 22만 952 세대에 58만 186명이 북적거리는 도시로 변모하였다.


그 이유는 1985년에 광양시 금호도에 광양 제철소가 들어서고, 더불어 광양항컨테이너부두가 시설되면서 급격하게 산업인구가 유입 되면서부터 폭풍 성장하게 되었다.
중마동은 1989.1.1일 전라남도 광양지구 출 장소가 동광양시로 승격됨에 따라 행정운영 등의 설치를 위해 그전의 중동과 마동의 첫 글자를 따라서 ‘중마동’이라 하였다.1)
1)광양시지편찬위원회, 『광양시지』 도서출판 홍 익기획, 2005, p.1085.


그러므로 ‘중마동’의 의미는 두 글자를 합쳐 명명한 지명이라 여러 가지 뜻이 담고 있다고 하겠다. 직역하면 ‘복판으로 달리는 말(馬)’을 뜻하고, 고을 지명으로 뜻풀이한다면 ‘날로 번 창하는 고을’ 또는 ‘중심고을’이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마동은 1980년 초에만 해도 광양군 골약 면에 속해 있는 조그마한 몇개의 촌락부락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고을이었다. 전답 농사가 주업이었고, 마을 앞에 광양만이 있어 수산물을 풍부하게 덤으로 얻을 수 있는 농경사회의 자연조건을 잘 갖춘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중동은 본래 골약면 지역이었는데 중동 지역내의 자연마을인 중촌, 용소, 길도 마을을 합한 지역이었다. 그 중 중촌이 한복판이 되므로 지형적 여건을 고려하여 그대로 중촌이라 한데서 유래하여 중동이라 하였다. 마동도 본래 옛 골약면 지역으로 마흘·애밑등·와우·사 동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마흘과 사동의 글자를 따서 마동이라 하였다.

▲ 1988년 2월 중마동 일대 사진=신윤식 사진작가

 

마동은 예전에는 마리라는 말이 변하여 마흘이라는 이름을 갖는 데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근처 산정 모습이 말(馬) 형국 같아 처음에는 마리라 하였는데 근년에 와서 마흘이라 개칭하였다고 전한다. 마흘은 가장 으뜸 되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1989.1.1에 전라남도 광양지구 출장소가 동 광양시로 승격되면서 동광양시는 10개 법정 동으로 확정되었는데, 그 중 중동과 마동을 묶어 중마동으로 명명하였다.
1995.1.1에 동광양시와 광양군을 각각 폐지 하고 도농 복합형태의 광양시로 거듭나면서 광양시 중마동으로 재편하였다. 행정, 중동, 길호, 와우, 마동, 제동 등 옛 마을들이 여기에 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옛 마을간 경계를 구분하기 조차 어려워지고, 지상 건물이나 유물들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오직 마을 터를 상징하는 표지석 등이 설치되어 있어 인근 일대임을 대충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 2011년 5월 중마동 일대 사진=신윤식 사진작가


중마동은 광양시의 개발계획에 의해 1988년부터 시작해 4차에 걸쳐 92만평의 신도시건 설사업을 추진했다. 제1단계 개발은 옛 지명 인 행정마을이었다. 현대 광양시청 청사가 위치한 지역으로, 당시에는 동광양시청청사를 짓고 주변에 관공서를 지어 동광양시 행정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제2차 개발지는 중마동 북서쪽인 용소·사동·불로·세동 마을이었다. 그리고 곧 이어 중마주 공2차아파트를 중심으로 중마초등학교 일대를 개발하였다. 무등파크맨션과 남양파크아 파트가 들어서고, 옛 절골 인근이 택지와 상업지구로 개발되었다.


제3단계라 할 수 있는 지역은 산업도로인 백운로 남쪽으로 옛 중촌과 오류 마을을 포함 한 지역이었다. 호반리젠시빌 아파트와 태영 아파트, 성호 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중동 초등학교, 중진초등학교, 백운중학교, 중동중 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어서 광양사랑병원과 동광양버스터미널, 광양중마시장이 들어서고, 더불어 이순신대교 먹거리타운과 같은 상권이 형성되었다.


제4단계는 옛 와우 마을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광양와우지구 도시개발 구역이다. 이미 중마우림필유 아파트가 들어섰고, 현재 광양동문굿모닝힐맘시티 아파트가 건설 중에 있다. 그 외 아파트와 주택, 상가, 학교 부지 등이 들어설 수 있도록 기반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머지 않아 중마동을 더 확충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동광양시 초기 단계에는 경제 상권의 중심 지가 광영동이었다. 동광양시출장소가 금호동에 있었지만, 경제 활기는 요식업이나 숙박업소, 매일시장 등이 마련된 광양동이 불야성을 이루며 크게 활기에 넘쳤다. 그러나 중마동에 동광양시 청사가 들어서면서 광양동의 상권이 일시에 중마동으로 넘어오고 말았다.

▲ 마동저수지 와우지구

 

중마동으로 몰려든 상권에 따라 중마동은 유입인구가 팽창하면서 제2, 제3의 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중마동 도시개발은 현재와 같은 규모의 도시를 사전에 계획하여 추진하 였다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개발하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관주도형 개발 도시임에도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도시 모습이 결여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광양시 관계자나 주민 들의 인식이 부족하거나 미래 전망성에 대해 미비했다고 보기보다는, 미처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 2019년 중마동 전경

 

그 근본에는 광양제철소가 제1기 공정에서 부터 제4기 공정까지 확장함에 따라 그 영향을 지대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광양시로서의 한계라 할 것이다.
이처럼 관주도형 도시개발은 그 의도성에 비추어 각종 시설이나 제도 등이 주민들의 의 식 깊이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이를 테면 마동저수지 생태공원에 비해 와우저수지 생태공원이 훨씬 전에 조성되었음에도 일반 시민들이 잘 모르고 있어 그 효용 성이 현저하게 낮은 경우라 할 것이다.


중마동은 지금 이 시각에도 변화와 성장의 대로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 광양와우지구 도시 개발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대교 해변관광 테마거리 ‘광양해비치로’ 조성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양해비치로 조성사업은 해양공원~금호 대교~이순신대교 9.4㎞ 해안도로에 달빛해변, 키네틱 아트광장 등 25개 감성 콘텐츠를 구축 하는 광양시 관광 역점사업이다. 이미 2019년 10월 광양해비치로 관문인 해오름육교를 준공 개통했으며, 마동IC접속교~삼화섬 일대 1 ㎞ 달빛해변에 바다감상존, 테마휴식존, 체험 놀이존 등을 조성하여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고 있다.

 

글·사진 : 박행신 광양문화연구회원

(※이 글은 2020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비를 지원받은 연구보고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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