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섬진강을 끼고 남쪽으로는 넉넉한 들을 끼고 있는 명당이라는 이름 그대로 비옥한 토지가 자랑인 명당마을.

▲ 태인동 명당마을
특히 섬진강변에서 밀려온 토양이 수세기동안 쌓여 이루어진 토질은 농사에 더 없이 좋다.

전설에 의하면 도사 전우치가 명나라에서 가져온 황금 대들보를 궁기 앞바다에 감추어 두었는데 이곳이 현재의 명당들로서 금(金)이 숨어있는 길지(吉地)라 하여 명당(明堂)이라 불렀다고 전하고 있다. 또 명당마을은 잔디가 많이 있어 ‘짠디밭등’, 또는 대밭이 있다하여 ‘대밭등’이라고도 불렸다.

비록 태인동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지만 섬진강과 배알도 해수욕장이 유명해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명소가 된지 오래다.

원래 섬이었던 명당마을은 1959년부터 태인동 1번지인 배알도에서 궁기마을 사이 섬진강변을 잇는 농로의 제방을 막아 들이 형성되자 궁기마을 등지에서 1964년부터 이주, 마을이 생기기 시작했다. 1987년에는 62가구 2002년에는 51가구 현재는 45가구만이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다.

▲ 태인동 1번지 배알도
명당마을의 상징 배알도를 둘러본다.
태인동 1번지인 배알도는 명당마을 북쪽, 섬진강 하류에 있는 섬으로 옛 지도(여지도서 1760년, 대동여지도 1861년)에는 사도(蛇島)로 표기되었으며 뱀섬이라고도 불려오다 진월면 망덕리 외망마을 산정에 있다는 천자(天子: 명당이 있다고 전한다)에게 배알(拜謁)하는 형국이라 하여 배알도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명당마을은 섬진강 물이 흘러내리는 길목이라 과거 해태양식이 잘되어 일제 때 하동사람들이 이곳을 차지해 큰 싸움이 난적도 있었으나 기질이 센 태인도 사람들에게 당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서로 명당마을을 차지하려고 할 정도로 토질이 좋아 농작물이 잘 되고, 주변경관이 무척 수려하여 관광지로서도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명당마을의 배알도는 사라져가는 태인도의 옛 모습을 그나마 추억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아닌가 싶다.


▲ 김재은 명당마을 태인5통장
“명당마을에서 평생 살아야지”

명당들이 명당산단으로 바뀌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 속에 노 저으며 배를 타던 지난 시절의 추억도 또렷하건만 명당마을 주민들은 이제 또다시 터를 잡고 살던 내 집 내 전답을 내주고 떠나야하는 운명에 마주했다.

김재은 통장은 포근한 인상에서 묻어나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공해가 안 좋은 거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뿔뿔이 흩어지는 것 보단 늘 보던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것이 동네 어르신들의 뜻이고 나 역시 고향에서 평생 살 생각이네”

산단의 확장으로 이주가 결정 나고 태인도보다 훨씬 공기 좋고 환경도 편한 곳이 광양에 널렸는데도 명당마을 주민들은 동네에 남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비록 지금 발을 내딛고 있는 곳은 내어주게 되었지만 명당마을 주민들은 거처를 섬진강변으로 살짝 옮길 뿐 마을은 끝까지 유지할 것이란다.

김 통장은 산업화로 인해 김과 농사 터전도 잃고 뿜어져 나오는 매연과 먼지로 건강도 해쳤지만 새로운 일터로 인해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고 자식들 대학교육까지 시켰으니 그것도 다행이라고 한다.

김 통장은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얻는 게 있으면 내주는 것도 있고. 좋은 사람들과 서로 협조하면서 마을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게 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되묻는다.

자칫 사라질 위기의 명당마을, 다행히 공해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주민들의 결단으로 태인도 역사의 페이지를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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