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이 깃든 봉강] 17. 도농복합도시의 미래 농촌 마을, 지곡마을

2025-09-21     광양시민신문

봉강면 지도를 위아래로 뒤집어 놓으면 한반도와 비슷한 모양이다. 광양읍에서 봉강면사무소를 가려면 865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핸들을 잡아야 한다. 불과 5분 후면 약 25만 평 규모의 백운저수지(일명 봉강저수지)가 멀리 비봉산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왼쪽에 펼쳐진다. 저수지 제방을 살짝 비켜 왼쪽에 바로 지곡(紙谷) 마을이 보인다. 옛 이름은 지실(紙室)이다. 원래 이곳이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었다. 인근에 닥실(현 저곡마을), 껍질을 삶았다는 부현(釜峴) 마을 등 닥나무와 관련된 이름이 신재 최산두 같은 대학자와 근래에 교사와 공무원이 많이 배출됐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지곡마을 전경

김해 김씨가 처음 이곳에 마을을 형성했다고는 전해지나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지금은 봉강면 18개 마을 중 여러 면에서 가장 크다. 116세대에 207명이 어울려 살고 있다. 보통 3개의 마을이 한 개의 리(里)를 형성하지만 지곡리는 지곡 딱 한 마을로 이루어진 만큼 크다. 드론이 아니면 마을 전경을 사진 한 장에 담기 어렵다. 논과 밭도 66.2ha로 봉강에서 가장 넓어 생산도 좋다. 늦가을 황금벌판으로 변할 마을 앞 넓은 들판을 상상하면 마을 인심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읍과 가까운 거리라서 일부 읍민들이 이곳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거꾸로 마을 주민들은 광양읍을 주요 생활권으로 한다. 
 

광양읍 생활권 지곡 마을(출처_네이버지도)

마을 서북쪽에는 일자봉(408M)이 늠름하게 지켜보고 있다. 마을 위로 당저마을로 가는 지곡길이 새롭게 포장됐다. 마을로 들어오는 중심길은 지곡길이지만 마을 안길은 모두 지실길이다. 마을 왼쪽으로 각비(却飛, 일명 객비)라는 작은 자연마을이 있으나 지곡에 속한다. 각비에는 청동기시대 유물인 39기의 지석묘가 있지만 특별한 관리를 하는 흔적은 없다. 2005년 발간된 『광양시지』에 따르면 각비에 14가구에 98명의 주민들이 살았다. 각비를 지나 서쪽으로 가면 매천 황현의 마을 석사리와 접한다. 동쪽으로는 들판과 서천 건너 내우산 아래 광양읍 우두마을로 향하고 있다. 
 
다시 성장하는 마을
마을회관에서 9년 차 이장 이승식 씨를 만났다. 차분한 목소리에 안정적인 자세는 마을 어르신들과 원만한 소통을 끌어낼 적임자처럼 보였다. 마을길이 깨끗하여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느냐고 물었다. 지난 2018년부터 꾸준히 마을 만들기 사업을 했다.

마을회관 앞에 선 이장 이승식 씨

2022년에는 2차 사업비로 10억을 받아 골목길도 단장하고 마을 주차장 확장, 남자 노인당 신축, 어린이 공부방 시설 등을 갖추었다. 어느새 외지인들이나 도시에서 은퇴한 귀향인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새로 지은 깔끔한 전원주택들이 많이 보인다. 마을에는 학생들이 제법 많다. 초등학생 7명, 중학생 3명, 고등학생 6명 총 16명이다. 요즘 자녀들의 농촌 체험을 위해 이 마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문의가 많다. 최근 지곡은 삼대가 어울려 산다고 ‘삼대모아’ 마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워낙 큰 마을이라 다른 마을보다 5배 이상 힘들겠다고 했더니 서 이장은 씩 웃고 만다. 주로 면에서 오는 소식을 방송이나 SNS로 알리고 농협 일도 대신 한다. 년2회 주민야유회도 하면서 화합을 꾀한다. 언제라도 주민들과 연락할 수 있도록 핸드폰은 24시간 365일 켜둔다. 일하는 보람을 묻자, 그는 어르신들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피곤함을 잊고 행복하단다. 하지만 종종 이웃 갈등을 중재하거나 농업경영체 3년마다 갱신을 돕는 일, 쓰레기 처리 등은 바쁜 그를 더 힘들게 한다.

은퇴 후 귀촌하는 농가들이 늘고 있다
소나무집으로 불리는 개인주택 정원
비봉산 물줄기가 머문 백운저수지

국가 정책에 적극 협조한 마을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저수지와 고압 송전탑이 보인다. 이장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의 쌀 증산정책의 일환으로 가뭄 해갈을 위해 1961년부터 저수지 공사가 시작됐다. 당시 저수지 지역에 살던 조양 마을 25호, 작정 마을 38호, 토점 마을 20호, 당저 마을 30호가 수몰되었는데 주민들 대부분 세풍 지역에서 새 둥지를 틀었다. 서슬 푸른 박정희 군사정권에 감히 반대할 수 없었다. 힘없는 농민들은 눈물을 감추며 고향을 떠나야 했고 또 저수지 건설 공사에 동원됐다. 주민들은 주로 농한기인 겨울철에 일하러 나갔다. 하루 종일 삽질이나 흙과 돌을 나르고 나서 축 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은 흙먼지로 덥혔지만, 물표 한 장을 손에 쥐고 행복했단다. 물표는 밀가루나 쌀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운저수지는 남한 전체 저수지 중 유효저수량 기준 86위인 4,428 천m3 규모이다. 광양읍 인근 및 세풍 지역의 넓은 농경지에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전라남도 수상스키 훈련장 등으로 이용됐다. 한편 2018년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물놀이 테마공원이 개장했다. 수질 및 코로나 등 우여곡절 끝에 다양한 물놀이 시설을 갖추고 2023년 다시 재개장했다. 여름철 어린이들에게 큰 물놀이 천국이 된 셈이다. 부디 깨끗하고 안전사고 없는 공간이 되길 빈다. 

