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이균영 백일장] 중등부 우수상-담쟁이넝쿨

2025-09-05     광양시민신문
조수혁 고창북중 3학년

우리는 서로에게 거대한 벽을 사이에 두고 만났다. 사람들 모두에겐 각자의 벽이 있지만 우리들의 벽은 얼마나 큰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벽을 허물고 나아가야 할 그런 벽을 사이에 두고 우리들은 그렇게 만났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벽을 허물었기에 벽은 아직 허물지 않았음에도 서로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서로 꽤 친해졌다고 믿었다. 
그의 이름은 응우옌 민 티옌 이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그는 베트남 사람이었다. 세글자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어려운 이름이었기에 나는 그를 대부분 민이라고 불렀다. 민의 얼굴은 갈색빛의 피부, 덥수룩한 머리, 총명해 보이는 두 눈과 오똑한 코를 가지고 있어서 한눈에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와 민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우리는 그렇게 쭉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같은 반이었고 어쩌다 보니 같은 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우리는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6년간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민이는 아버지 일 때문에 5살 때부터 한국에 왔다고 했다. 나는 이제야 서로의 벽을 거의 다 허물었다고 믿고 싶었지만 우리에게 아직 벽이 있다고 느낌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2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된 5월 초에 그 일이 일어날 기미가 뿌리를 싹 틔웠다. 아침부터 민이의 기분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수업에도 잘 집중하지 못했고, 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체육 시간에도 체육활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체육 시간이 끝난 후에 민이에게 물었다.

“민아, 무슨 일 있어?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어… 그게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일을 하고 오다 크게 다치셨거든. 근데 병원비가 없어서 걱정이야.”
“뭐?그게 정말이야? 근데 회사 일로 다치시면 보통 회사에서 물어내지 않아?”
“근데 그게… 회사에선 산재처리를 하기 어렵대.”

나는 민이가 계속 혼자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어서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민이 아버지의 병문안을 하러 민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401호였다. 병실문을 열자 병원 내음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민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온몸에 깁스를 한 채로 병원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차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응우옌 민 티옌 친구 김태준이라고 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민이 아버지는 피식 웃으셨다. 내 딴에는 민이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그런거지만 생각해 보니 성과 이름을 같이 부른 어이없는 상황이어서 나는 죄송하다 했지만 민이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다. 나는 부끄러워져서 서둘러 본론을 말했다.

“아저씨. 산재처리가 안된다니 무슨 말이에요?”
민이 아버지는 어눌한 한국말로 대답했다.
“나또 짤 모르께써. 싸장님이 산재처리 안 된대.”
어눌한 한국말이었지만 듣기엔 꽤 재미있었다.
“도대체 무슨 회사가 그래요! 제가 꼭 따지고 올게요. 무슨 회사예요?” 

민이 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회사를 말해주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회사를 말했을 때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고요한 침묵이 꽤 오랫동안 이어진 것 같았다. 나는 믿을 수 없어 다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00제철 우리 아버지의 회사였다. 나는 그렇게 비 맞은 강아지처럼 터벅터벅 걸어왔다. 중간에 민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게 내 귀까지는 도달하진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트럭 한대로 시작해서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여기 광양에 정착해 주변에 꽤 이름 날리는 회사를 스스로의 힘으로만 일궈내신 나의 꿈이자 내 우상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인자하신 분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어 아버지의 방으로 찾아갔다. 

아버지는 피곤함에 쩔은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민이 아버지 산재 처리가 안 된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말하는 순간 아버지가 민이를 모른다는 걸 깨닫고 민이 아버지 이름이라도 알아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버지는 대충 누구를 말하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

“그 베트남 사람 말하는 거냐! 너 또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듣고 와가지고!”
아버지가 꽤 크게 말해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더 큰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네! 왜 산재 처리가 안 되는 거에요!”
아버지는 내가 물러서지 않을 낌새를 알았는지 이번엔 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우리 회사 안에서 다친 게 아닌데 우리가 왜 배상해 줘야 되는데.”
“네?”

“회식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 당한 거야. 우리가 술을 좀 많이 먹였다 한들 우리가 물어낼 이유라도 되냐? 너 한 달에 산재처리하러 몇명이 나오는지 알아? 너도 나중에 이 일을 물려받을 때가 될 텐데 그런 생각으론 경영 못해. 아빠 이만 피곤하니 가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무기력한 채로 거실 소파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TV 채널을 돌렸다. 조용히 있고 싶었지만 막상 조용한 침묵이 너무나 외로웠다. 그러던 중 어떤 TV광고를 보게 되었다. 담쟁이넝쿨을 그냥 놔두면 벽을 허물 수도 있으니 빨리 전화하라는 식의 평범한 광고였다. 요즘 누가 집에 담이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 꽤 올드한 광고였다. 나는 그러던 중 어떤 방법이 떠올랐다. 담쟁이 넝쿨이 벽을 허문다면 조그만한 담쟁이 넝쿨 씨앗으로도 저 거대한 벽을 허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서랍 속에 있던 내 돈을 챙겼다. 내가 3년 정도 동안 계속 모아둔 돈이었다. 거의 300만원이 넘는 돈이었기에 게임기나 컴퓨터를 사려고 했다. 

나는 돈뭉치를 가방에 넣어둔 채 다음날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민이한테 주며 우리 아버지가 몰래 주는 거니까 다른 회사 사람들에겐 비밀로 하시라고 했다. 어느새 민이는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내가 처음 보는 민이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나는 벽이 허물어진 걸 느꼈다. 드디어 담쟁이넝쿨이 벽을 허물고 자라난 것이다. 나는 이게 얼마나 의미 없는 짓인지 안다. 내가 이 돈을 준다고 해서 모든 외국인 노동자의 생활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안 좋아질지도 모른다. 마치 바위에 계란 치기라는 옛말처럼 거대한 벽에 씨앗을 뿌려둔 것뿐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 씨앗은 자라날 것이다. 그렇게 자라나 담쟁이넝쿨이 되면 벽은 허물어질 것이다. 자라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수년, 수십 년이 지나 담쟁이넝쿨은 퍼지고 퍼져 세상을 허물 것이다.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담쟁이넝쿨은 지금도 벽을 타고 자라려 고군분투 중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한번 경험하지 않았는가. 벽이 허물어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