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경로당’_ 무등파크 편

중마동 봉사단이 방문하기로 약속돼있던 지난 주 수요일 아침.

무등파크 소이경로당은 모처럼 시끌벅적했다.

사진 한 컷에 실리기 위해 저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렵게 경로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많았다.

중마동주민센터의 작은 이벤트는 얼굴보기 힘든 아파트 이웃마저도 만나게 해주는 만남의 장이요, 가을날의 두 번째 추석이었다.

▲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 친구들아

“한번 봤으면 했는데 그리 안 나오던가… 요즘은 어때, 몸이?”

계절이 바뀌어도 만날 수 없었던 그리운 친구를 만나자마자 어르신들은 제일 먼저 서로의 건강을 살핀다.

삼삼오오 모여 그동안 아팠던 이야기, 넘어졌던 이야기, 그래서 속상했던 이야기들을 봇짐 풀 듯 늘어놓는 할머니들.

서로의 손을 잡고, 그래도 이렇게 경로당에 나와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을 쓸어내린다.

“나는 여름에 아파 죽다 살아났어. 넘어져서 여그가 뿌러져버렸어. 다리고 손목이고 성한 데가 없다. 얼굴 살도 쪽 빠졌지”

“나는 봄에 죽을 똥 살아났어. 건강이란 게 한순간에 그리 되는기라. 성가롤로에 갔다가, 전남대병원으로 갔다가…또 저기…”

어르신들은 길고 고단했던 병원 여정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며 위안 받는다.

‘건강하게 사는 게 복’이라는 말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저마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들의 염려는 봉사단의 손길에 차분히 가라앉는다. 메이크업 봉사자의 볼터치에 근심 하나가 사라지고, 미용사가 보글보글한 머리를 고데기로 말자 걱정 한 개가 연기와 함께 사라지며 희망처럼 봉긋하게 솟아오른다.

“어른들 위해 이렇게 돈도 안 받고 꽁짜로 화장도 해주고 머리도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내가 시집갈 때는 제주도에서 말도 타고 사진도 찍었어. 그 때는 나도 멋도 내고 화장도 매일 했는데, 이제는 아파서 그럴 힘도 없고 자꾸만 추워서 옷만 껴입게 되네”

▲ 할머니의‘ 즐거움’을 위해 헌신하는‘ 무등자원봉사자’

경로당 한 편에서는‘ 무등자원봉사자’들의 음식 장만이 한창이다.

▲ 복지재단 후원으로 마련된 진수성찬

전날부터 수육을 삶고 나물을 무치느라 정신없었지만 그 노동은 하나도 고되지 않고 오히려 달콤했다.

고미화 부녀회장은“ 20년이 흘렀어도 경로당에 역사를 남길 만한 사진 한 장 없어 항상 아쉬웠는데, 이렇게 좋은 행사를 마련해줘 너무 감사하다”고 꿀떡을 접시에 담으며 말했다.

서영준 중마동장은“ 올해 중마동 특수시책인‘ 이야기 경로당’이 복지재단의 후원과 자원봉사의 열정으로 마무리 단계까지 잘 해내왔다”며“ 비록 경기가 어렵지만, 이렇게 우리 사회를 빛나게 해주는 이들이 있어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또“ 어르신들이 옛 추억을 되새기며 한복을 입고, 멋을 내며 젊은 시절로 돌아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면 내 부모님처럼 마음이 흐뭇하다”며 어르신들에게‘ 건강하게 사시고, 아프면 돌아가시라’라는 따뜻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화사하게 꽃단장을 마치고 무등파크 작은 도서관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가벼이 흘러 보내듯, 고운 미소를 지어본다.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이 무등파크 소이경로당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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