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 광양사랑의교회 목사

읍내로 차를 타고 나가서도 다시 또 한참을 걸어서 가야 하는 상사마을 초입과 마을 안쪽으로 난길을 통과해 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가는 곳에 조부모의 묘역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신지라 딱 20년 터울인 큰 형님께서 늘 벌초와 성묘의 길을 인도했었습니다. 워낙 드문 성씨라는 느낌이 있었지만 동네에 일가친척이 없이 자랐는데 이렇게 읍네 근교에 있는 마을에 친족이 살고 계신다는 사실이 참 낯설었습니다. 기예 정을 나누거나 애정이 가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어머님이나 형님은 그곳에서 나고 살았던 기억이 있기에 그 관계는 저와는 달랐습니다.

사춘기 이전부터 다닌 것으로 기억합니다. 해년마다 명절 전후로 일 년에 꼭 세 번은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큰 명절 두 번과 초가을 벌초를 위해서 또 한 번 이렇게 매 해마다 방문했었습니다. 본가를 출발하여 가는 여정에서 고모부님이 좋아하시던 술과 안주거리들을 구매하는 가게도 늘 같은 곳을 이용했기에 가게에 들를 때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어느 때부턴 가는 알아보시고 음료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며 반겨주셨습니다.

그렇게 다닌 시간들이 30여 년이 넘었기에 늙지않으실 것 같던 그 가게 아주머니도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세월이 많이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올해도 잘 살아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쪽 문을 열고 나오시는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상사 마을 초입에 있는 조모의 묘역을 늘 먼저 방문했습니다. 산 등성이로 가서 내려오는 길이 있었고, 안쪽으로 들어가서 올라가는 길도 있었습니다. 묘역 앞에 있는 논에 농사를 지을 때는 길이 묵어 있지 않아서 그 길로 가면 수월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는 벼를 심지 않고 밭작물을 심더니만 그마저도 심지 않아 묵어버릴 때는 한참이나 길을 뚫고 가야 하는 일이 무척 곤역이었습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가다가 너무 깊이 들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등성이에 있는 밭으로 올라가서 내려오는 길로 가기도 했는데 그 길도 밭작물이 재배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마다 묘역으로 가는 길은 늘상 쉽지 않았습니다. 서너 평 남짓한 조모의 묘역을 벌초하거나 성묘하는 일은 잠깐이었지만 가는 길을 찾아갈 때마다 변하는 산천들을 볼 때마다 세월의 유수함을 절감하곤 했습니다.

마을 안쪽을 통과해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조부의 묘역을 방문할 때는 연로하신 고모부님이 동행하셨었습니다. 처음 뵀을 때 근 70이 다 되었었고 그 뒤로도 30여 년이 지난 때까지 고모부님은 장수하셨습니다. 상사마을엔 당몰샘이라는 곳이 있는데 장수마을로 소문이 난 곳이었습니다. 고모부님은 연로하신 이유도 있으시지만 원래부터 말이 느리신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조부의 묘역을 가는 여정엔 늘 지팡이 하나 들고서 한복을 입으신 채로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처음엔 그분이 하시는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관심도 없었고 또 잘 알아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 때마다 늘 함께 동행해 주시면서 묘역을 가는 산길의 구역마다 이야기하시는 레퍼토리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조금 더 크고 나서야 고모부님께서 하신 이야기가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년도 더 전에 깊은 산속에 있던 조부의 묘를 이장하면서 있던 이야기인데 아버님께서 무척 힘이 센 분이라는 사실과 이장 과정에서 기막히게 바위틈에 묘를 쓰실 수 있었다는 것과 아버님께서 한결같이 보여주셨던 든든한 모습 등에 대한 회상이셨습니다.

산길을 올라가시기가 버거운 발걸음이기도 했고, 연로하셔서도 그랬지만 느린 말투로 숨이 넘어 갈 듯이 말씀하시면서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입맛을 다시면서 하신 그 이야기들을 듣고 또 들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긴 담뱃대를 물고서 한 모금 머금으시고 내뱉고 말씀하시고 하는 것까지 더해지니 묘역에 당도하고 다시 내려오는 내내 그렇게 오래전 일들을 되새김질해 주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던 제겐 그 고모부님의 이야기는 처음엔 남 이야기였지만 듣고 또 들으면서 나의 아버지의 이야기로 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늘 함께 해 주셨던 고모부님은 100세가 다 되셔서 몇 해 전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함께 하지 않으셔도 묘역에 가는 길마다 고모부님이 해 주셨던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반복되는 명절과 그 가운데 꼭 들려줘야 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선친들의 이야기든 시국의 일들이든 말귀를 알아듣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 여정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기억이 되고 역사가 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부끄럽지만 상기해야 할 것이 있으며, 유훈처럼 과제로 남겨진 이야기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들 중에서 반드시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음을 늘 상기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사뿐 아니라 수년 내 우리 현대사의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전수하는 일도 지금의 역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몫입니다.

그 몫을 감당하는 일은 가슴 아픈 역사들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작은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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