백운제 농촌테마공원

마을회관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8개의 고압 송전탑이 눈에 들어온다.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이 전국에 알려졌지만, 이 이장은 송전탑도 이제 마을의 일부가 되었으며, 마을은 전기 요금을 감면받고 있다고 했다. 2006년부터 한국전력이 백운산에 고압(345KW) 송전탑 건설을 추진하자 주민들은 환경단체들과 함께 시민대책본부를 꾸리고 자연경관 훼손과 환경 파괴를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후 헌법소원, 시위 등으로 대응했으나, 송전탑 공사는 마무리됐다. 물론 복지시설이나 전기 요금 감면 등이 있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지중화 공사를 원한다. 그런데 최근 광양변전소와 세풍변전소를 기점으로 4건의 송전선로 건설을 위해 입지선정위원회 구성 등 소식이 있어 주민들은 긴장하고 있다.

마을 서북쪽 진등에 고압선 철탑이 보인다

세상에 저절로 된 것은 없다. 큰 저수지나 고압 송전탑은 국민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국가 시설이며 공간이다.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 덕분에 우리는 온갖 편리를 누리고 산다. 그런데 누구나 자기 동네 주변에 두고 싶어 하지 않으며, 국책사업이라고 당위성과 법으로만 설득할 수 없다. 모든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충분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동시에 주민들이 수용할만한 건강권과 환경권, 일터를 보장해야 한다. 송전탑은 비용이 들더라도 지중화 공사가 답이다. 어렵지만 함께 고통을 나눌 때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외주지인’들과
더 소통하고 싶은 마을 원로

이장을 따라 마을 어르신 김경봉(1941년생) 씨 한 분을 찾아 나섰다. 젊어서 하우스 농사를 하면서 마을 이장, 농협 대의원, 영농회장도 했다. 지금은 힘에 부쳐 감·매실·밤 농사만 약간 하고 있다. 저수지 축조공사 당시 발동기를 돌려 수입을 올려 자녀들을 가르쳤다. 광양제철소 건설 공사 때는 서툰 목수로서 위험한 경우도 많았지만,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 1980년대 초 지금 살고 있는 24평 집을 지었다. 

안내판 뒤 들판과 백운저수지가 보인다

현재 발을 크게 다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감나무밭에서 풀베기 작업을 하다가 바지 끝단이 날에 걸린 것이다. 두 달이 넘게 병원에 입원 후 퇴원했다. 자녀들이 이제 일을 그만하라고 하지만, 잡초 무성한 밭을 차마 두고 볼 수 없다. 조금이라지만 감밭이 800평, 매실밭이 500평 규모로 맨손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목수는 목수의 일을 함으로써 목수가 된다.’라는 라틴어가 있는데,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존재이다.  

감농사를 하시는 김경봉(84세) 씨 부부

거의 평생 마을에서 사신 어르신에게 조금 불편한 것은 새로 이사해 온 ‘외지인’들과의 서운함이다. 그들이 동네와 화합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씀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농촌 마을에서 밖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은 아주 부지런해야 한다. 직장인이 농촌에서 살려면, 본인 주택도 돌보고 철 따라 텃밭도 일구고, 이웃과 어울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수년 전 공직을 마치고 처가 동네로 귀촌한 한 주민을 만났다. 그는 고향보다 이곳이 훨씬 살기 좋단다. 운동 삼아 서천을 따라가면 읍내까지 걸어서 친구도 만날 수 있어 안성맞춤이란다. 게다가 사람들이 순해 싸우는 일이 없고, 큰비가 와도 배수가 잘되어 안전하고, 여름에도 모기가 없다며 마을 자랑이 끝이 없다. 그의 말대로 마을회관 벽에 주민들의 다양한 활동이나 수상 사진들이 많이 걸려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 느티나무 네 그루, 게이트볼장
가자골 가는 길에 왕바구
다양한 마을활동을 알려주는 사진들

지곡 마을, 전환시대의
농촌 모델의 가능성을 품다

우리나라 농촌 현실은 대농·기업농 중심의 미국과 너무 다르다. 우리 정부도 이제 전통적인 생산과 단순 가공을 넘어 유통과 서비스를 더한 6차 산업으로서 농업을 장려하고 있다. 이는 가족 중심의 소농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웰빙, 환경을 생각하는 스마트 소비, 로하스(LOHAS), 어메니티 자원, 경관농업, 융복합 등 농업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전환시대의 농촌 모델로서 지곡 마을의 미래가 기대된다. 풍부한 물과 숲이라는 자연환경은 물론 객비의 고인돌, 저수지 축조 등 역사자원, 도시와 가까운 거리 등 잠재력은 풍부하다. 부모들은 도시로 출퇴근을 할 때 마을 노인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돌봄으로써 작으나마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마을 앞 넓은 들판을 잘 볼 수 있는 곳에 까페와 식당을 차리면 높은 백운산이나 도솔봉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근 도시인들의 힐링 마을로서 합당한 농외소득을 얻을 수 있다. 멀지 않아 곧 지곡에서 한국의 미래 농촌의 새로운 설계도가 그려지길 기대한다.
제공=박발진 광양문화연구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