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인문학강사

《사기 ‧ 이장군열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는 이광(李廣)이 사냥을 나갔는데, 풀숲에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있는 힘껏 활을 잡아당겼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서 조심조심 다가가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웬걸? 화살에 박힌 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아닌가! 괴이하게 여긴 이광이 조금 전 활을 쏜 위치로 돌아와 다시 한 번 힘껏 활을 당겨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화살이 바위에 박히지 않았다. 이에 다시 활을 당기기를 여러차례 반복해 보아도 끝끝내 다시는 바위를 뚫을 수가 없었다.”

‘중석몰촉(中石沒鏃, 화살촉이 바위를 뚫다)’이란 고사성어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 위기의 상황에서 사력을 다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한 점에 집중하니 심지어 바위도 뚫리더라!

진위여부야 물론 알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집중과 몰입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잘 말해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맹자(孟子)와 더불어 유학의 쌍벽을 이루는 순자(荀子)도 이와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그의 저서 가운데〈 권학〉편에 나오는 이른바‘ 지렁이의 가르침’을 인용해 본다.

“지렁이에게는 발톱이나 이빨의 날카로움도 없고 근육이나 뼈대의 튼튼함도 없다. 그런데도 언제나 위로는 진흙을 먹고 아래로는 황천의 물을 마시는데 이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오직 마음을 한 군데 쏟기 때문이다(用心一也).

이에 반해 게는 여덟 개의 발에다 두 개의 집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장어의 굴이 아니면 의탁할 곳이 없는데 이는 또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마음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굳은 뜻이 없는 자는 밝은 깨우침이 없고, 묵묵히 일하지 않는 자는 빛나는 업적이 없다.

여러 길을 함께 가려는 자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며 한 마음으로 두 임금을 섬기는 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두 눈은 두 가지를 동시에 보지 않으므로 비로소 밝게 보고, 두 귀는 두 소리를 동시에 듣지 않으므로 비로소 밝게 듣는다. ……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오직 하나에 마음을 쏟는다(結於一也).” 가슴에 참 와 닿는 구절이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과가 얼마나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한낱 미물로 치부하기 쉬운 지렁이의‘ 일심(一心)’을 통해 잘 설명하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가능성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가운데 자신이 온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길을 찾아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덟 개의 발과 두 개의 큰 집게를 가진 게처럼 애초에 구비된 좋은 조건과 환경이 일을 이루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직 자신의 일심(一心)이 일을 이루는 관건이다.

물론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다 이루어지겠는가마는 그래도 무슨 일을 이루려면 우선 자신의 온 마음을 그것에 집중하고 쏟아야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설사 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적어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후회만큼은 뒤따르지 않게 될 것이다.

예전 학창시절에 자주 듣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정신일도(精神一到) 하사불성(何事不成)! 그때는 그 말이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뜻을, 그리고 그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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