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경로당’_ 금광블루빌 편

여름철 휴식 마치고 하반기 10개소 방문 시작
대화가 줄어드는 아파트에서 모처럼 이야기꽃 피워


앉아만 있어도 절로 땀방울이 흐르던 지난여름의 기억이 무색하게 가을바람이 성큼 다가와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 바람을 타고 중마동 경로당에 가을 손님이 찾아왔다.

휴식기를 마치고 하반기‘ 이야기 경로당’ 사업이 다시 문을 열게 된 것.

가을 하늘을 배경 삼아 첫 플래시를 터뜨릴 행운의 주인공은 바로 금광블루빌 어르신들.

아침 10시, 경로당에는 추석 못지않게 향긋한 음식 냄새가 피어오르고 방송을 듣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마다 하나 둘 모여들었다.

20년 만에 꺼내 입은 빳빳한 모직 정장과 단정한 베레모.

비록 세월에 키가 작아져 어깨도 넉넉해지고, 바지도 길어져 바닥을 쓸지만 세월에 순응하는 것도 하나의 순리라 말하는 할아버지.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남기고 싶어. 그런데 맨날 잠바떼기만 입다가 양복입고 넥타이까지 메려니 영 어색하구만. 그나저나 막걸리 있는가? 기분전환용으로 오늘 한번 맘껏 먹어보고 싶네”

할머니들은 자식을 여읠 때 입었던 한복을 상자에 고이 담아 왔다.

봉사자들이 머리도 말아주고, 분칠도 해주는 동안 마치 처음인 듯 낯설어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 같았다.

‘화사하니 이쁘요’‘ 시집 다시 가야겄소’ 라며 서로에게 칭찬 세례가 쏟아진다.

색을 잃었던 입술은 가을날의 코스모스처럼 분홍빛으로 피어났다.

“내 나이가 몇이냐고? 별로 안 먹었어. 73. 지금이 백세시대 아니여? 내 나이 정도면 한창이지”

꽃단장을 마친 할머니들은 서로 한복을 입혀주고, 저고리 고름을 매주며 오랜만에 정을 나눴다.

아파트에 살다보니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기도 쉽지가 않기 때문에 할머니들에게 오늘은 너무나 귀하고 값진 시간이다.

“어떻게 보면 아파트는 새장 같아. 모든 공간이 막혀져 있잖아. 그러다보니 서로 이야기할 기회도 없고, 다들 개인적으로 생활하게 돼. 그럴수록 나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해야지. 집에만 있으면 이웃이 뭘 했는지, 아파트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어떻게 알겠어? 그나마 요즘은 세월이 참 좋아져서 노인들을 후하게 대접해주고 배려해줘. 그래서 이런 기회도 오는 것 아니겠어? 우릴 위해 수고해줘서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워”

모든 준비가 끝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경로당에 드리운 나무 그늘 아래 섰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훗날엔 이 사진을 보면서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라고 말하는 어르신들.

그렇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추억을 남긴 어르신들은 사랑나눔복지재단의 후원금으로 잔치음식과 막걸리를 넉넉히 즐기며 남은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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