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지기·마로희양 “광양 문화의 내일을 꿈꾸다”
솔거미술관·한국대중음악박물관 등 경주 답사 쌍사자석등 제자리 찾기 운동 꾸준한 추진
‘광양문화지기(대표 김논쇠)’와 ‘광양지역사연구회 마로희양(대표 이은철)’이 지난달 26일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제자리 찾기 세 번째 답사로 ‘경주 답사’를 진행했다.
이날 두 단체 회원과 시민 등 30여명은 이은철 마로희양 대표의 안내로 경주솔거미술관과 경주타워, 한국대중음악박물관, 황룡자지, 분황사를 답사했다.
‘솔거미술관’
박대성 화백 예술 품은 수묵의 전당
경주엑스포공원 내 아평지 연못가에 자리한 솔거미술관은 천년 고도 경주의 역사와 미감, 그리고 오늘의 예술을 잇는 대표 문화공간이다.
신라시대 화가 솔거(率居)의 이름을 딴 이 미술관은 2015년 8월 ‘실크로드 경주 엑스포’ 개막에 맞춰 개관했다.
솔거미술관은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지원한 경주 최초의 공립미술관으로, 건립의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화의 거장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이 소장 작품 830여 점에 대한 기증 의사를 밝히며 미술관 설립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2012년 첫 삽을 뜨며 본격적인 건립이 추진됐다.
미술관은 재단법인 문화엑스포가 주도해 조성됐으며, 설계는 ‘빈자의 미학’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 승효상 씨가 맡았다. 사람과 공간, 자연의 경계를 허문 미술관 건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낮은 천장과 긴 복도, 자연 채광을 활용한 구조는 전시된 작품과의 조화로움을 극대화하며, 관람객의 동선을 섬세하게 고려한 미로형 배치가 특징이다.
솔거미술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의 구조로 부지면적은 1만4880㎡에 달한다. 상설 전시관(박대성관)과 기획전시실, 수장고, 아카이브실, 아트숍, 카페 ‘솔거랑’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있다.
특히 미술관 한편에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대형 창문이 설치돼 있다. 이 창은 전시관 속 풍경과 외부 자연을 한 화면에 담으며 관람객 사이에서 ‘움직이는 그림’이라 불릴 정도로 SNS 인증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이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시민과 함께하는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친화형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대성 화백의 예술세계와 함께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일상 속에서 예술의 가치를 되새기도록 돕는 열린 공간으로 기능한다.
솔거미술관 관계자는 “솔거미술관은 한국화의 전통과 현대미술의 감각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지역민과 관광객이 예술과 함께 호흡하는 문화 플랫폼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수묵의 부활을 이끈 거장, 박대성 화백
솔거미술관 설립의 시발점이 된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은 현대 수묵화의 거장으로 불린다. 어린 시절 6·25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오른팔이 없는 불편한 신체 조건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한국화를 익혀온 그의 삶은 곧 예술적 투혼의 상징으로도 평가된다.
박 화백은 전통 수묵화의 재해석을 통해 한국화의 현대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실험해 왔다. 강렬한 필력과 절제된 여백의 미, 대담한 구도는 그의 작품이 지닌 대표적 미학이다. 특히 역사적 공간인 경주의 풍경과 신라의 정신을 담아낸 작품들이 많아 솔거미술관의 설립 취지와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그는 서울에서의 활동과 대규모 전시에도 불구하고, 경주로 삶의 터전을 옮겨 문화엑스포 공원 인근에 작업실 ‘소산재’를 짓고 창작에 몰두해 왔다. 2008년, 박 화백은 자신이 30년간 수집하고 그린 작품 830여 점을 경주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공공미술관 건립이라는 큰 흐름을 만들어 냈다.
현재 솔거미술관의 상설전시실에는 그의 대표작 ‘황룡사 9층목탑’, ‘토함산’, ‘금강산 연작’ 등이 전시되고 있다.
박 화백은 언젠가 “나는 그림으로 죽은 신라를 다시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천 년 전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렸다는 소나무처럼, 그의 수묵화는 경주라는 역사 도시에서 다시금 생명을 얻고 있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
한국 대중음악 100년의 기록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국내 최초·최대의 대중음악 전문 박물관으로,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의 설립은 유충희 관장의 30여 년간 이어진 음악 수집 열망에서 시작됐다. 그는 부산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며 처음에는 단순히 음악 애호가로 시작했으나, LP·SP·EP 음반 5만여 장과 악기·의상·오디오 장비 등 총 7만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며 ‘대중음악 덕후’를 넘어 공동체 문화의 씨앗을 심었다.
