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기의 지랄발광 이야기

▲ 정채기 강원관광대학교 교수. 한국남성학연구회장
언젠가 장모님 산소를 찾았는데, 큰 처남댁이 우리들에게 특이한 소식을 전하였다. “이상해요. 저 밑에 있는 묘의 비석 뒷면에 어떤 이름이 무슨 테이프 같은 걸로 지워져 있어요. 내가 가까이 가보니 글쎄 사위의 이름이 이상한 테이프로 가려져 있다니까요.”

처남댁이 얘기한 문제의 그 묘비에 다 같이 가 살펴보니 이미 들은 대로 그 집 사위의 이름이 검은색의 묘비 석 색깔과는 표 나게 다른 접착테이프로 가려져 있었다. 나 또한 이 집의 유일한 ‘사위’인지라, 아닌 척하는 가운데 누구보다도 그 희한한 광경을 유심히 보았고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장인 어르신께서 묘한 웃음으로 덧붙이시기를, “거, 앞으로는 다른데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잘 가려서 받아야 되겠는 걸! 여느 집에서도 잘못하면 이런 꼴 나지 말라는 법 없잖은가!” 하신 것이다. 이 의미심장한 말씀에, 같이 간 두 처남댁들의 묘한 표정까지 덧씌워졌다.

이 의문의 사건에 대해 추정할 수 있는 바를 보자면, 몇 가지를 넘지 않을 것이다. 해당 사위의 사망 아니면 이혼, 뭐 그런 것 아닐까? 설사 사망이라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처리할 바가 아니라면, 딸과의 유감을 넘어선, 너무나 원한스러운 이혼에 대한 처가의 응징적 처사임을 확신한다. 도대체 그 사위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서 자기의 이름을 그처럼 처참히 지우게 한 채 어디로 갔단 말인가? 자기 이름 밑에 아이들 이름도 셋이나 있던데…….

이혼! 아, 이혼! 그 옛날부터 어느 시점까지 특히 여자에게 주홍글씨마냥 여겨지던 바가, 시대상황의 충격적인 변화에 따른 상황논리와 윤리성에 기저하여, 이제 그리고 아니 앞으로는 더욱더 결혼 못지않게 ‘선택을 넘어서 필수 내지 필요불가결’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이혼 이전의 순서로 ‘교제와 결혼’이 전제라면, 사랑하는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기까지 통과의례와 그 이상의 엄청난 것들을 지불하고 향유하였을 것이다. “자기, 영원히 사랑해! 네가 원하면 저 하늘의 별도 달도 따 줄께! 나는 너 없으면 못 살아, 알지?” 그리고 어찌어찌 결혼을 준비하여 축하를 아끼지 않은 많은 하객들 앞에서 결혼서약을 한 바, 그 충실해야 할 효력성과 영원해야 할 것 같은 유효성 이 대단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가히 ‘이혼의 천국 시대’인 것 같다. 별거와 이혼 등 부모 파경에 따른 ‘아버지 부재’ 상태가 사회 문제화하면서, ‘아버지가 없는 나라’와 ‘이모가 무서운 시대’(모친의 영향력이 큰 사회)라고 개탄되는 미국을 필두로 충동적 이혼을 방지하려고 급기야 ‘이혼 숙려 기간’을 제정하여 1개월도 모자라 3개월로 연장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우리나라 등의 세태는 그 외의 나라들과 대동소이함을 다 알고 있다.

나와 가까운 친인척과 친구들 중 몇몇도 이혼의 당사자들인 바, 이혼이라는 그 흔함을 피할 길 없다. 그리고 나 자신도 간혹 이혼의 위기로 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거짓을 늘어놓고 싶지 않다. 즉, 이제는 만나기도 밥 먹듯이 하지만, 헤어지기 또한 밥 먹듯이 태연하다 못해 당당한 세태가 도래한 것이다.

차제에 범람하는 이혼에 딴지를 걸어 보련다. 애초 남녀가 교제할 때 그렇게 ‘영원’의 이름으로 죽고 못 살 것 같이 하였던 언약과 행위들은 무엇이며, 수많은 하객들을 증인으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리라 맹세해 놓고, 그렇게 철 천지 원수 같이 갈라서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럴 바에는 당초 공개적인 맹세와 약속을 하지나 말든지, 아무리 남녀간의 사랑의 화학반응식 유효기간이 3년 전후, 아니 이제는 그보다 더 짧다는 긍정이나 부정도 곤란한 보고가 있기로서니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당사자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 와중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녀들은 무슨 봉변인가! 그리고 사회적인 폐해와 손실 등은 또 얼마인가? 아름답게 영원할 것이라 여겼던 부부와 가족 관계의 파괴에, 어떠한 미사여구나 변명을 전제하지 않는 가운데 “최소한으로 못한 결혼은 있어도 최대한으로 잘한 이혼은 없다”고 역설에 단언한다.

정채기 교수는 진상이 고향으로 교육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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