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삼이 건강한 새싹삼이 되기까지 ‘60일의 여정’

예로부터 농업은 우리나라를 지탱해 온 뿌리였으나 지금은 식량자급률 하락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음식을 먹지만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 하지 않으며 식탁의 신성함은 점점 사라져 간다. 그러나 여태껏 우리를 먹이고 길러낸 것이 흙이었듯이, 앞으로도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은 여전히 흙이고 농업이다.

농업이 없는 국가는 성립할 수 없으며, 농사를 업으로 삼는 ‘농촌지역’이야말로 그 맥을 이어나갈 유일한 존재다. 이처럼 소중한 임무를 짊어진 농촌지역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시작했다.

1차원적인 농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제조·가공으로 특성화된 상품을 만들어 천편일률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나가 농장체험 프로그램 등 3차산업 서비스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이른바 지역 농가들의 반란, 6차 산업이 광양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선도농가로 손꼽히는 삼무루지 새싹삼은 연 매출 5억원을 달성하며 지역민들에게 희망을 전파하고 있다. 특화작물은 누군가 한 명이 미쳐야만 성공한다고 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황재익 대표는 새싹삼에 온몸을 내던져 귀농 5년 만에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황재익 대표가 제시하는 새로운 농업의 길은 어떤 모습인지, 광양읍 죽림리에 자리 잡은 삼무루지 농원을 찾아 전 과정을 훑었다. 광양의 눈송이보다 귀하다는 새싹삼, 그곳에 담긴 광양 농업의 청사진을 지금부터 하나 둘 그려본다.

▲ '삼무루지 새싹삼' 황재익 대표

SNS를 활용한 ‘스마트’한 판로 개척

때는 2012년, 농촌진흥청은 수경인삼 특허개발에 성공하면서 20개의 시범농가에 기술을 보급했다. 그동안 뿌리만 먹어왔던 인삼과 달리 줄기와 잎까지 식재료로 쓸 수 있는 수경재배 인삼은 농가에게 새로운 소득창출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출발했으나, 판로 개척에 실패하고 말았다.

농가들은 하나 둘 재배를 포기했지만 새싹삼에서 ‘비전’을 본 황재익 대표는 제 발로 실패한 시장에 뛰어들었다. 소비자가 찾지 않는 농산물이라서 실패했다면, 소비자가 ‘스스로 찾도록’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농산물 마케팅, 그것이 바로 황재익 씨가 찾은 열쇠였다.

“새싹삼 잎에는 사포닌 성분이 뿌리보다 8~9배 더 많이 들어있어 영양학적 가치가 뛰어납니다. 하지만 인삼 뿌리만을 먹어왔던 소비자들에게 통째로 먹는 삼은 별로 와 닿지 않았죠. 그래서 그들에게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블로그, 카페 등 SNS를 통해 농장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렸죠. 사람도 자꾸 만나면 정이 쌓이듯이, 농부의 작물도 계속 들여다보면 소비자들에게는 신뢰가 쌓이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1년을 보여줬더니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새싹삼을 찾기 시작했어요”

SNS 마케팅을 기반으로 시작한 새싹삼은 1년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 귀농 5년 차에 접어든 황재익 씨는 연매출 5억원 이상을 달성하며 광양의 선도농가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건강을 위한 기다림 ‘새싹삼과 함께한 60일’

삼무루지 농원 시설하우스는 약 500평 규모로 내부에는 수 만개의 화분이 아파트처럼 켜켜이 쌓아올려져 있다. 묘삼은 이곳에서 2달 간 세를 살며 사람들의 건강을 챙기는 늠름한 새싹삼으로 자라게 된다.

황 대표는 밭에 파종해 1년간 키운 묘삼을 공급받아 ‘저장-이식-재배-포장-출하’까지 전 과정을 담당한다. 무엇보다 ‘저장’은 소비자들에게 흙에서 바로 뽑은 신선한 삼을 제공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다.

