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 칼럼 ‘사람이 희망이다’ - 광양보건대학교 교수

성경이 기록하는 천지창조의 기사 중에 신이 하늘에 빛을 발하는 광명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게 했다는 대목이 있다.

어제 뜬 해와 오늘 뜬 해가 다를 바 없고, 어제와 오늘이 마찬가지이며, 가는 해와 오는 해가 딱히 구별될 만한 다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시간의 흐름과 해의 바뀜에 유의미한 관념적 가치를 부여한다.

해마다 새해가 밝아오는 순간을 온가족과 함께 큰 소망과 계획을 품고 새로운 각오와 자세로 맞이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정은 성경의 취지에 따른다면 본유적인 것이요, 천부적인 것이라 하겠다.

나도 해마다 새해를 맞는 시간이면 잠들지 않고 깨어서 새해 계획을 세우고 수첩에 이를 메모해보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그런 시간을 따로 갖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다.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차분히 한걸음 걷는 것을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이 들며 알아버린 까닭일까.

설령 계획을 세운다 해도 세상이 만들어내는 변수와 변칙 앞에서 그 계획을 관철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경험칙을 몸에 지니게 된 때문일까.

그렇지만 작금의 어지러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어떤 구체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생각하는 대신 그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늘 머무르며, 본분에 맞게 걸음을 내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졌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새해소망이라기보다 오히려 철학하는 자세로 새해를 맞았다고나 할까. 어디 나뿐이겠는가. 2016년 한 해를 함께 살아온 우리 모두가 아마 비슷한 심정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에는 질서가 있다. 혼란이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를 질서라 한다.

하늘에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이나,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것이 모두 분명한 질서다. 자연계에 질서가 있다면 인간계에는 당위(當爲)가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 마땅히 그렇게 행하여야 하는 것을 가리켜 당위라 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는 가장 기본적인 도리로서의 당위를 <논어 안연편>에서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로 가르친다.

제(齊)나라 왕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하여 묻는다. 정치가 무엇이며, 왕 된 자는 어떻게 정사를 돌봐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가 그 물음에 답으로 한 말이 바로‘ 군군신신부부자자’이다.

임금 된 자는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 된 자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 된 자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 된 자는 자식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안연편에서는 이 말에 이어 임금과 신하와 아버지와 자식이 각기 자기의 마땅한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면 비록 먹을 것이 풍족하다 하더라도 어찌 마음 편히 먹을 수 있겠는가 하며 되묻는다.

우리가 겪는 현실의 문제가 모두‘ 마땅한 본연’을 상실했기에 빚어진 일이라 생각된다. 당위의 상실이 어디 정치뿐이겠는가.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마땅한 도리와 본연의 자세를 지켜내는 일이 어려워지고 또 드물어졌다. 게다가 이를 깨우치는 스승이나 조언자도 가까이에서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당위의 문제를 관점의 문제로 치환하는 현학의 태도를 보이는 자들은 많고, 돈과 권력을 도구로 당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는 자들도 의외로 많지만, 당위를 지켜내지 못했을 때에 진솔하게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드문 세상이 되어버렸다.

국정 농단, 교육 농단의 실체가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속히 회복해야 할 일은 바로 인간 본연의 태도와 당위 그리고 사회적 질서가 아닐까 싶다.

이 일을 위해 우리 모두가 지금 나서지 않으면 아마 다시는 기회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무르며 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당위를 생각하고 지켜가는 삶이다. 질서를 지닌 자연이 아름답듯이 당위의 정신이 삶의 가치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회도 진정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2017년 한 해가 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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