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인기 상승 불구 외면 받는 등록문화재로 전락
고귀한 정신 소통 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길
나의 윤동주. 아니 우리의 윤동주! 그의 짧지만 긴 인생이 담겨있는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세상에 나오게 한 곳. 암울 했던 시기,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을 지도 모를 그의 작품을 우리 곁에 영원히 살게 한 곳. 그런 역사적인 장소가 '광양'에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웠다.
별이 반짝이던 스무 살 어느 밤들, 주옥같은 그의 작품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베껴 쓰기도 했다. '별'을 헤는 대신 '윤동주' 헤는 밤을 보내다 도취돼 자기반성의 시를 여러 편 습작 했고, 아무나 윤동주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배웠다. 이런 추억들 속에 파묻혀 있던 그에 대한 존경심이 가슴을 뛰게 하고 설레게 했다. '정병욱 가옥'을 방문하기 전 나는 그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곳에 방문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대고 안을 잠시 들여다보는 것 뿐이었다. ‘기대'한 만큼의 '씁쓸함'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영화 동주' 상영이후, 윤동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와 관련된 서적들이 다양한 형태로 출간돼 나오고 있다. 광양 역시 윤동주와의 인연을 알리는데 여념이 없다. 홍보의 효과인지 타 지역에 거주한 지인들까지 '너 광양에서 일하고 있다했지? 정병욱 가옥에 가봤어?'라며 덧붙여 '광양'에 대한 무궁무진한 관심을 쏟아낸다. 어깨 '으쓱'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이런 상황에 왠지 걱정이 일고 조바심이 든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지금 현장은 ‘기대’한 만큼의 ‘씁쓸함’만
생생한 첫 방문 체험에 발로한 이러한 조바심과 걱정을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처음 방문한 이들이 이곳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생각된다. 눈에 띄는 안내판이 보이질 않았다. 어렵사리 정병욱 가옥을 겨우 찾는데 성공한다면, 이 가옥이 갖는 진가를 집 앞에 놓인 몇 줄의 글만이 설명해줄 것이다. 찾아오기 전에 인터넷을 뒤적였다면 이미 알만한 내용을 알려줄 뿐이다. 그곳에서 눈을 떼고 자연스럽게 유리창에 바짝 붙어 뚫린 마루를 감상 할 것이다. 그 감상을 작은 표지판 하나가 친절하게 돕는다. '원고가 숨겨져 있던 곳'.
주변 지역에 비해 문화 관광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 광양은 실로 '엄청난 것'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이 어떤 곳인가. 그 가치와 의미는 오래전부터 방치돼 왔었다. 이제야 세상이 윤동주를 외치는 지금에서야 조심스레 '정병욱'을 언급하고 '정병욱 가옥'을 언급한다. 다양한 행사들 속에 윤동주와 함께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정병욱 박사의 노력을 조금씩 서서히 이야기해 나가고 있다. 물론 지금이라도 좋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또 알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 앞서 고민해 봐야 한다. '기대'를 품고 와서 뜯겨진 마룻바닥만 보고 가게 되기 전에 말이다.
윤동주 하면 정병욱 박사를 떠올리고 광양을 인식 할 수 있게 의미와 가치만 홍보할 것이 아니라 진짜 마룻바닥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고 갈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 되길 원한다.
더불어 광양을 찾는 이들에게 또는 시민들에게 광양 출신의 작가를 알리고 현재 광양 내에서 문학의 꽃을 피워 내는 지역 작가들도 동시에 알릴 수 있고 지역 내 문학 활성화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아우르는 문학관’으로 이용 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전국의 윤동주를 사랑하는 이들이 ‘기대’ 뒤에 ‘씁쓸함’ 대신 광양에 대한 더 큰 기대와 즐거움이 함께 할 수 있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고귀한 정신적 산물을 함께 느끼고 소통 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