▲ 가공실

1년근 묘삼은 농장에 들어오면 저온공간에서 휴면에 들어간다. 그다음 출하 시점에 맞춰 휴면타파(휴면 상태에서 성장이나 활동을 개시하게 하는 것)에 들어가는데 약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다. 잠에서 깬 묘삼은 소쿠리에 담겨 각자의 아파트 동으로 입주한다.

화분 하나에 약 30개의 묘삼이 심어지는데, 짧은 막대기를 이용해 묘삼의 뿌리를 잡고 흙속에 막대기를 꽂듯이 부드럽게 이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다음 본격적인 성장에 들어가는데 발아를 하지 못하고 중도탈락 하는 묘삼도 생기기 마련이라 무엇보다 환경이 중요하다.

“이식된 묘삼은 마사황토와 모래가 섞여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에서 자라게 됩니다. 자연이 주는 햇빛 속에서 수질검사를 마친 깨끗한 지하수를 마시며 건강히 자라죠. 여기에 호스를 연결해 은행, 칡 등 한약재를 발효시킨 영양분을 주입합니다”

최상의 환경에서 자란 새싹삼은 2달 뒤 출하의 과정을 밟는다. △쌈채용 △가정용 △선물용 등 용도에 따라 크기별로 수확하게 되는데, 잔뿌리가 수북하게 자란 모습은 영양이 가득하다는 증거다.

수확된 새싹삼은 △스티로폼 △종이박스 △보자기 △오동나무 상자 △팩(단체선물·행사용) 등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포장돼 배송된다. 특히 새싹삼은 ‘고부가가치’ 작물로서 인정받아 수확량의 70%이상이 일식·한정식 등 고급식당에 유통되고 있다.

▲ 교육장

돈이 되는 농업, 흙의 가치를 전달하다

황재익 대표는 생산에만 그치지 않고 제조·가공을 통해 ‘삼무루지 농원’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했다. ‘통삼’ 파우치는 설탕이나 합성감미료 등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은 새싹삼 추출액으로 바쁜 직장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제품이다. 또한 새싹삼 분말은 차로도 음용이 가능하며 각종 요리에 활용할 수 있어 주부들이 애용하고 있다.

삼무루지의 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6차 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농촌체험프로그램’이 있다. 황 대표는 가족단위나 지역학생들에게 △인삼의 한 살이 과정 △새싹삼 수확 △새싹삼 맛보기 △묘삼 화분에 심어 기르기 등의 소중한 경험을 선사한다.

“농원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은 ‘농업 역시 나의 직업으로 생각해볼만하다’

는 것입니다. 인류가 망하지 않는 한 먹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관행적인 농사보다 소득을 창출하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차별화된 나만의 것이 필요한 것이죠”

‘삼’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 어느덧 5년. 그럼에도 황 대표는 여전히 ‘농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많은 것을 이뤘지만 여전히 황 대표의 농장일지에는 해내야 할 과제들이 빼곡하다.

“바라는 것은 새싹삼 농가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보급해주고픈 마음이에요. 생산량이 늘고 출하량도 많아지면 소비자들에게 저렴하면서도 더 좋은 품질의 삼을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6차 산업 농가들이 조직적으로 협력해 해외수출의 길을 개척한다면 지역농가도 뛰어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힘이자 우리를 먹여 살린 ‘농업’은 세상이 바뀌고 수만의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시대불변의 ‘가치’다. 비록 세간에서는 농업의 위기가 도래했다고 하지만 ‘새싹삼’이라는 하나의 터전을 일군 황재익 대표처럼 지역농가에는 아직 희망이라는 뜨거운 불씨가 남아있다. 30년 전 제철소와 함께 광양에 산업도시의 태동이 일었듯이, 2017년에는 빛과 볕의 도시 광양에서 지역을 살리는 6차 산업의 태동이 또다시 힘차게 꿈틀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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