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기의 지랄발광 이야기

▲ 정채기 강원관광대학교 교수. 한국남성학연구회장
일상에 쫓겨 느지막하게 귀가하는 아버지, 파김치가 된 모양새로 아이에게 비쳐지는 아버지의 심정도 편할 리는 없다.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더 멋지고 듬직한’ 아버지로 보여 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귀가 시간이 늦는 것은 그렇다 쳐도, 문제는 자녀와의 의사소통이다. 얼굴보기도 힘드니 대화가 적어지고 차츰 ‘대화 단절’이라는 두터운 장벽과 맞닥뜨리게 된다. 가정에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가정 해체의 의미와도 같다.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쫓기듯 살다보니 한데 어울려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의 대화 부족은 가족구성원 간에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준다. 서로를 이해하고 또한 이해하려는 폭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원한다면 가족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지속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봐도 하루 중 가족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 평균 30분이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채 5분이 안 되고 그나마 훈계조의 말이 대부분이다.

대화는 사랑이고 이해이며, 관용이고 또한 포용의 의미를 지닌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용서한다고 해도 표현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대화가 오갈 때에만 표현의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되도록 방법을 찾아가자. 그리고 대화의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

거의 매일 늦게 귀가한다면 작심하고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일찍 집에 올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절하자. 평소보다 30분~ 1시간 정도만 당겨도 충분한 여지가 있다. 물론 시간이 빠듯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겠지만, 그거야 아버지가 하기 나름이다. 퇴근 후의 약속은 대개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 저녁 식사를 하고, 술자리를 갖고, 유흥의 분위기에 빠질 확률이 비교적 높은 것이 퇴근 후의 시간대이다. 아버지와 남편의 도리로 비춰보면 전혀 영양가 없는 시간들이다.

업무 추진으로 피치 못할 약속이 아니면 가급적 낮 시간을 활용하고, 그 시간의 공백만큼 더 열심히 하면 그날 처리해야 될 일에는 별 지장이 없다. 만약 퇴근 후에 지인과 약속이 잡혀있다면 점심시간에 만나 식사를 대접하며 일을 보면 간단해 진다. 다른 날에 비해 일찍 가정에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가족의 관심을 얻고 대화할 채비가 갖춰진 셈이다.

쉬는 토요일에는 반나절이라도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계획을 짜보자. 마음먹기에 따라 두 서너 시간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장소는 많이 있다. 인근의 대형 마트에 가는 것도 아이들에겐 색다른 즐거움이 된다. 매장을 둘러보면서 아이가 갖고 싶어 했던 물건도 사주고, 시식코너에서 음식도 맛보고, 식당가에서 떡볶이에 쫄면이라도 먹는다면, 보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동시에 채울 수 있다. 아마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의 간극도 그만큼 좁아질 것이다.

가끔은 휴일 아침에 자녀와 함께 산책도 하자. 요즘은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되어 있어 운동이나 걷기를 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있다. 조금 이른 시간이면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라도 일단 문밖으로 데리고 나가자. 아이가 눈을 비비며 따라 나오면 대화의 물꼬는 트이게 된다. 그러니 처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함께 길을 걸을 때는 아이의 손을 잡고 보조를 같이하며, 아이의 생각과 눈높이에 맞춘 대화를 하는 것이 방법이다.

대화의 유형은 여러 가지겠지만, 컴퓨터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영화 등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게 좋다. 그러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든지, 아버지의 고민 정도를 가볍게 들려주는 것도 아이의 사고력을 높이는 대화로 손색이 없다. 아이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그 만큼 대화도 다양해지게 된다. 아이도 아버지만큼 기분이 좋아지고, 그 날 이후의 산책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그 어느 일보다도 아버지가 우선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하는 것이 가족 사랑이고, 자녀와의 의사소통이다. 가정에서의 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바쁜 업무를 이유로 자녀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다. 심신이 건강한 자녀로 키우고 싶고 또한 아버지 자신이 가정에서 따돌림 당하기 싫으면, 가정에서 ‘수다쟁이 아버지’가 되라.

정채기 교수는 진상이 고향으로 교육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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