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늬의 풀잎에 드는 햇살

백화점 앞의 바겐세일!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 재고가 된 도자기나 그림들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헐값에 팔고 있었다. 눈요기라도 해야지 싶어 쓱 들러보는데 번쩍 눈에 띄는 그림하나. 그림이 좋건 나쁘건 간에 수북하게 먼지를 뒤집어 쓴 그 그림이 강렬하게 날 붙든 이유는 순전히 그 놈의 한글 때문이었다.

한글만 봐도 상사 병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나. 한글을 바탕으로 깔고 그 위에 붉은 매화가 선혈처럼 붉게 번져있는 그림! 난 집나간지 십 수년 된 동생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듯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다. 행여나 천덕꾸러기처럼 창고에 다시 처박히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사들고 단숨에 집으로 왔다. 피붙이를 씻기듯 정성스레 닦아 벽에 걸어놓고 보니 그제야 갇힌 숨을 토해내며 아름답게 되살아 나는 그림.내가 저를 알아봤듯 저도 나를 안다는 듯 핏줄만이 느낄수 있는 뜨거움이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할머니도 그런 마음이셨을까.

결혼전, 출장차 일본엘 간 적이 있었다. 내가 일본간다는 소식에 외사촌 언니는 간곡한 부탁을 하나 하였다. 직계 가족이라곤 오직 작은 아버지 한 분 생존해 계시는데 아직까지 얼굴한 번 뵌적이 없으니 꼭 찾아보고 소식을 전해달라는 거였다. 빠듯한 일정에 어려운 부탁이었지만 말만 들어도 가슴이 아팠기에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여러 교포분들의 도움으로 생각보단 쉽게 그 분을 만나 뵐 수 있었다. 그 분은 내가 당신 조카라도 된듯 반기시며 융숭한 대접을 해주셨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청하나 들어주겠느냐고 물어오셨다. 집에 아흔이 다 된 노모가 계시는데 꼭 한번 만나 봐 달라는 거였다.

모시고 나오기는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정신은 총총하셔서 내가 가면 너무나 좋아하실 거라는 거였다. 아직 마쳐야 할 일도 남아있고, 생면 부지인 내가 반가우면 또 얼마나 반가우시랴 싶어 좀 부담스러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분의 청을 거절하고 나면 내내 편치 않을것 같아 덥썩 약속을 하고 말았다.

출장 일정 마지막 황금같은 주말 오후, 이제 홀가분 하게 일본 여행이나 하자는 동료를 꼬드겨 그 댁으로 갔다. 안내 되어진 할머니의 방엔 당시로선(이십 오 년전)보기 드문 대형 스크린이 벽 한 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고 한 쪽엔 태극기가 외로운 교포들의 상징처럼 쓸쓸히 걸려있었다. 관공서가 아닌 방안에 걸린 태극기가 어쩐지 생경스럽고 몹시 서글퍼 보였던 기억…… 한 여름인데도 요를 깔고 누워 계시던 할머닌 기어코 몸을 일으켜 우릴 맞아 주셨다. 은빛머리에 쪽을 찌신 할머닌 죽었다 살아난 자식이라 되는 듯 우릴 부둥켜 안고 한 없이 등을 쓰다듬으며 연신 눈물을 쏟으셨다. 일면식도 없는 우릴 끌어안고 한없이 슬픔을 토해내신 할머니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우린 할머니의 아픔에 동화되어 눈물을 훔칠 수 밖에 없었다.

이십 대에 일본에 건너 오셨다는 할머닌 타국에서 억척같이 살아내느라 지문조차 없다 하셨다. 한국에 가면 손톱에 봉숭아 꽃물드리는걸 제일 먼저 하고 싶다는 할머니.
아직도 처녀적 수줍은 감성을 그리움으로 품고 계신 할머니. 우리가 먹기위해 살듯 그리움이 사는 이유가 돼 버린 할머니. 할머닌 요밑에서 꼬깃꼬깃한 지페를 꺼내어 한국 돌아갈 때 비행기 안에서 굶지말고(할머닌 그 옛날의 못살던 고국만 기억하시는 것 같았다)먹고 싶은 거 사먹으라며 손에 꼭 쥐어 주셨다. 며느리 알면 안 되니까 어서 넣어두라고 가난한 친정붙이 챙기듯 막무가내로 넣어 주시던 할머니.

한국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같은 한국사람인 것만으로도 우리들이 고맙고 이쁘다며 보고 또 보고 눈가가 짓무르도록 우시던 할머니. 언젠간 꼭 고향에 돌아가리라던 할머니. 그 때 벌써 여든이 넘으신 나이였는데…….

할머니도 같은 마음이셨을까. 고국을 등지고 사는 지금에서야 향수에 젖은 할머니의 뜨거운 눈물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지금쯤은 돌아가셨을 할머니.

저 세상에선 할머니의 원대로 고국의 산천을 맘껏 누비셨으면 좋겠다. 타국의 고된 삶에 지문이 다 닳아진 할머니의 거룩한 열 손가락에 붉은 봉숭아 꽃이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 그림속의 매화 꽃이 내 가슴에 그리움을 수혈하듯 붉게 살아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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