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인 ‘신라의 달밤’ - 자주외교, 실리외교를 생각하다

유현주(광양 사람과세상 대표)

2025-11-02     광양시민신문
광양 사람과세상 대표

지난 29일 한미 관세 협상 관련 세부 내용이 타결되었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한국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즉각적인 3,500억 달러(500조 원)의 현금투자를 강요하면서 전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요. 트럼프의 날강도 같은 행동에 국민들은 분노했고, 트럼프의 요구를 들어줘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요?

정부 발표의 핵심 내용을 보면 대미 투자 중 2,000억 달러는 현금투자로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투자로 하고, 이 투자 금액을 일시불이 아니라 연간 200억 달러 상한으로 10년간 할부로 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와 부품 등 주요 수출 품목 관세는 15%로 유지하기로 했고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원리금을 회수할 때까지 미국과 5:5로 이익금을 나누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이 상황을 보면서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생각났습니다. 200억 달러씩 10년을 투자하건, 1,500억 달러를 민간기업이 투자하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퍼주는 것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익금을 5:5로 나누는 것은 어느 나라 셈법인가요? 미국은 0원을 투자하는데 왜 이익금의 50%나 가져갈까요?

또 주요 품목 관세를 15%로 합의했다면서 ‘25%에서 10%를 낮췄다라고 보도하는데 이미 지난 8월부터 15% 관세는 적용되었고, 한미 FTA로 우리나라와 미국은 상호관세 0%의 무역상대국인데 15%나 관세가 인상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것 아닐까요?

정부는 최선의 방어를 했다고 브리핑하지만 명백하게 우리는 강도당했습니다. 정부 출범부터 외쳤던 자주외교, 국민주권정부라는 슬로건이 내팽개쳐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이런 날강도 짓을 하는 것일까요?

미국은 오랜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무역적자가 2조 달러에 육박하고, 재정적자는 이자만 약 9,000억 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 1,000조 원이 넘습니다. 국방비 천조국에 이어 순이자 천조국의 명칭도 얻게 되었죠. 트럼프가 세계를 향해 일방관세를 때린 이유는 이렇게 심각한 적자를 줄이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미국은 하나도 위대하지 않으며 세계 제일 패권의 지위가 무너졌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세계를 향해 관세폭탄을 투하하면서도 지난 7월 자국 부자들의 세금은 깎아줬습니다. 그 금액이 향후 10년간 45천억 달러에 상응한답니다. 관세 인상으로 벌어들일 수익은 향후 10년간 2조 달러로 예상되므로 이렇게 해 봐야 적자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지금 미국에 투자하는 것은 딱 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우리가 왜 미국을 위대하게만들어 깡패짓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데 동참해야 할까요?

급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입니다. 트럼프 임기 3년 남았는데 얼마나 마음이 급하겠어요. 시간은 우리 편이었다는 것입니다. 더 신중하게 기다리고 국민들의 의견도 청취해서 협상하고 결정해도 늦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브라질, 인도, 중국의 경우 미국의 일방관세에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트럼프는 브라질에 50% 관세를 매겼는데 그 이유가 가관입니다. 내란 혐의로 투옥된 친트럼프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압박이었다죠. 룰라 대통령은 굴하지 않고 브릭스(BRICS)의 좌장 격인 중국을 방문합니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했다고 미국으로부터 징벌적 관세 25%를 더해 50% 관세 폭탄을 맞습니다. 이에 모디 총리는 브릭스와 협력하겠다고 하면서 맞서고 있죠.

중국은 어떤가요?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미국이 20%면 중국도 20%, 미국이 125%면 중국도 125% 똑같이 맞불 관세를 매기면서 관세전쟁을 이어갔는데요, 결국 중국이 희토류대미 수출 중단을 선언하면서 미국이 백기를 들게 됩니다. 더군다나 중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을 선언하자 트럼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중국은 미국 대두의 50% 이상을 수입하는 나라이고, 대두를 생산하는 지역이 대부분 트럼프를 지지했던 주지사들이 있는 지역이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이기에 더더욱 정부의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은 매우 유감입니다.

미국에서 반트럼프 시위인 노 킹스(No Kings 왕은 없다)’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APEC 회의장에 트럼프 굿즈를 전시하고 무궁화대훈장을 선사하고 신라 금관을 선물해 트럼프가 왕관을 쓰고 이 되는 밈까지 유행하게 만들다니요.

세계는 다극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경제질서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이제 3050클럽에도 가입한 세계 10권 안에 드는 선진국입니다. 한미동맹만 외칠 것이 아니라 다극화에 나서는 것이 자주외교 실리외교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