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14일 0시 ‘폐역’

지난 1968년 2월 8일 운영을 시작해 48년간 진상역과 광양역을 잇는 역할을 했던 옥곡역이 14일 0시를 기해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으로 남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에 광양시민신문에서는 지난 48년간 옥곡면민들의 벗이자 발이 돼 주었던 기차와 그 가차를 타기 위해 드나들었던 옥곡역을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광양역을 출발해 옥곡역에서 잠시 멈추는 경전선 상행 무궁화열차를 타고 약 12분간의 기차여행을 떠나보았다. <편집자주>

“안내말씀 드립니다. 한국철도공사에서는 경전선 진주~광양 간 철로 복선화사업으로 인하여 2016년 6월 14일부터 옥곡역이 폐지되오니 이용에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옥곡역에 도착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른 2600원. 광양역에서 옥곡역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먼저 탑승해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이들 사이를 지나쳐 자리를 찾아 앉았다. 광양역에서 함께 기차에 오른 여자가 바로 건너에 앉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과도한 관심이었으리라. 그녀는 귀에 이어폰을 꽂던 것을 잠시 멈추고“ 부산이요”라고 답했다.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전 옥곡역에 가고 있어요”라고 대답해줬다. 덧붙여 다음에 정차하는 역이 바로 그 곳이라는 사실과, 이제 곧 그곳에 기차가 서지 않게 된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이 오기 전에 그곳에 가려고 이 기차에 탑승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익숙하고 또 익숙한 곳들이 차창 밖에 펼쳐졌지만 짧은 시간을 모으고 훗날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쉴 세 없이 눌렀다. 잠시 후,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그에 맞춰 차창 밖으로 흘러가던 풍경들이 서서히 속도를 줄여 갔다. 13:05분 옥곡역에 정차한 부전행 1954열차는 나를 내려놓고, 잠시 후 떠났다.

옥곡역 플랫폼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기차 칸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가며 소리 내어 세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기차를 보면 꼭 이렇게 소리 내서 세곤 했다. 다 세기도 전에 기차는 항상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숫자를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셀 수 있게 됐을 때엔 기차 칸 수를 하나도 세지 못했다. 기차보다 더 빠른 것이 세상에 많았고, 그것들의 속력을 뒤쫓느라 금방 전까지도 나는 쓸모없이 바빴다.

기차 칸을 다 세고 나니 가려져 있던 자그마한 간이역,‘ 옥곡역’이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다.
옥곡역에 대해 몇 가지 묻고자 역무실에 들어섰다. 벽에 붙은‘ 지적확인 환호응답 이행철저’라는 노란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옥곡역 부역장은 옥곡역이 착공된 시기와 운영시기를 연도와 날짜까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혹시 자신의 기억이 틀릴 수도 있으니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며 선반에서 책 한권을 꺼내 펼쳐보여 준다.

이곳은 1967년 10월 5일 신축 착공에 들어가 1968년 2월 8일부터 보통역으로 운영을 시작했고 얼마 전까지 하루대략 20여명의 승객이 이용했다.

주말의 경우 광양제철고 학생들로 좀더 많은 승객이 이곳을 이용했다. 옥곡역의 열차 정차횟수는 상행, 하행 총 8회다. 이전에는 더 많았는데 점차 이용객이 줄어들어 그 횟수도 차츰 줄어들었다.

진주~광양간 복선화 사업으로 오는 14일 00시부터‘ 옥곡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사실상 13일 22시 19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기차는 오질 않는다. 진주 ~광양 기준 단선 경전선 철도는 66.8km였는데, 이번 복선구간 사업으로 그 거리가 51.5km로 개선되고 대략 30분정도가 단축된다. 열차 운행횟수는 대폭 늘어나 하루 36회에서 157회 정도 증가한다.

바로 앞에 위치한 슈퍼에서 만난 주민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뭘 그렇게 찍어주고 있느냐. 나를 좀 찍어주게”하고 농담을 던진다. 역 앞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이어서“ 옥곡역으로 우리 애들이 오고 가고 참 많이 했는데 우리 애 엄마도 애들보러 기차타고 자주 갔고. 이제 끊긴다니깐 아쉽긴 하네. 기차 타고 여행 왔는가?”하고 묻는다.

옥곡역을 알리는 빛바랜 안내판이 보인다. 그리고 역사 앞의 빨간 우체통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치던 수많은 날들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고즈넉하고 차분한 느낌의 옥곡역. 다른 어느 간이역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푸근한 정이 느껴지는 곳.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시간들은 모두 말이 없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운 순간들을 잠시 불러본다. 아무런 추억도 연고도 없는 곳이지만 이와 같은 아쉬움이 기차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수많은 기다림과 헤어짐을 이곳에서 이끌어냈을 것이다. 눈앞에서 그 모든 순간들이 잠시 포옹하고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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