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곳은 태인도 용지마을. 이제는 태인도가 아니라 태인동이라고 말해야한다는 분들이 많지만 난 ‘태인도’가 좋다.

내가 태어나고 현재도 살고 있는 태인도는 연관산업단지가 입주해있고 공장이 계속 들어서고 있어 대기 및 주거환경이 열악하지만 내가 국민(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해도 수많은 어족 자원의 보고, 황금어장으로 소득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김수로왕의 60세손 김여익공이 1642년 겨울 섬진강하구 해안에 표착한 밤나무 가지에 이름모를 해초가 부착한 것을 발견하고 채취 시식해 보았더니 양분이 많고 맛이 좋아 이듬해(1643년) 애기섬(현 OCI) 주변에 밤나무 섶과 대마무를 이용한 양식에 성공한 세계 최초 김양식지인 태인도.

내가 태어난 용지마을의 광양지역 전통민속놀이 용지큰줄다리기는 김의 풍작을 기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태인도는 섬이었다. 태인도 사람들이 골약면소재지(지금의 하포, 성황)에 가려면 태인도 도촌마을 나룻배와 금호도 도촌마을 나룻배를 타고 건너 다녔다.

이 두 나룻배는 사공을 정해 연간 두 번씩 매호마다 보리와 쌀을 걷어주었고 외지사람들은 도선료를 주었다.
태인도 사람들은 골약보다는 경남 하동 쪽 왕래를 많이 해 배알도나 배알도 인근 작은대섬에서 나룻배를 타고 진월 망덕으로 건너갔다.

이 사진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으로 기억하는데 용지마을 집에서 아버지형제모임(4남5녀)후 걸어서 배알도 인근 작은대섬에 가서 나룻배를 타고 망덕으로 건너가는 모습이다.

오른쪽 아래 남자아이가 현재는 1남1녀의 아버지가 된 나이고, 연두색 옷을 입고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계시는 분이 나의 어머니이시다. 나의 바로 뒤에 계시는 고모는 올해가 회갑이다. 고모부, 4촌 동생들의 모습도 있고 멀리 망덕이 보인다.

광양제철소 건설과 함께 연륙이 되어 나룻배를 타고 가던 일도 이젠 사진 속 추억으로 간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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