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기의 지랄발광 이야기

▲ 정채기 강원관광대학교 교수. 한국남성학연구회장
아버지란 개념은 기본적으로 <남자 어버이 혹은 부친(아들이나 딸을 가진 남자)>을 지칭한다. 우리말의 남자(남성인 사람)를 뜻하는 단어로는, 한자의 <男>과 영어의 <Man>을 들 수 있다. <男>은 회의문자로서 <田>과 <力>이 합쳐진 것이다. 즉 밭(들녘)에 나가서 힘들여 일하는 사람(농부)을 남자로 칭한다. 혹은 <田>을 <입 열 개>로 해석하면서 <열 식구의 입을 먹여 살리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수컷>을 뜻하는 웅(雄)도 왼쪽 받침은 독수리가 두 날개를 넓게 펴고 있는 형용문자로 되어 있다. 영어의 <Man>은 크게 <인간>이라는 뜻을 지님과 동시에, 어원상으로 <weaponed man>즉 무기를 든 사람이라는 뜻의 <전사(戰士)>를 지칭한다.

다음으로 아버지를 뜻하는 <父>를 살펴보건대, 이는 (오른)손에 회초리를 쥐고 있는 모양의 사람(가장인 아버지가 매를 쥐고 자녀를 다스려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뜻한다. 또한 <夫婦>의 <夫> 는 커다란 관을 쓴 대인(大人)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어에서 아버지는 <Father> 혹은 <Male Parent>(부친)로 표기하는데, 어원적 뜻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남편을 뜻하는 <Husband>는 집주인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남자 = 아버지> 라는 등식을 성립시켜 각각의 어원적 개념을 동서양으로 나누어 제시하였는데, 별 다른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남자에 대한 이상의 개념들을 종합해 보면, <밖에서 힘써 일하고 싸우는 사람>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집의 큰 주인으로서 특별히 자녀의 훈계를 맡는 사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렇듯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감에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그 옛날 원시시대에, 아버지인 남자들의 숙명은 <전사>이었다. 맹수나 적군으로부터 자신은 물론, 특히 가족이나 재물을 잘 지켜야 하는 힘이 센 싸움꾼이어야 했다. 이에 따라 나약한 가장은, 존재의 일고가치가 없었음은 당연지사이다.

그 후 농사가 주업이었던 시대의 아버지는, 부지런한 농부가 되어 쌀독을 가득 채워야 하는 모델이었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들판에서, 식솔들을 위하여 땀을 흘렸던 것이다. 누군가는 남자의 이 같은 일생을 빗대어 소(家畜) 라고 칭하였다. 이것의 현대판으로서 일본 남자들은 자신을 비하하여 <사축(社畜/ 회사 소>, 즉 일생을 회사나 조직에 매달려서 소처럼 일만하는 존재들이라 하는 바, 나는 이에 빗대어 우리나라 아버지들은 <가축(家畜/ 집의 소 -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존재> 라고 칭해지는데 무리가 없다고 본다. 이 연장선에서 한국의 특수한 근현대사에서 아버지들 중 일부는 조국의 광복과 민족동란의 전선에서, 쌀독의 잔량과 가족의 생사 등을 모르는 채 아까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야 하는 사회적 명분의 축적에 자위하여야 했다. 나머지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그 억압과 변란 속에서도 식솔들의 호구지책을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았음은 당연지사다.

이어지는 산업시대에 남자는 <유능한 기술자> 모델이 전형적으로 요구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산업혁명이나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 되어, 공장의 기계 앞이나 머나먼 중동 땅에서 자신의 청춘을 바쳐야 했다. 대신에 고국 땅의 번영과 자기 집안 통장의 잔고가 늘어가는 재미를 바꾸어가며 젊음을 헌납한 것이다.

이제 정보를 사냥감으로 하는 지식산업의 시대에서, 경쟁력이 높은 양질의 정보 축적과 그 사냥의 무한정한 돈벌이를 위하여, 불철주야 뛰어야 하는(예: 이 같은 연유 등으로 과로사-過勞死/ 일본式 고유 영어 표기인 <karosi>가 불사되어짐) 변형된 전사, 농부 그리고 기술자 등이 뒤섞인 채 <아버지 삶의 궤적>이 혼재된 가운데, 대부분 소시민적 찻잔 속의 (집안) 행복을 일구어 가고 있다. 이 같은 아버지 삶의 궤적의 최근 정점에 <하숙생(?)>으로 일갈되고 있는 아버지들이 갖은 국내⋅외적 군상으로 서있다. 과거, 현재 그리고 언제까지...?

정채기 교수는 진상이 고향으로 교육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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