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늬의 풀잎에 드는 햇살

얼마 전 앨러지 때문에 병원을 갈 일이 생겼다.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대 여섯살 무렵의 흑인 꼬마 아이가 날 물끄러미 쳐다 보다 물었다.
"아줌마, 어떻게 하면 아줌마와 같은 하얀 피부를 가질 수 있어요?"

예기치 않은 질문에 당황해서 허둥대다 꼬마의 맑은 눈동자와 눈길이 부딪혔다. 아이의 긴 속눈썹이 투명한 눈길에 그림자를 지우고 있었다. 뭐라 해야 하나 호흡을 고르는데 때마침 터지는 재채기와 함께 눈물이 비죽 솟아 올랐다. 허리를 숙이고 자세를 낮춰 아이랑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말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음...우리 피는 다 같이 붉은 색이야. 너도 나도 우리 모두!"
‘피부 색을 묻는데 내 궁색한 답변하고는......’
난감해 하며 생각을 더 고르고 있는데 아이는 뜻밖에 경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아하, 이 눈물도 내 눈물이랑 같은 맑은 색이다"
아이의 손끝은 내 눈가에 아직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눈물 방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 이 눈물처럼! 우린 모두 같은 색, 같은 편이야. 그 꼬마는 그간 피부색으로 인한 부당한 차별을 겪어왔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 상처가 선망의 눈길로 날 바라보게 했을 것이다.

사실 누군가 피부색으로 인한 우월감을 갖는다면 이 또한 내면에 도사린 열등감의 다른 얼굴로 보여진다. 얼마나 내세울게 없으면 한낱 피부색 따위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이 보잘것 없는 우월감은 사실 부러움을 살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난 아이에게 만약 이 아줌마가 아프면 하얀 피부의 백인 피를 수혈 받는 게 아니고 나랑 피가 같은 사람, 피가 붉고 깨끗하고 따뜻한 사람 그런 사람의 수혈을 받아야 나을 수 있다고 자꾸 말을 덧붙였다.

조심스러워서 자신이 없어서 였을 것이다. 아이가 사회에서 다시 상처 받을까 두려워서 였을 것이다. 지금은 어리고 순수한 마음에 내 말이 조금은 위로가 돼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에 나가면 어김없이 곳곳에 도사린 인종 차별을 목도하고 평생 열등감과 열패감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때마다 삶의 어두운 갈피갈피마다 어린 날 생면부지의 이 아줌마가 마음을 담아 건네준 한 마디, “우린 모두 같아. 우린 모두 한 편이야” 이 말들이 진심으로 위로가 되고 힘이 돼 줬으면 한다. 더 바라기는 이런 말들이 더 이상 아무런 위로가 되줄 필요가 없는 그런 사회!

인종, 종교, 문화, 계급, 이념.....그 모든 것들의 차이에 아무 차별없는 공동체적인 삶을 구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꿔 본다. 잘못 되고 그른 것을 바로 잡으려는 차별화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차이는 말 그대로 서로 다를 뿐 잘못 된 일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차별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사실 “인종주의”에서 비롯된 인종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종주의”란 여러 인종간에는 우열이 있고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다. 이 그릇된 사상은 인종차별을 합리화하고 차츰 확대 정착시킨 계기가 되었다.

또 이와 유사하지만 다소 성격을 달리하는 에스노센트리즘(Ethnocentrism)도 있다. 자기집단 중심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사상은 어느 집단 또는 개인이 신체적 문화적 특징이 다른 집단이나 사람에게 위화감과 거리감을 느끼는 현상이다.

한국의 사회의 경우 오늘날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 대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가 바로 이 에스노센트리즘에 있다고 대다수 여론은 분석한다.

그러나 이 말에는 모순이 있다. 모 방송국의 실험에 의하면 한국인의80%가 선진국 백인에게는 턱없이 우호적이고 친절한 반응을 보였으며 저소득 국의 유색인종에게는 무조건적인 비호감과 적대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순혈주의적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인종차별이라면 이 이중적인 잣대의 행태는 어떻게 해석되어져야 하는가.

이는 한국인의 뿌리 깊은 계급주의적 사대주의적 인종차별 성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그 원인이야 어쨌든 외국인의 수가 100만을 훌쩍 뛰어 넘은 다민족 사회에 진입한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인종간의 차이에 차별을 두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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