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의 쉴만한 물가

이어령교수는 우리문화의 특징을 마당문화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외래문화는 극장식이라고 표현합니다. 마당문화와 극장문화의 중요한 차이점은 관객이 참여자냐? 구경꾼이냐?로 갈려집니다. 극장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중석에 앉혀져서 구경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웬만한 흥에 요동치 않고 그저 개인적으로 느끼거나 일어서서 박수 정도로 마음을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당문화에서는 모두가 참여자입니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풍물패들이 들어오면 하나둘 골목길로 나와서 행렬에 동참하고 잔칫집에 도착해서 자연스럽게 함께 어우러집니다. 관중석과 무대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따로 있는것도 아닙니다. 다같이 함께 합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모두가 함께하는 잔치로 승화시킬 수 있는 그런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돌잔치에 떡을 돌려 기쁨을 나누거나 결혼식 때 모두가 음식을 만들고 은밀한 초야까지도 엿보며 함께 하는 일, 환갑 진갑 등에 장수를 기원하는 잔치들에서도, 심지어 장례식마저도 모두가 함께 아픔을 나누는 모습들은 함께 어울림을 통해서 기쁨도 슬픔도 나누었습니다. 또한 농사절기때마다 흥을 돋우어 힘든 농사일도 잔치로 만들어 함께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늘 마을 전체가 함께 동참하는 잔치를 통해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제 역할들을 감당하면서 모든 어려움들을 서로 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곳곳에 축제가 한창입니다. 역사적으로 잔인한 4월이 역설적이게도 화사한 봄꽃축제로 더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잔치에 목마른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지만 정작 길에서 허비한 시간들로 현장에 도착해서는 기껏 구경하는 일로 마칩니다. 그런 중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좋은 볼거리나 공연보다 자신이 참여자가 될 수 있을 때 즐거워 한다는 것입니다. 전국노래자랑이라는 프로가 장수하는 이유는 우리 민족이 노래 좋아하는 특성도 있었지만 누구나 참여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마당문화에 익숙한 정서와 일치한 부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도시화되어 마을이 커져버린 지금에는 마당문화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대부분이 극장식으로 바뀌어 고유의 참여문화적 특성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삼삼오오 앉아 음식을 만들고 나누던 그런 자리엔 어디서 온지도 모를 장사꾼들이 판을 치고, 만들어 놓은 무대 앞에 사람들을 앉혀두고서 볼거리 잠시 보여주고 끝냅니다.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허다하고 모두가 함께 하는 잔치도 아니면서 소리만 요란한 모습에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웃 여수에 큰 국제적 잔치가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 지역에도 멀리 외국에서 예술서커스단들을 모셔 온답니다. 규모와 내용들이 국제 잔치이고, 내용도 단순 볼거리에서 바다를 주제로 상생의 기술들과 방안들을 나누는 잔치이며 문화예술의 화려함과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는 잔치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웃마을 잔치여도 함께 해주는 것이 우리네 정서에 맞는 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멀리서 손님이 많이 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가까이 있는 우리동네 잔치이니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갖고 함께하고 즐겁게 누리는 것이 좋은 마당문화의 전통을 가진 후예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족한 점도, 아쉬운 점도 없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서로 그러한 점들을 보완하면서 협력해 간다면 우리에게도, 또 찾아온 손님들에게도 더 풍성한 잔치가 되리라 믿습니다.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라서 성공여부를 가늠하지 말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함께했는지, 그리고 잔치의 목적과 주제를 따라서 해양을 통한 상생의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나누는 풍성한 자리이길 기대하고, 우리동네 잔치인 예술서커스 잔치도 많은 어린이들이 꿈을 키우고, 온 가족이 함께 공감대를 형성해 가면서 함께 회복되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한마당 큰 잔치로 모두가 어우러지는 귀한 시간이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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