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이 깃든 봉강] 17. 도농복합도시의 미래 농촌 마을, 지곡마을
봉강면 지도를 위아래로 뒤집어 놓으 면 한반도와 비슷한 모양이다. 광양읍에 서 봉강면사무소를 가려면 865번 지방 도를 따라 북쪽으로 핸들을 잡아야 한다. 불과 5분 후면 약 25만 평 규모의 백 운저수지(일명 봉강저수지)가 멀리 비봉산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왼쪽에 펼쳐진다. 저수지 제방을 살짝 비켜 왼 쪽에 바로 지곡(紙谷) 마을이 보인다. 옛 이름은 지실(紙室)이다. 원래 이곳이 닥 나무로 종이를 만들었다. 인근에 닥실 (현 저곡마을), 껍질을 삶았다는 부현(釜 峴) 마을 등 닥나무와 관련된 이름이 신 재 최산두 같은 대학자와 근래에 교사와 공무원이 많이 배출됐다는 이야기가 흥 미롭다.
김해 김씨가 처음 이곳에 마을을 형성 했다고는 전해지나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지금은 봉강면 18개 마을 중 여 러 면에서 가장 크다. 116세대에 207명 이 어울려 살고 있다. 보통 3개의 마을이 한 개의 리(里)를 형성하지만 지곡리는 지곡 딱 한 마을로 이루어진 만큼 크다. 드론이 아니면 마을 전경을 사진 한 장에 담기 어렵다. 논과 밭도 66.2ha로 봉 강에서 가장 넓어 생산도 좋다. 늦가을 황금벌판으로 변할 마을 앞 넓은 들판을 상상하면 마을 인심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읍과 가까운 거리라서 일부 읍민들 이 이곳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거꾸 로 마을 주민들은 광양읍을 주요 생활권으로 한다.
마을 서북쪽에는 일자봉(408M)이 늠 름하게 지켜보고 있다. 마을 위로 당저 마을로 가는 지곡길이 새롭게 포장됐다. 마을로 들어오는 중심길은 지곡길이지 만 마을 안길은 모두 지실길이다. 마을 왼쪽으로 각비(却飛, 일명 객비)라는 작 은 자연마을이 있으나 지곡에 속한다. 각비에는 청동기시대 유물인 39기의 지 석묘가 있지만 특별한 관리를 하는 흔적 은 없다. 2005년 발간된 『광양시지』에 따르면 각비에 14가구에 98명의 주민들 이 살았다. 각비를 지나 서쪽으로 가면 매천 황현의 마을 석사리와 접한다. 동쪽으로는 들판과 서천 건너 내우산 아래 광양읍 우두마을로 향하고 있다.
다시 성장하는 마을
마을회관에서 9년 차 이장 이승식 씨 를 만났다. 차분한 목소리에 안정적인 자세는 마을 어르신들과 원만한 소통을 끌어낼 적임자처럼 보였다. 마을길이 깨 끗하여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느냐고 물 었다. 지난 2018년부터 꾸준히 마을 만 들기 사업을 했다. 2022년에는 2차 사 업비로 10억을 받아 골목길도 단장하고 마을 주차장 확장, 남자 노인당 신축, 어 린이 공부방 시설 등을 갖추었다. 어느 새 외지인들이나 도시에서 은퇴한 귀향 인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새로 지은 깔끔한 전원주택들이 많이 보 인다. 마을에는 학생들이 제법 많다. 초 등학생 7명, 중학생 3명, 고등학생 6명 총 16명이다. 요즘 자녀들의 농촌 체험 을 위해 이 마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문의가 많다. 최근 지곡은 삼대가 어울 려 산다고 ‘삼대모아’ 마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워낙 큰 마을이라 다른 마을보다 5배 이상 힘들겠다고 했더니 서 이장은 씩 웃고 만다. 주로 면에서 오는 소식을 방 송이나 SNS로 알리고 농협 일도 대신 한다. 년2회 주민야유회도 하면서 화합 을 꾀한다. 언제라도 주민들과 연락할 수 있도록 핸드폰은 24시간 365일 켜둔 다. 일하는 보람을 묻자, 그는 어르신들 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피곤함을 잊고 행복하단다. 하지만 종종 이웃 갈등을 중재하거나 농업경영체 3년마다 갱신을 돕는 일, 쓰레기 처리 등은 바쁜 그를 더 힘들게 한다.
국가 정책에 적극 협조한 마을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저수지와 고압 송전탑이 보인다. 이장으 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의 쌀 증산정책의 일환으로 가뭄 해갈을 위해 1961년부터 저수지 공사가 시작됐다. 당 시 저수지 지역에 살던 조양 마을 25호, 작정 마을 38호, 토점 마을 20호, 당저 마을 30호가 수몰되었는데 주민들 대부 분 세풍 지역에서 새 둥지를 틀었다. 서 슬 푸른 박정희 군사정권에 감히 반대할 수 없었다. 힘없는 농민들은 눈물을 감 추며 고향을 떠나야 했고 또 저수지 건 설 공사에 동원됐다. 주민들은 주로 농 한기인 겨울철에 일하러 나갔다. 하루 종일 삽질이나 흙과 돌을 나르고 나서 축 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 은 흙먼지로 덥혔지만, 물표 한 장을 손 에 쥐고 행복했단다. 물표는 밀가루나 쌀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운저수지는 남한 전체 저수지 중 유 효저수량 기준 86위인 4,428 천m3 규 모이다. 광양읍 인근 및 세풍 지역의 넓 은 농경지에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 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전라남도 수 상스키 훈련장 등으로 이용됐다. 한편 2018년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물 놀이 테마공원이 개장했다. 수질 및 코 로나 등 우여곡절 끝에 다양한 물놀이 시설을 갖추고 2023년 다시 재개장했다.
