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기의 지랄발광 이야기

▲ 정채기 강원관광대학교 교수. 한국남성학연구회장
대기업 연구원 김 모(40대)씨는 요즘 자신이 몹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요즘 늦은 시간 연구실을 나와 17평짜리 아파트에 들어서면 온기 없는 실내의 휑한 풍경이 낯설기만 하다. 매번 자기 둥지가 아닌 다른 둥지에 들어온 느낌이다. 벌써 3년째 이런 외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다. 아내와 두 아들은 영국에 있다. 언젠가는 다시 가족이 모여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 하나 갖고 3년 동안 홀아비 생활을 해온 김 씨는 지금 절망감만 느껴진다. 그는 자신이 이제 ‘기러기 아빠’가 아니라 조만간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펭귄 아빠’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기러기 아빠들은 심리적ㆍ성적으로 외로움을 겪으면서 대부분 우울증을 겪게 된다!”고 경고한다.

사회적인 스트레스는 가중되어가는데, 정서적인 지지기반인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니 더 할 수밖에 없는 것. 기러기 아빠들이 겪는 증상은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옛날의 여성들이 겪었던 ‘화병’과 비슷하다. 특히 생활리듬이 깨진 상태에서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생활이 계속되면 자신도 모르게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심혈관질환 등 생활 습관 병(성인병)을 키울 수 있다. 전국적으로 수백만을 헤아린다는 기러기 아빠들의 건강법을 살펴보자.

▶어떤 증상이 있나?=가족과 멀리 떨어져 정상적인 부부관계와 가족관계가 부재한 상태에서는 가족 간의 갈등은 물론 외도 등으로 인한 부부갈등이 생기기 쉽다. 여기다가 유학생활의 실패, 경제적인 파탄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쯤 되면 기러기 아빠들의 스트레스는 본래 심신이 아주 건강하던 사람도 견디기 어려운 정도가 된다. 이렇게 과도한 자기희생과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에는 우울증뿐 아니라 심리적인 불안, 그리고 두통, 위장장애 등의 신체 증상이 흔히 동반된다. 이러한 원인과 증상으로 보아 과거에는 여성들이 자기희생의 감수로 인해 주로 겪었을 화병의 현대판이자 남성 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살을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불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불면, 생활 리듬의 상실, 비만, 음주, 체력 저하 등의 문제가 야기되면서 과거 성인병이라고 불렸던 생활 습관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알코올 중독의 위험성도 높아진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라=기러기 아빠들은 보통 40∼50대로 건강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연령대다. 평소 건강한 것 같아도 각종 건강지표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급격히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다. 떨어져 있는 가족을 대신하여 옆에서 정서적인 지지를 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가까운 친구, 친지들과 자주 만나는 것은 중요하지만 과음은 삼가야 한다. 알코올은 결국 우울, 불안 증상을 악화시킨다.

전에는 술 먹은 다음날 부인이 해장국을 끓여주거나 꿀물을 타주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술자리에 참석하더라도 절제하거나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도록 조절하자. 운동, 취미 등의 동호회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권한다. 가족 간의 공감대를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로 장기간 떨어져 있다 보면 나중에 가족이 다시 합치더라도 문화적 정서적 이질감으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전화, 편지, 인터넷, 비디오 등 다양한 통신 수단을 동원해서 자주 대화해야 한다.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하라=쉽게 피곤하며 평소보다 의욕이 많이 저하되었다고 생각되거나, 잠이 오지 않고, 음주량이 늘면 정신과 등을 방문하여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이 아닌지 점검한다. 이것은 친지들의 역할로서도 중요하다. 원래부터 약간의 우울증상이나 신경증 증상이 있던 사람이라면 기러기 아빠의 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심리 상담을 병행하는 것도 좋은 예방책이 된다.

기러기 아빠들은 식생활이 불규칙하기 쉽다. 단순히 식사를 한 끼 때운다는 생각으로 지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식과 영양섭취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식사는 제 때 규칙적으로 하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식당이나 메뉴만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도록 신경 써야 한다. 만약 자신이 지병이 있다면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에게 미리 알려주고 비상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응급상황에 대비하여 급하게 연락할 수 있는 비상연락처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메모해 놓도록 한다.

▶기러기 아빠의 건강수칙: ①전화나 인터넷으로 짧은 대화를 자주 나눈다.②자세한 이야기는 편지나 e메일을 활용한다.③식사는 거르지 말고, 균형 있는 영양을 섭취한다.④동호회 등 1개 이상의 모임에 참석한다.⑤한 가지 이상의 운동을 주3회 이상 규칙적으로 한다.⑥1년에 한번 건강검진을 받는다.⑦몸에 이상이 있으면 즉시 병원을 찾는다.⑧응급상황에 대비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연락처를 확보한다.⑨지나친 음주나 흡연을 삼가 한다.⑩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한다.

정채기 교수는 진상이 고향으로 교육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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