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이 깃든 봉강] 16. 정자마을에서 한국 농촌의 내일을 생각한다
무척 더운 여름날 봉강면 정자(亭子)마을을 방문하였다. 이장님과 사전 약속하고 네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반듯하게 뚫린 865번 도로를 달렸다.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속도를 늦추고 옛 지방도 조양길로 천천히 좌회전하자 작고 귀여운 마을표지석이 띄었다. 아담한 표지석이 방문객의 마음을 편하게 하면서도 우리나라 농촌 현실을 상징하는 듯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왁자한 마을 골목길에 담장을 넘은 아이들 울음소리가 넘쳤던 적이 언제였을까? 지금은 매미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끼리 조용조용 오순도순 행복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촛대봉의 기품이 서린 오붓한 마을
마을에 들어서면 작은 정자 하나와 샘, 느티나무 한 그루가 먼저 눈에 띈다. 마을샘은 깨끗이 정비했지만, 더 이상 식수로 사용하지 않는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샘가의 버드나무는 높이 20미터, 수령 약 175년이다. 그 옛날 이 자리에서 처녀는 총각에게 물 한 잔을 건넸으리라. 샘터는 여인들의 애환을 풀어내고 쓸만한 정보를 나누었을 것이다.
당초 버드나무는 수십 그루가 작은 냇가 따라 줄지어 서 있었는데 1960년대 큰 홍수가 나서 나무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지형도 바뀌었다. 일부 주민들은 물을 피해 큰길 건너 촛대봉 아래 오얏골로 이사하여 마을은 양분되었다. 하지만 물길이 크게 바뀌어 마을 뒤로 흐르게 되었고 주민들도 홍수 걱정을 덜게 되었다. ‘되는 마을은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으로 자연재해가 오히려 큰 혜택을 가져왔다.
정자리(亭子里)는 조선 숙종 때 진주 강씨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해지며 마을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도 문헌상 나타난다. 현재는 마시, 구서 마을과 함께 봉강면 구서리(법정리)에 속하여 행정리 상으로는 정자 마을이다. 마을에는 여러 전설이 있는데 그중 한 선비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는 마을 동편 촛대 형상의 봉우리에 큰 촛불을 켜 놓고 서편 큰 책상바위에 앉아 공부를 하였단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구서원(具書院)이라는 서당 이름이 남아 있다. 촛대봉이 다 타고 책상바위가 닳도록 공부에 정진하겠다는 의지는 마을 주민들에게 이어졌으리라 짐작이 된다.
젊은 농부가 필요한 농촌
봉강면사무소가 작성한 마을 현황에 따르면 2024년 말 정자 마을 인구는 22가구에 39명이다. 실제 거주는 18가구로 광양읍이나 순천에서 오가며 농사를 짓는 이들도 있다. 2005년 발간된 광양시지를 보면 25가구에 71명의 주민이 살았다. 20년 만에 주민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통계청이 발간한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 농가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55.8%이다. 정자 마을은 그래도 전국 평균에 비하면 고령화 비율이 좀 낮은 편이지만 앞날은 걱정이다.
마을 인구 39명 중 90대 2명, 80대 2명, 70대 6명, 65대 4명이니 60대 이상이 36%이다. 20세 이하는 한두 명 있지만 가정 사정으로 조부모가 키우는 이른바 조손가정이다. 18가구 중 한 가구가 중장비 자영업을 하고 두 명이 회사에 다닌다. 벼농사에 필수품인 콤바인, 트랙터 같은 대형 농기계는 다 처분하였고 주변에 흔하게 보이는 비닐하우스 농사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마을기업이나 영농조합은 없다. 노인회와 부녀회는 사라졌고, 큰 제각도 없고 상조계는 장례식장의 등장으로 이름만 남아 있다. 소나 돼지를 키우는 집도 없고 벼농사는 농기계를 가진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의존한다. 가용으로 작은 채소밭을 일구거나 매실, 감 등을 소규모로 재배하고 있다.
주민들의 삶의 활력소, 점심 함께 먹기
11시가 좀 지나자 마을회관으로 어르신들이 모이신다. 12시에 점심 식사가 있다. 도로 건너 오얏골에서 몇 분이 오신다. 보통 십여 명이 모이는데 오늘은 여섯 분만 모이셨다. 좀 더 젊으신 분이 국가 지원금으로 음식을 준비한다. 서로 인사를 하며 못 오신 분들의 근황도 묻는다. 함께 먹고 마시며 나누는 이 시간은 자녀들의 전화보다 더 기다려지는 삶의 활력소이다.
