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이균영 백일장] 중등부 우수상-경계에서 만난 나
그런 날이 있다. 부서질 정도로 아프고, 고약하게도 세상 모든 것들이 그대로인 듯 보이지만 나 혼자 고립된 기분이다. 목을 놓아 울어보고 가슴 시릴 정도로 돌아보아도 언제나 그랬다.
물 흐르듯 지나가는 세월과 시간 속에 갇혀 변해가는 것들에 속하지 못하며 겉돌았다. 지루하고도 하염없이 막막했다. 멈출 줄 모르는 쳇바퀴에 갇혀버린 것만 같은 이 기분, 아무리 발버둥 치며 빠져나오려 시도해 보아도 굴러가는 이 쳇바퀴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우연일까, 운명일까.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것들에 몸도 마음도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었나 보다.
그날이었던가 너를 만난 게, 모든 것을 포기한 나에게 따사로운 한 줄기 빛처럼, 어두웠던 내 마음을 밝게 물들여 준 너는 한없이 아름답고도 신기하였다. 아직도 나는 기다리며 생각해 본다. 너와 나의 경이로운 첫 만남을, 가슴 뛰도록 행복하고 소중했던 그 추억들을.
2006년 에메랄드빛 물결이 출렁이고 고요한 적막 속에 갈매기 울음소리만 울려 퍼지는 그런 마을에서 나는 태어났다. 축복과 기쁨의 소리가 아닌 따가운 눈총들 속에서. 내 이름 윤슬, 아빠인 윤혁준과 엄마인 강희주, 둘 사이에서 실수로 찾아온 아이, 그런 말이었다. 태아는 부모의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인가 더욱 막막한 것인가 아니면 면역이라도 생긴 것인가. 내가 태어났을 때 처음 나를 품에 안은 것은 엄마라는 작자도 도망간 그 아빠라는 작자도 아니었다. 그냥 그저 산부인과의 간호사였다. 나는 그렇게 자랐다.
첫걸음마를 뗐을 때는 주위에 그 누구도 없었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나의 엄마라는 그녀는 8살 어린아이도 느낄 수 있는 차디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옷과 책가방을 사주며 말했다. “어린 년이 돈은 또 얼마나 드는 지, 참으로 끝까지도 도움이 안되네.” 그런 시선과 말에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여 혼자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었다. ‘철컥’ 문이 잠긴 소리인지 아니면 내 마음속 회로가 고장 난 소리인지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설움에 울먹였다.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우는 법마저 까먹은 것인지 아니면 그 어린 것이 벌써 세상의 진리를 깨달은 것인지 생각해 보자면 그 시절 나는 후자가 맞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하고픈 것들도 먹고픈 것들도 한 번도 먹지도 가지지도 못한 채 그렇게 자랐다. 그렇게 자라면서도 귀에 눌러앉은 듯 들은 말이 있었다. “사랑해.”, “고마워.” 그런 말들은 당연스럽게도 아니었다. “넌 무조건 커서 의사가 되야 해.” 한주에, 아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은 들었던 것 같다. 그 말에 나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시절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내 세상이자 전부였으니까. 엄마는 아닐지 몰라도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했으니까.
엄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했다. 8살 처음으로 받아쓰기 시험을 쳤다. 첫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 그게 좋은 것인지도 몰랐다. 학교에서 받은 동그라미 쳐진 종이 한 장. 집에 도착해 엄마에게 건네며 말했다. “엄마, 이거…” 단 네글자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엄마는 내게 소중한 존재이자 가장 어려운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엄마는 그 종이를 받고 8년이라는 짧은 인생 처음으로 따스하게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슬아, 너무 잘했어.” 그 칭찬이 뭐라고, 다정했던 그 목소리가 뭐라고 그 말을 한 번 더 들어보겠다고 친구들이 하자는 공주놀이도, 그네타기도 전부 거절하고는 공부라는 것에 매달려 아등바등 노력했다. 그 시간이 자그마치 8년, 그렇게 나는 한층 더 성장해 나갔다.
중학교 2학년 흔히들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 여느 날처럼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향해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한 2시간쯤이나 지났을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반항심인지 아니면 정말 중2병이라도 걸린 것인지 앞에서 말씀하는 선생님을 주시하다 나도 모르게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나를 보며 무어라 하는 선생님,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 그 모든 것들이 그닥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학원건물을 빠져나왔다. 거리로 나와 무작정 앞만 보고 걸었다.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도 가볍게 무시하고,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마을구석에 있는 바닷가가 보였다. 해변가를 거닐며 마음을 비워냈다. 출렁이는 물결에 비치는 윤슬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멍하니 그 자리에서 풍경을 바라보니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바라보다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도저히 엄마를 볼 자신이 없었다. 발걸음을 다시 돌려 윤슬이 예쁘던 그 바닷가로 향했다. ‘쏴아아’ 들리는 파도 소리가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온다. 메고 있던 책가방을 벗어 던지고는 넓은 모래사장을 달렸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순수하게 행복하고 싶었다.
