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의 쉴만한 물가

훈련소에서 분대장을 뽑을 때 일입니다. 조교가 와서 분대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추천을 하라고 하다가 조언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똘똘한 녀석들보다 어눌한 녀석들이 오히려 부족한 줄 알기 때문에 더 성실하게 열심히 하더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분대는 제일 첫 번째 번호였던 친구가 분대장을 맡았습니다. 이 친구 발음도 행동도 어눌해서 점호 보고 때마다 몇 번이고 혼자서 연습하고 연습해서 처음엔
몇 번 갈굼도 당했지만 진짜 누구보다 성실하게 그 일을 감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초등시절 반장에서부터 시작해서 학창시절 내내 선출하는 많은 대표들까지는 그래도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그 친구의 됨됨이를 따라서 대표를 선출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간혹 교사와 부모의 알력이 작용할 때면 그 친구는 여지없이 일그러진 영웅이 되었습니다. 이런 유의 대표들은 리더십을 인정받고 싶어 대부분 제왕적 폭군 형태의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친구가 있었는데 잘못을 해도 부모가 형사여서 문제가 되지 않았고, 수시로 갈취와 폭행을 일삼았습니다. 용기를 내서 대들다가 맞은 적도 있었지만, 불의한 일을 보면서도 후한이 두려워 분노를 삼킨 적이 더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 친구가 더없이 불쌍하게 느껴지고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제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잘 배워 살고 있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가 실리(實利)와 실용(實用)을 추구하면서 잃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도덕이 밥 먹여 주냐며 사람의 됨됨이 보다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한 댓가를 너무도 혹독하게 치루고 있는 지금, 그 이유도 모른 채 허덕이는 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 금할 길이 없습니다. 또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따지는 세태 속에서도 차츰 그 폐해의 쓴맛을 맛보고 있습니다. 사람을 잘못 본 것도 아니고 알면서도 뽑고, 당하면서도 모르는 어리석은 생활을 이어 왔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어리석음을 깨우면 모난돌이 정맞는다 하고, 세상물정 모른다 하고,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 하며 막고, 위에서는 폭군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하는 시절을 또다시 산 것입니다.

능력과 업적을 논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 합니다. 사람이 덜되어도 능력이 있고 많은 업적을 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명 주위에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을 것이며, 설령 그런 성과들도 길게 가지 못하고 생채기 투성이들이 다만 잠시 가리워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업적과 성과는 조금 더디 얻을 지라도 사람을 살리고 얻는 길로 교육이든 사업이든 정치든 모든 일들을 이루어가길 기대합니다. 이제 선출된 일꾼들도 그런 사람 됨됨이의 소중함을 잘 기억하길 기대하며 일그러진 영웅이 아니라 올곧은 일꾼들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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