여름철 어린이들에게 큰 물놀이 천국이 된 셈이다. 부디 깨끗하고 안전사고 없 는 공간이 되길 빈다. 마을회관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8개 의 고압 송전탑이 눈에 들어온다.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이 전국에 알려졌지만, 이 이장은 송전탑도 이제 마을의 일부가 되었으며, 마을은 전기 요금을 감면받고 있다고 했다. 2006년부터 한국전력이 백 운산에 고압(345KW) 송전탑 건설을 추 진하자 주민들은 환경단체들과 함께 시 민대책본부를 꾸리고 자연경관 훼손과 환경 파괴를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후 헌법소원, 시위 등으로 대응했으나, 송전탑 공사는 마무리됐다. 물론 복지시 설이나 전기 요금 감면 등이 있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지중화 공사를 원한다. 그런데 최근 광양변전소와 세풍변전소 를 기점으로 4건의 송전선로 건설을 위 해 입지선정위원회 구성 등 소식이 있어 주민들은 긴장하고 있다.
세상에 저절로 된 것은 없다. 큰 저수 지나 고압 송전탑은 국민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국가 시설이며 공간이다.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 덕분에 우리는 온갖 편리를 누리고 산다. 그런데 누구나 자 기 동네 주변에 두고 싶어 하지 않으며, 국책사업이라고 당위성과 법으로만 설 득할 수 없다. 모든 과정에서 지역 주민 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충분한 대화를 나 누어야 한다. 동시에 주민들이 수용할만 한 건강권과 환경권, 일터를 보장해야 한다. 송전탑은 비용이 들더라도 지중화 공사가 답이다. 어렵지만 함께 고통을 나눌 때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 이다.
‘외주지인’들과 더 소통하고 싶은 마을 원로
이장을 따라 마을 어르신 김경봉 (1941년생) 씨 한 분을 찾아 나섰다. 젊 어서 하우스 농사를 하면서 마을 이장, 농협 대의원, 영농회장도 했다. 지금은 힘에 부쳐 감·매실·밤 농사만 약간 하고 있다. 저수지 축조공사 당시 발동기를 돌려 수입을 올려 자녀들을 가르쳤다. 광양제철소 건설 공사 때는 서툰 목수로 서 위험한 경우도 많았지만,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 1980년대 초 지금 살고 있 는 24평 집을 지었다.
현재 발을 크게 다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감나무밭에서 풀베기 작업을 하다가 바지 끝단이 날에 걸린 것이다. 두 달이 넘게 병원에 입원 후 퇴원했다. 자녀들이 이제 일을 그만하라고 하지만, 잡초 무성한 밭을 차마 두고 볼 수 없다. 조금이라지만 감밭이 800평, 매실밭이 500평 규모로 맨손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목수는 목수의 일을 함으로써 목수가 된다.’라는 라틴어가 있는데,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존재이다.
거의 평생 마을에서 사신 어르신에게 조금 불편한 것은 새로 이사해 온 ‘외지인’들과의 서운함이다. 그들이 동네와 화 합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씀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농촌 마을에서 밖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은 아주 부지런해야 한다. 직장인이 농촌에서 살려면, 본인 주 택도 돌보고 철 따라 텃밭도 일구고, 이 웃과 어울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수년 전 공직을 마치고 처가 동네로 귀촌한 한 주민을 만났다. 그는 고향보 다 이곳이 훨씬 살기 좋단다. 운동 삼아 서천을 따라가면 읍내까지 걸어서 친구 도 만날 수 있어 안성맞춤이란다. 게다 가 사람들이 순해 싸우는 일이 없고, 큰 비가 와도 배수가 잘되어 안전하고, 여 름에도 모기가 없다며 마을 자랑이 끝이 없다. 그의 말대로 마을회관 벽에 주민 들의 다양한 활동이나 수상 사진들이 많이 걸려있다.
지곡 마을, 전환시대의 농촌 모델의 가능성을 품다
우리나라 농촌 현실은 대농·기업농 중심의 미국과 너무 다르다. 우리 정부 도 이제 전통적인 생산과 단순 가공을 넘어 유통과 서비스를 더한 6차 산업으 로서 농업을 장려하고 있다. 이는 가족 중심의 소농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웰 빙, 환경을 생각하는 스마트 소비, 로하 스(LOHAS), 어메니티 자원, 경관농업, 융복합 등 농업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 가고 있다. 이러한 전환시대의 농촌 모 델로서 지곡 마을의 미래가 기대된다.
풍부한 물과 숲이라는 자연환경은 물론 객비의 고인돌, 저수지 축조 등 역사자 원, 도시와 가까운 거리 등 잠재력은 풍 부하다. 부모들은 도시로 출퇴근을 할 때 마을 노인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돌봄 으로써 작으나마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마을 앞 넓은 들판을 잘 볼 수 있는 곳에 까페와 식당을 차리면 높은 백운산이나 도솔봉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근 도시인들의 힐링 마을로서 합당한 농외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멀지 않아 곧 지곡 에서 한국의 미래 농촌의 새로운 설계도 가 그려지길 기대한다.
제공=박발진 광양문화연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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