한참 뒤 지친 몸을 뒤로하고 모래사장에 누워 노을이 지는 어여쁜 하늘을 바라보았다. 5분쯤 지났을까 예쁜 하늘 사이로 얼굴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보다 나이는 많아 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중 그녀가 누워있는 나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길에 나는 홀린 듯이 건넨 손을 마주 잡았다. 천천히 일어나 눈만 끔뻑이며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안녕. 넌 이름이 뭐야?” 망설이던 찰나에 이어 들려오는 대답에 나는 더욱 놀랐다. “내 이름은 윤슬, 외자야.” 신기했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녀.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헐… 내 이름도 윤슬, 외자야.” 그러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말하였다. 그 웃음이 너무나도 환해서,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지 듣지도 못하였다.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는데 그녀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나이는 몇살이야?” 그 물음에 나는 당황하며 어버버거리며 말했다. “열…다섯.” 그러자 그녀는 방금 본 그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하였다. “난 열아홉살! 내가 언니네?” 그녀, 아니 열아홉의 윤슬은 힘들고 지친 나에게 새로운 감정을 알려준 시발점이 되었다.
한참을 그녀와 이야기하였다. 붉고 아름다운 노을이 쏟아놓은 물감처럼 어둡고 짙은 검은 색으로 변할 때까지 처음 만난 그녀지만 너무나도 편안했다. 이렇게 평온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나와 비슷한 면이 너무나 많았다. 좋아하는 음식, 말투, 취미, 취향, 심지어는 가정환경마저도 나와 똑같았다. 바라보고 같이 웃고 보면 볼수록 황홀하고 환희스러웠다. 이렇게 웃어 본 적이 몇 년 만인가 있었던 적은 있었던가, 그렇게 있었다. 그녀, 아니 윤슬 당신이라는 존재가 나에게는 구원과도 같았으니까.
그녀와 다음을 기약하고는 헤어졌다. 학원에서 나와 집에 가는 발걸음보다 그녀와 멀어지는 발걸음이 어째서인지 더욱 무거웠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당신은 그 어여쁜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미소에 화답하듯 양손을 번쩍 들어 크게 인사를 하고는 아쉬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묵묵히 걸어 집으로 향했다.
‘띡띡-띠딕’ 어두운 복도에서 도어락을 열고 들어가자 집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어두운 집안에서는 똑딱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만이 들려온다. 또다시 혼자다. 허전한 마음에 껐던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자 그제야 쌓인 문자와 전화들이 보인다. “아… 망했다.” 발신인은 당연히 엄마였다. 처음으로 그 전화를 건 엄마가 너무나도 밉고 싫었다. 한숨을 쉬며 한참을 고민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화면에 뜨는 이름 사랑하는 엄마, 연결음이 이어지다 이내 휴대전화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좋은 소리는 결코 아니었다. 꾸짖음과 짜증에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도 다 사정이 있었다고!” 잠시 정적만이 흘렀다. 몇 초나 지났을까? 엄마가 말했다. “나가, 그렇게 대들 거면 당장 나가.” 그 말이 가슴을 찢어지도록 아프게 하였다.
원하고 있었다. 크나큰 위로와 사랑을. 하지만 돌고 돌아 받은 것은 위로도, 공감도, 사랑도 아닌 마음이라는 과녁에 제대로 박혀버린 날카롭디날카로운 엄마라는 화살이었다. 과녁이 찢어져 뚫리듯 내 마음 또한 그 한마디에 찢어져 버린 것일까. 너무나도 아프고 시렸다.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신발도 짝짝이로 신은 채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걸어갔다. 아까 그 바닷가로. 어두워진 길과 쌀쌀한 바닷가의 밤바람은 지금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열아홉의 윤슬, 그녀였다.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면 이 감정이 나아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도착한 밤바다에 윤슬 당신은 없었다. 당신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정말이지 참았던 감정이 무너진 것일까.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라져 버리면, 그러면 편해질까 싶었다.
어두운 밤바다, 얼마나 깊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 그 바다로 한발, 두발 가까이 다가갔다. 이제 정말 끝인가 서서히 눈을 감자 누군가 내 손목을 꼭 잡는다. 그리고 그토록 그립고도 바랐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윤슬!” 조심스레 눈을 뜨자 또 당신이다. 윤슬 당신. 그녀는 나를 넓은 모래사장으로 이끌고 가 다정히 나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한다. “힘들고 지칠 때도 네 곁을 밝 혀줄게, 저 바다의 윤슬처럼.” 나는 그 말에 무너진 마음이 더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밝게 웃었다. 그러자 윤슬 당신도 나를 바라보며 어여쁘게 웃어준다.
그렇게 웃음을 짓다 잠시 모래사장의 바닥을 보고는 윤슬,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온데간데 없었다. 주변에는 발자국도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녀가 없었다는 듯 절망에 고개를 숙이니 모래사장에 작은 글이 쓰여 있다. “너야 윤슬, 기다릴게.” 고개를 숙이고 나는 중얼거린다. “혹여 무슨 일 있어도 우리, 꼭 다시 만나자.”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열아홉의 윤슬의 얼굴을 거울 속에서 만났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찾았다. 윤슬.” 벼랑 끝 경계에서 만난 윤슬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