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광양 역사교과서_ 2

지금으로부터 1만년전, 빙하기가 끝나고 기온이 상승하자, 광양은 오늘날과 같은 지형과 자연환경을 지니게 되었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은 뗀석기 대신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를 사용하고, 농경생활을 시작하며 늘어난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 토기를 만들었지. 우리는 이걸 신석기혁명 이라고 불러.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어.

이시대 광양사람들은 광양만과 섬진강에서 조개를 잡아먹고 그 쓰레기를 한데 모은 조개더미, 즉 패총을 남겼어. 이 패총에서는 많은 토기조각과 간석기, 동물 뼈들이 출토 되었지. 조개껍질의 풍부한 탄산칼슘 덕분에 썩지 않고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대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거야.

▲ 돈탁마을 발굴 광경

신석기시대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은 뭘까?

맞아, 토기야. 한반도에서는 토기표면에 빗살무늬의 기하학적 무늬를 새긴 토기인, 빗살무늬토기가 주로 출토되고 있지. 광양에서도 진정리 중산마을과 오사리 돈탁마을에서도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수습되었어. 또 신석기 사람들은 동굴에서 나와 움집을 짓고 살았지만, 아쉽게도 광양에서는 움집터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어.

현재 세계 인구는 70억 명을 넘어섰는데 기원전 8000년경 신석기 인구는 약4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어.

▲ 돈탁패총 골각기

그런데 현재 광양의 인구가 15만정도이니, 신석기시대 광양에는 약80명이 살았다고 추정할 수있지. 매우적은 수였지.

때문에 농경 및 목축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대부분의 식량은 구석기시대처럼 채집, 사냥, 어로 등에 의존하고 있었지. 그래서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며 살았던 거야.

도덕이 아닌 생존을 위한, 가난하지만 평등한, 그런 더불어 살기였던 거지.

■ 더 알아보기

오사리 돈탁마을 조개더미 돈탁마을 조개더미에는 무슨 조개들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신석기인들은 무슨 조개를 먹었을까?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갓굴, 참굴, 꼬막 등 지금 우리가 먹는 조개들을 똑같이 먹었어. 우리가 먹고 있는 조개들은 몇 천년 전에도 있었던 거지. 역사를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우리랑 똑같은 사람들 얘긴데 말이야.

그럼 이제 광양에 있는 돈탁마을 조개더미에 대해 알아보자!

1983년 광양 진월면 오사리 돈탁마을에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가 발견 되었어. 그리고 2011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했지.

▲ 돈탁패총 석기

하지만 사람들이 땅을 파고 과수원을 지으면서 지표면으로부터 깊지 않은 위치에 묻혀 있던 유적들은 망가져 있었지. 하지만 땅 깊숙이 묻혀있는 유물들은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었어.

그래서 기원전 3000년~2000년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조각들, 갈돌, 동물뼈 등을 발굴할 수 있었고 신석기시대 조개더미인 것을 알아냈지.

사실 돈탁마을의 조개더미 지역은 현재 과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어. 발굴할 당시에 과수원지역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사유지라서 함부로 발굴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발굴팀이 과실나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무가 없는 공간을 활용해서 열심히 발굴을 했어.

그런데 조개더미 유적의 중심으로 알려졌던 발굴터는 사실 유적의 주변부이고 마을이 유적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밝혀졌대. 돈탁마을에 가면 집과 집 사이에서 조개더미들을 쉽게찾을 수 있는 거지.

정말 신기하지 않아? 옆집 친구 보러 가는 길에 발에 밟히는 조개껍질이 신석기시대의 것 이라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유적의 정확한 조사를위해서 돈탁마을 조개더미를 발굴했던 목포대학교 박물관 측에서 제대로 된 발굴조사를 바라고 있대.

▲ 돈탁패총 토기

언제쯤 조사가 진행될까? 빨리발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광양에 돈탁마을 조개더미만 있냐고? 그건 아니야. 진월면 오사리 사평마을과 진정리 중산마을에도 신석기 조개더미가 있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발굴이 되지 않았어.

이런 유적들이 빨리 발굴되어서 신석기시대에 광양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우리가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때까지 우리는 유적이 훼손 되지 않도록 잘 보존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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