지난 2015년 4월 25일 개관 이후 지역사회와 문화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그동안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들과 소통하며 큰 사랑을 받아 왔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대중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박물관으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함께 발전해 온 대중음악의 문화적 유산을 발굴하고 가치를 찾고 보존하는 데 중점을 뒀다.
특히 다양한 소장품들을 중심으로 하는 전시와 연계교육을 통해 관람객들이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중요성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에디슨의 축음기를 시작으로 무성·유성 영화시스템의 음향 시스템을 전시·청음함으로, 보는 전시에서 그치지 않고 소리예술을 직접 느끼며 오감을 만족하는 전시들로 관람객들과 소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곳에는 대중음악의 태동기인 대한제국시대를 시작으로 K팝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세계 대중음악의 한 장르를 형성한 2000년대 현재까지의 최초 희귀 음반과 관련된 자료를 상설 및 기획 전시하고 있다.
층당 330평 규모의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전시관은 3층 규모로 구성돼 있다.
1층 기획전시실은 다양한 테마로 구성된 특별기획전이 열리는 공간. 특정 장르, 시대, 인물 중심의 전시가 수시로 기획된다.
2층 상설전시관은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대중음악사를 시대별로 구분해 전시. 일제강점기 유성기 음반, 60~70년대 포크와 록, 80년대 가요계의 부흥기까지 주요 가수와 곡들이 소개된다.
3층 음악 체험관은 LP 청음실, 빈티지 오디오존, 드럼·기타 등 악기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어 세대별 관람객 모두가 음악을 직접 듣고 만져볼 수 있다.
이번 경주답사를 기획한 이은철 광양지역史연구회 마로희양 대표는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여러 가지 선행 조건 중 하나가 시립박물관 건립이라고 줄곧 주장하고 있지만, 솔직히 나부터 확신이 없다. 현재 광양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서 가자는 생각을 했다.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인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광양 출신의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유충희 관장은 그것을 보여 준 분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광양의 문화와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경주로 달려간 것”이라고 이번 답사의 의미를 부여했다.
김논쇠 광양문화지기 대표는 “오늘은 귀도 행복했고, 눈도 즐거웠으며 마음엔 여러 가지 지식과 감동을 쌓은 하루였다. 여름 땡볕이 뜨거웠지만 그 뜨거움이 우리의 문화지기 활동을 더 열정으로 느끼게 했다”며 “무엇보다 안전하게 행사를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광양을 사랑하는 마음이 항상 가득히 담겨 있는 우리 회원들과 함께한 시간이 더욱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지역을 가면 우리 광양은 이걸 어떻게 하면 더 잘 살릴 수 있을까. 우리 광양은 이것을 어떤 방향으로 접목해서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도시가 되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온통 머릿속에 가득하다. 광양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오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한 하루였다”며 “우리의 이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나중에 크게 결실을 맺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광양 문화지기와 마로 희양 활동에 적극 참여해 주시고 가을 행사 때도 많이 함께해 줄 것”을 당부했다.
<경주 답사후기 모음>
박대성 화백 작품의 거대함에 압도=임경숙
첫 번째 답사지인 경주엑스포대공원 내 경주타워의 기발함과 웅장함은 오늘의 답사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주었다. 솔거미술관에서도 박대성 화백 작품의 거대함에 압도당했으며, 동양화의 신세계를 보았다.
점심 식사 후 방문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서는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가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유충희 관장님은 어떻게 이 많은 스피커를 수집하였을까? 믿기지 않았다.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 중 ‘황성옛터’가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효시이며 항일가요 제1호로 지칭되고 일제에 의해 핍박받던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노래라는 해설이 기억에 남았다. 문득 영화 해어화(解語花)에서 간절히 들었던 음악도 생각났다.
오늘 경주 답사를 안내해 준 이은철 선생님 설명도 너무 좋았고, 만난 점심 저녁 간식 정말 감사했습니다. 돌아가면 자랑하고 싶네요.
실물보다 더 큰 쌍사자석등 모형 만들어 홍보=조경녀
오래된 궁터와 절터, 각종 박물관이 많은 경주가 부럽다. 황룡사 9층목탑 터의 주춧돌 위에서 저 멀리 안압지와 반월성을 바라보며, 광양에도 고색창연한 한옥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호수에 물오리가 노니는 품격 있는 ‘사적공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유서 깊은 유당공원이 있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닐 테다.