주민들은 대체로 농촌살이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다. 그것은 농업소득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은 요양시설로 떠났지만, 그래도 남은 노인들은 지금 이대로 좋다며 웃으신다. 그렇다고 몸과 마음이 모두 성한 것은 아니지만,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단다. 농민수당과 공익직불제 외에도 국민연금, 노인수당 등 농외소득이 있고 다양한 노인돌봄서비스 덕분에 수시로 마을회관에서 노래 부르기나 건강 체조 등을 한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이웃들과 이곳에서 살다가 생을 마칠 수 있다면 노인의 최대 행복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마을의 자랑거리를 묻자 면사무소가 오 분 거리이고 공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단다. 굳이 바라는 바가 있다면 골목길이 좀 더 넓어지고 마을주차장이 생기길 기대한다.
농촌의 미래는 정자 마을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농민들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30%에 불과하고, 70대 이상 농가의 절반이 월 100만 원 이하이다. 농민의 노후는 생존 투쟁이며, 은퇴는 그림의 떡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할 수 없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적지만 각종 농업 수당이다. 정자 마을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도 낡은 수레 같은 몸을 이끌고 논밭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국가정책의 근원적인 대전환을 촉구한다.
농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대체로 어둡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배경에 도시 노동자의 저임금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저곡가 정책과 농민들의 희생이 있었다. 공산품이 세계 시장을 누비는 동안 우리 농산물은 국제경쟁력을 갖출 준비를 못했다. 이런 역사를 외면하고 이제 와 농토가 좁아 ‘규모의 경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은 농민 무시이다. 농사 수입이 적으니 젊은이는 떠나고 아이들 목소리도 그쳤다. 대신 빈집이나 묵혀진 농토만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십 년 후면 또 어떤 모습일까 걱정이다. 너무나 급속한 쇠락으로 인해 농업 인구는 정확한 추계가 어렵다. 어림잡아 1990년대 초반 660만 명이었던 것이 30년이 지난 현재 200만 명으로 1/3 이하로 떨어졌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농업 인구 감소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기계화와 자동화, 첨단영농법의 도입에 따라 줄어드는 현상이다. 선진국의 경우 대체로 전체인구의 1% 내외인 사정을 고려하면 탈농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문제는 미래 농업을 책임질 젊은 농부의 부족이다. 정부가 최근 40세 미만의 3만 명의 청년농을 집중 육성하고 있지만, 인구의 1%라면 50만 명이다. 즉 40세 이상의 농민을 포함한 고령 농민들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현재 영세소농 고령층을 고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작은 거인 류의현 이장
지극히 사견이지만 정자마을의 보물 중 하나는 류의현 이장님이시다. 올해 83세에 한쪽 의족을 하셨고 재작년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사신다. 몸은 마르고 약해 보였지만 눈빛은 매우 강렬하고 형형한 느낌을 주었다. 고령에 이장을 맡게 된 사연을 여쭈었다. 규정상 전임자가 중임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3년을 맡았고 임기는 내년까지이다. 그는 이장 역할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는데 사연인즉 건강 때문이 아니라 영어 공부에 집중하고 싶으시다.
여든이 넘었는데 영어 공부라니? 필자가 호기심을 보이자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바로 한 생애를 펼쳐 보였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부모님 따라 농사일을 배웠다. 열여섯 살 때 방앗간에서 다리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부득이 의족을 사용하였는데 굳은살이 생기기까지 3년 동안 매일 짓무른 상처를 닦아내는 고통은 다시 상상하기조차 싫은 표정이었다. 이후 기독교에 입문하면서 그는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중등과정은 검정고시로, 대학은 학점제 통신과정으로 마쳤다. 내친김에 인근 국립대학교 대학원 영문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지도교수를 만나지 못해 논문은 포기해야 했다.
네 모퉁이가 너덜너덜한 영어책과 사전, 연습장이 거실 곳곳에 있었다. 영어문장이 빽빽하게 쓰인 시커먼 달력 종이 뒷면도 보였다. 그는 여생 동안 영어소설을 한 권 쓸 계획이다. 소설 속에 자신의 삶과 인생의 질문 등을 담아보고 싶단다. 그런데 방 한쪽에『과학철학개론(An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Science』영어책이 보였다. 왜 이런 책을 읽으시냐고 물었더니, 소설은 인생을 담는 것이라 세상의 모든 것을 조금씩은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요즘은 영어를 자유롭게 듣고 말하기 위해 잠자는 시간 빼고는 유튜브에 매달리고 있다. 따라서 할 수만 있다면 내일이라도 마을 이장직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단다. 부전자전일까? 그의 아들은 6년째 공군 준장으로서 군인의 임무에 충실히 근무하고 있다. 보통은 동기들이 승진하면 예편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백절불굴 정신을 이어받은 듯하다.
필자는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돌아본다.‘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은 어렵다. 마을 탐방을 마치고 골목길을 걷는데 한 할머니가 감사하다고 하신다. 문득 살아서 저 높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류의현 작가의 첫 번째 독자가 되리라 다짐하며 필자가 가진 영어 사전, 영어 글쓰기책, 필기구를 챙겨서 곧 다시 응원 방문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