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서명진 원장(광양한의원 원장)

요즘 피곤해 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 같다. 물어보면 열 중 칠팔은 피곤하다고 답한다. 어떤 이는 항상 피곤하기 때문에 그냥 같이 가는 인생 친구쯤 여긴다. ‘피로는 간 때문이야’라는 광고가 여기 저기 나오는 걸 봐도 그만큼 피로는 흔한 증상이다.

‘피로는 간 때문이야’라는 말은 사실 넌센스다. 간단한 수학논리로 들여다볼 때, ‘간이 나쁘면 피로하다’는 참이지만, ‘피로하면 간이 나쁘다’는 거짓이다. 간이 나쁘면 당연히 피로하지만 간 때문에 피로한 경우는 극히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이 종종 있다. “난 간이 나쁜가 봐요. 요즘 계속 피곤하거든요.” 아무리 봐도 간이 전혀 나쁠 리 없는 사람이다. 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걸 보면 새삼 메스컴의 위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떤 장기든지 기질적 문제가 있으면 피로를 유발한다. 간만이 피로를 유발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몸에 질병이 있으면 피로를 느낀다. 그러나 피로만 가지고 병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피로를 많이 느낀다고 병이 꼭 있는 것도 아니며, 피로하지 않다고 병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피로하다고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순한 피로감을 넘어 심한 피로감, 미열, 수면장애, 두통이나 근육통 혹은 집중력저하 등이 동반되면 기질적 질환이 의심되는 경우다. 그리고 평소 피곤을 못 느끼는 사람이 갑자기 피로감을 느낀다면 역시 질병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우는 진찰을 받아 봐야 한다.

연구에 의하면 피로의 원인은 기질적인 질병보다는 정신심리적인 면에 더 많다. 이는 마음가짐을 통해 피로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면대 앞에 서면 거울을 보고 일단 웃어보자. 그리고 “아! 상쾌해”라고 외쳐보자. 그러면 억지로 지었던 웃음이 자연스런 웃음으로 바뀐다. 찌뿌등했던 몸도 가벼워진다. 적어도 반쯤은 피곤이 사라진다. 좀 더 나아가 “나에겐 즐거운 일이 많아, 그래서 오늘은 다른 사람에게 내 즐거움을 좀 나눠 줘야겠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반드시 이런 방법일 필요는 없겠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훈련을 통해서 피로를 이기는 효과는 기대이상으로 크다. 피로는 멘탈인 셈이다. 우선 ‘난 피곤하지 않아’라고 마음가짐부터 가져보도록 하자.

물론 거의 날마다 술을 마시고, 늦도록 놀이에 빠져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사람에겐 논외다. 규칙적인 운동과 절제된 식습관도 중요한데,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피로할 리는 별로 없을 거 같다.
피로와 관련된 한방의 병증으로는 '허로(虛勞)', ‘권태(倦怠)’, '노권상(勞倦傷)' 등이 있다. 허로는 장부가 허약하고, 원기와 정혈(精血)이 부족하여 나타나는 증후를 말한다. 과도한 성생활이나 나이에 따른 노화가 원인이다. 권태는 만사가 귀찮아지는 상태를 말하는데 주로 ‘비위(脾胃)’가 약한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노권상은 주로 육체적인 노동이 과도하여 나타나는 피로를 말한다. 한방전문용어를 조금 빌어쓰자면, 이들 모두는 기본적으로 기혈(氣血)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영위(營衛)의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원인이 칠정(七情-일곱 가지의 정서) 즉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인지, 비위허약으로 인한 기혈부족(氣血不足)이 원인인지, 간기(肝氣)나 혹은 신기(腎氣) 손상으로 인한 것인지에 따라 달리 처방될 수 있다. 피로에 관한 한약이야 예로부터 많다. 피로감이 오래 지속된다면 한방 쪽 상담을 받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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