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가장 먼저 성립된 가지산문(迦智山門) 보림사에는 ‘수호가람 매화보살’이 법당 뒤 매화당(梅花堂)에 모셔져 있다.

한국사원의 수호신들은 대체로 남성 중심인 산신, 용신, 신장, 고승 등인데 보림사 가람 수호신인 매화보살은 여성신이다.

보림사 창건 설화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보림사의 창건주이자 신라의 명승인 원표 스님(보조선사)이 절을 지으려 할 때 아리따운 여인이 나타나‘ 방장산 제일봉에 사는 성모천왕의 딸 선아(仙娥)’라고 하면서 불사에 동참하기를 간청했다.

창건주와 선아는 연못 속의 아홉 마리 용을 퇴치하고 그곳에 절을 지어 보림사라 했다. 그러고는 선아를 절의 수호신으로 삼고 불당 이름을 괴화당(魁畵堂)이라 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사람들은 선아(괴화당)를 매화보살 이라 부르게 되었다.

가람 수호신으로서의 매화보살 진영(眞影)은 매화 병풍을 배경으로 머리에 화관을 쓰고 법의를 걸친 가부좌(跏趺坐) 상으로 되어 있다.

양손에 연꽃을 대각선으로 들었고 매화꽃 공양을 하는 동자가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후기 불화양식의 진영 그림이다. 매화보살 진영 앞에는 꽃이 핀 매화나무 가지가 화병에 꽂혀 있다.

이 설화는 신성시되던 지리산 성모천왕을 보림사 수호신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격화된 최상의 여성신 괴화당은 신령스럽고 전능한 영험이 있었기에 불교 사원에서도 숭배의 대상으로 모셔진 것이다.

즉 불교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재래신앙을 포용한 종합적인 습합(習合)현상으로도 볼수 있다. 고등 종교인 불교에서 괴화당(매화보살)을 숭배했던 것은 매화에 관한 민중들의 잠재된 의식을 반영한다.

민중들은 매화를 단순한 절개, 정절, 고매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꽃이 아니라, 사랑, 믿음, 기원의 상징물로 여긴 것이다.

매화보살을 가람 수호신으로 승격시켜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민중들의 의식 속에는 매화에 대한 원초적인 사랑과 신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민중의 생활 속에 뿌리내려 행복, 장수, 다산, 절개를 상징하고 있는 매화가 종교적 상징으로 자리를 굳히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출처: 이어령 전 장관 저서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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