도립미술관이 있으나 주차장도 좁고 주변 환경도 삭막해 관람률도 낮으니 안타깝다. 도립미술관과 유당공원 사이 전체를 사적공원으로 바꾸면 좋겠다. 도립미술관은 서천 변의 산책길과 이어서 드넓은 물길·꽃길이 있는 사적공원이 되면 얼마나 멋질까.
그 안에 광양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립박물관, 이경모사진박물관, 광양버꾸놀이 공연장과 전수관, 그리고 <오일장>까지 연결해 숨어있는 광양의 자랑거리를 모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광양의 유일한 국보인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홍보를 위해 실물보다 더 큰 모형을 만들어 모든 로터리와 관공서 입구에 커다랗게 세우면 도시의 미적 효과를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음악이 녹음 사이로 흐르는 경주답사가 우리에게 묻는다=박영실
과거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문화란 무엇인가?
황룡사지의 너른 들판 한가운데에 서서 1400여 년 전 과거로 빨려 들어간다. 그 긴 터널을 다시 돌아 나오며 문화는, 그리고 과거는 우리를 지탱시키는 몸체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과거와의 단절은 현재의 삶을 지탱하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뿌리가 튼튼한 몸체를 가지기를 희망한다. 이 몸체는 나 혼자만의 개인을 말하지 않는다. 문화는 우리가 함께 있을 때 갖추어지는 것이다.
오늘 답사는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이 광양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함에서 시작된 발걸음이다. 또다시 얻는다.
문화가 융성한 도시, 경주를 통해 배운다.
솔거미술관, 한국대중음악 박물관, 천년의 역사....
유구한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 경주를 보며 우리는 성장한다.
광양에 대중음악박물관 분원이 생겼으면=장경자
비 예보가 있어서 장화를 신고 우산을 챙겨서 집을 나섰는데, 저녁을 먹고 돌아올 때까지 뜨거운 햇살이 쨍쨍한 하루였다.
경주는 지난달에도 가족여행을 왔던 곳이었다. 그때는 경주 박물관 특별전시 고려청자를 보고 갔다. 이번 답사에서는 솔거미술관을 꼭 보고 싶었다.
2021년 개관한 전남도립미술관이 기증받은 이건희컬렉션 중 박대성 화가의 작품 ‘성산일출봉’이 있었다. 작가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고 솔거미술관을 꼭 가보겠다고 마음먹었기에 이사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집안 정리는 뒤로 미루었다.
그 옛날의 화가 솔거는 미술관 이름으로 현재를 살고 있었고, 불국사 앞마당 소나무들은 소산 박대성 화백의 ‘천년배산’ 속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초승달이 비추고 있는 분황사탑을 그린 작품 제목이 ‘현월’인 것은 이해가 갔으나, 금강산을 그린 작품의 제목이 ‘현율’이라는 것은 그 뜻이 바로 와 닿지 않았다. 나오는 길에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물으니 ‘현율’이 ‘한줄기 빛’이라고 했다. 작품 제목에 한자도 같이 써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코리아 판타지’. ‘불밝힘굴’
모두 작가의 독창적인 화풍을 볼 수 있었다. 먼 길을 달려와도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점심 먹고 간 곳은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었다. 부산에서 전기 관련 사업을 하고 계시는 광양출신 공학박사 유충희 관장이 세운 개인박물관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못낼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다니 놀라웠다. 광양에 대중음악박물관 분원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박물관 마당 한쪽에 쌍사자석등이 요상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처음에는 석공이 일부러 사자를 물구나무서기 모양으로 만든 줄 알았는 데 간주석을 조립할 때 뒤집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우습기도 하고,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석등의 운명은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세워진 자리에서 옮겨지기도 하고 모양이 바뀌기도 한다. 광양의 석등이 처음 자리를 떠난 것처럼 이 석등도 여기로 와서 거꾸로 서 있는 운명인가 보다.
거꾸로 선 사자와 작별하고 위풍당당 네 마리 사자가 지키는 분황사모전석탑 앞에서 백제, 신라, 고구려 삼국의 탑을 간단명료하게 요약 정리해 주시고, 뜨거운 날씨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황룡사 9층 목탑지, 금당지를 해설해 주신 이은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