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기의 지랄발광 이야기

남성은 돈에 대해서 책임을 느끼고 있다. 그는 아내에게 필요한 어떤 종류의 돈이라 할지라도, 가족 가운데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맨 먼저 벌어들여야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 가운데서도 특히 아내의 요구에 응해서) 그는 돈을 멋지게 쓰는 방법도 알고 있다. 돈은 힘이다. 그 힘이 오랜 옛날부터 남자에게 쥐어져 왔던 것이다.

여성은 그것을 우습게 여길지도 모른다. 부담을 함께 나눈다면 여성의 지위도 높아질 수 있지 않느냐. 그렇지만 여성의 생각이 백번 옳다 할지라도, 엄연한 사실은 남자는 가족 중에서 가장 부담 져야 할 사람으로 믿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바꾸거나 부담의 일부를 여성과 나눈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여성이 만약 그가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한다면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내가 더 많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그로 하여금 즐거운 기분이 되게 하기는커녕 비참한 기분을 안겨 주고 말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배워 온 경쟁심이 남성으로 하여금 그것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남성은 아내의 일보다 자신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아내로 하여금 대단히 화나게 할 수도 있다. 특히 여성이 그 성취에 자신을 가지고 자기의 일에 몰두해 있는 경우와 그가 하고 있는 만큼은 자기도 자신의 힘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맘먹고 있을 때 그렇다.

“벌이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좋으니까 가정에 박혀 충실한 아내가 되어 주면 싶어…” 이런 뿌리 깊은 인습에 젖어 있는 나머지, 남성은 아내가 돈을 벌어들이게 되면 무엇인가 실의에 빠져들 것이다. 만약 자기의 상사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을 때, 아내가 직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는 버림받은 느낌을 가질 것이다. 아내가 일이 밀려서 밤이 깊도록 까지 일에 붙어 있어야 한다면, 아내를 사랑하고픈 그는 대단한 불평을 털어놓을 것이다. 남편이 열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직업 갖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내가 자기를 멀리 떠나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허락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내가 일 나가 있는 동안에 그는 「나는 도대체 뭐야?」 라고 소리치게 되고, 둘은 곧 갈등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요즈음 남성들은 여성들이 모든 것을 자기에게 기대는 것에 긍지를 느꼈던 예전의 남성들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아내가 직업을 갖는 경우에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아내가 자칫 결혼 생활보다는 직장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남편이 불평하지나 않나 귀를 기울이는 것이 그것이다. 남편에게 그렇게 보임으로써 아내는 그이와의 화목 및 직업에 따르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또 그이에게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추가로 집안일이라면 그는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긴다. 불공평한 것일까? 물론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가내노동이 궂은일인 바에야 어느 남편이 선뜻 나서려고 하겠는가? (게다가 아내는 생명보험에 들어야 할 정도로 열심인 것도 아니다.) 아내가 만약 남편으로부터 냉철한 동의를 구할 수 있다면, 남편과 책임을 분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죄의식을 자극시켜 그로 하여금 부끄러워서 집안일을 거들도록 할 수 있고 또 죄의식을 잊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도 마음속으로는 약간은 아내가 치르는 고역 가운데 분명히 그의 몫도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의 마음의 많은 부분들이 그가 가구를 닦으러 가는 것을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렇지만 아내의 잘못도 있다. 남편이 다리미를 만지작거리거나 세탁기를 너무도 깨끗이 닦은 다음에 잠그는 것을 본다면 아내는 아마도 그를 밀쳐내고 말 것이다. 남편이 집안일을 망칠 정도로 얼간이는 아니다. 실은 그는 아내의 일을 도울 만한 게 없나,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내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조금도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물론 남편으로 하여금 세탁기 다루는 법을 가장 빨리 익히게 하는 방법은 더럽혀진 그의 내의를 다 쌓아두는 것이다. 아마도 여성들은 다음의 사실을 앎으로써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용을 사들여 경쾌한 기분을 맛보는 것 말이다. 아내는 필시 그가 집안일에 얽매이기보다는 그런 멋진 일을 해낼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정채기/ 강원관광대학교 교수, 한국남성학연구회장, 교육학박사.진상면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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