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늬의 풀잎에 드는 햇살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이 그동안 써오던 ‘위하여’ 대신 ‘통.통. 통’ 하면서 커피잔을 부딪혔다. 말 그대로 통통 튀는 그 어감은 좋았으나 당최 무슨 소린줄 알아 먹을 수가 있나. 나만 외계인처럼 눈이 동그래져 무슨 소리냐 물으니 까르르 웃으며 알아 맞춰 보란다. 세가지 뜻이 담긴 통의 줄임말이라니 대뜸 밥통? 돈통? 똥통? 그랬다.

내 머릿 속에 든 것이 고작 그거란 걸 알아 챘다는듯 친구들은 아예 꺽꺽 넘어간다.
“야. 좀 고상하게 말해봐라. 차원을 높혀 보라구!” 애들이 그 차원 높은 걸 몰라보다니 인간사에 밥하고 돈하고 똥 만큼 고상한 게 어딨다구! 뻔뻔한 내 너스레에 이젠 대놓고 퉁박을 줬다. “야, 글쓴다는 사람이 세상 일에 촉을 세우고 살아야지 어째 그리 깜깜하냐!”
맞는 말이다. 잠만 자고 나면 신조어가 난무하는데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난 엉뚱한 해석으로 주변 사람들을 웃기곤 한다. 웃길려는 게 아닌데 내가 웃긴다니 좋은 일이다 싶다. 세상 웃을 일이 어디 그리 많은가? 그렇게라도 웃게 해주면 내 덕이 쌓이는 거다 우김질로 혼자 만족해 한다. 소외감? 전혀 없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어떻게든 통하더라 싶어서 태평하니 더욱 알아질리 만무하다. 게다가 거의 텔레비젼을 보지 않으니 신조어에 관한한 문맹에 가깝다. 인터넷도 내가 좋아하는 사이트만 시간을 정해놓고 들락거리니 그도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최근엔 즐겨보는 방송 ‘나는 가수다’가 있었는데 그나마 얼마전 종방해서 나의 신조어로 나아갈길은 더욱 요원해졌다.

처음엔 언어테러에 가까운 이 무지막지한 신조어들이 반감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사고를 전환해서 유연하게 생각해보니 이 또한 시대를 반영하는 자연스런 문화 현상이라 여겨졌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신조어는 있어 왔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은어라는 말대신 신조어란 말로 바뀐 것이다. 그 역시 은어란 말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신세대들이 주로 쓰는 말은 확실한데 우리 청년의 때처럼 같은 세대끼리만 숨어서 쓰는 말이 아니고 누구나 맘만 먹으면 통용할 수 있게끔 인터넷상에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어서란 생각이 든다.

이처럼 신조어가 난무하는 건 대중들의 욕구가 급변화 다변화 되고 있음을 대변한다.
좋게 해석하면 좀 더 새로운 것, 좀 더 기발한 것을 추구한다고 여겨지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현대인의 조급증, 끝없는 욕망, 혹은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불안함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그 일이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니고 노벨상을 탈 만큼 사회에 기여하는 일도 아닌데 누군가 끊임없이 만들어 대는 걸 보면 말이다.

이제 우리 생활과 뗄래야 뗄 수없는 인터넷은 전 세계를 하나의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 놨다. 미국에 살면서도 지구 반대편 고국의 소식을 아는데 1초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클릭 한 번으로 속속들이 지구촌 소식을 알아내고 소통하며 담론을 쌓기도 한다.
그 좋은 예가 미국의 월가 시위 “월가를 점령하라” 일 것이다. 미국의 상위 1%가 미국 전체 부의 50%를 장악하고 있다며 빈부격차 해소와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요구한 이 시위의 목소리는 미국 월가에서 출발해 전 세계 1500여개의 도시까지 삽시간에 울렸다. 경제불안과 부조리에 항의하는 이 시위가 언어도 다르고 국적, 문화도 다르지만 어떤 경위로든 소통이 됐다는 의미다. 동 시대 동 시간에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해서 하나로 뭉쳐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떨릴만한 감동이지 않은가! 그러나 한편으론 겁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 이 편리하고 감동적인 시스템을 작정하고 악용한다면 전 세계가 악으로 뭉치는 것도 순간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신조어도 소통의 일환임엔 틀림없다. 신세대들이 주로 만들고 주로 즐겨 쓴다는 특징을 감안했을 때 그들과의 원할한 소통을 위해서라면 신조어도 외면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신조어만 익힌다고 그들과의 부드러운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공감했을 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졌다 할 수 있을 것이다.여기서 신조어는 다만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게 다리 역할만 할 뿐이다.

그나저나 뭐였더라…….술잔을 부딪히며 찬찬찬은 아니고, 만사형통의 통, 운수대통의 통, 의사소통의 통. 이리하여 통.통.통!
정치판에선 요즘 국민들과의 소통을 제1의 과제로 삼기도 한다. 실천하기만 한다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적인 의사든 개인적인 의사든 개인과 나라를 발전시키는 소통이 원활한 그런 건강한 사회라면 의사소통을 제외한 나머지 두 통 즉 만사형통과 운수대통은 저절로 따라 오리라 믿는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