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의 쉴말한 물가

어느 여름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한 손엔 바가지가 담긴 양동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엔 대나무 빗자루에서 뺀 회초리 하나를 들고 텃밭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양동이는 물을 주는 것이 맞는데 왜 회초리를 들고 가실까 의아해서 유심히 봤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호박 넝쿨이 있는 곳으로 가시더니 양동이에서 물을 퍼서 호박에게 부어 주시고는 이리 저리 다니시면서 들고 가신 대나무 회초리로 호박넝쿨의 호박잎을 때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벌레를 죽이기엔 너무 엉성한 것 같고, 무엇을 쫓기엔 넝쿨을 진짜로 때리시는 것 같고, 한편으로 또 뭐라고 중얼거리시는 소리를 들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왜 호박을 많이 안 키우냐!"라고 하면서 호박넝쿨을 나무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왜 저러시지? 벌써(?) 그러실 나이는 아닌데..그래서 물었습니다. "엄마! 왜 그래요?" "이렇게 때려야 호박을 많이 열고 호박이 굵어진단다!" 하시면서 이놈들 하며 계속 나무라셨습니다. 식물이 사람 말을 알아듣고 그렇게 음악을 틀어주면서 키운다는 소리가 아직 그때는 생소하던 때라 그냥 그러려니 하며 별일이 다 있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전 진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무슨 식물이 사람 말을 알아듣고 회초리를 무서워 하는 식물이 다 있다 생각했습니다. 선인들의 지혜(?)에 놀라기도 했었지만 미스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안 것은 고등학교때였습니다. 생물시간이었는데 당시 생물 선생님이셨던 분은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호박넝쿨을 회초리로 때리는 일에 대해서 알고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비밀은 가지치기에 있었습니다. 호박과 같은 넝쿨 식물들은 가지를 뻗어나가는 일을 목숨걸고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없이 가지만 뻗어나가고, 정작 열매 맺는 일일이나 열매를 키우는 일은 가지 뻗치는 일 때문에 영양을 소홀히 해서 호박을 작게 맺거나, 별로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뻗어가는 줄기의 끝 부분을 잘라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무의 가지치기와 비슷하죠, 고추도 어릴적에 순을 따주는 것 등도 다 같은 이유입니다.

그랬습니다. 회초리로 때리다가 어느 순간 호박넝쿨의 제일 끝 부분이 맞아서 잘려지면 당연 호박이 굵어지고 열매를 많이 맺는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무성한 호박넝쿨처럼 열매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삶이 있는 듯 합니다. 적당한 때 그 줄기를 제거하거나 멈추지 않으면 분주하기만 하지 정작 열매는 없는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삼복 더위에 일이 손에 잘 안잡히는데도 사람들은 다들 분주하다 합니다. 그래도 일과 인생의 가지치기를 위해서는 아깝고 아파도 가지치기 시간을 가져야 하겠죠. 방학 한 아이들과 함께 시골에 가서 호박잎 따다가 쪄서 쌈도 싸 먹고 애호박으로 전도 해먹으면서 분주한 일상에 가지치기 한 번 해주면 어떨까요? 억지로 회초리 맞기 전에...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