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오래 묵혀놓았던 고백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다

1908년, 여성의 생존권과 투표권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에서 시작된 세계여성의 날. 유엔의 공식 지정 이후 1922년부터 매년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광양시민신문은 올해 109주년이 된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주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남녀평등의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여성의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이 돌보랴, 남편 챙기랴, 일하랴…하루 24시간도 모자란 그녀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할까. 그녀들을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편집자 주>

▶참석자: 김진옥(47)씨, 강서영(40)씨, 이승애(50)씨, 김경이(38)씨, 오경란(40)씨, 김현숙(49)씨, 박혜숙(39)씨

여자이기에 가장 빛났던 순간

“내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그 전율을 잊지 못해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들이 뭉쳤다. 카페 테이블 위에는 따뜻한 차와 생고구마가 준비됐다. 차가 잔에 따라지기도 전에 여성들은 입을 뗀다. 온통 자식 이야기로 가득하다. 딸만 셋인 김진옥 씨는 “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자로 태어난 삶이 아름답다”며 “딸들을 생각하면 나도 엄마에게 이런 딸 이였겠구나 싶어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여자의 인생에 아이를 낳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강서영 씨에게도 ‘아이’ 가 전부다. 강 씨는 “아이를 낳는 것도 축복이기만, 자라는 모습을 보고 함께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더 큰 행복”이라며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아이다”고 벅찬 마음을 표현했다.

이승애 씨는 “딸이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시키고 싶지 않다”며 “결혼과 육아가 아닌 다른 길에도 행복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경이 씨 또한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결혼을 성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우리나라가 저출산인 이유를 결혼이라는 한 단어로 결정지어버리는 것은 큰 문제”라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먼저다”고 따졌다. 이들은 모두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바라보니 막막하다. 엄마는 아이를 보며 괜한 미안함이 든다.

요즘 여성은 무조건 ‘선택제’

여자들은 백과사전이 되어야만 할까.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을 척척 쏟아내는 기계여야만 하는 걸까. 김현숙 씨는 “여자는 해야 할 역할이 너무나 많지만, 선택할 수 있어야한다”며 “여자이기 전에 나는 내가 아닌가. 나로써 살아가야할 의무도 분명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김 씨는 슬하에 딸이 하나 있다. 지금은 중국에서 어학연수 중이다. 하지만 용돈 한 푼 주지 않는다. 그는 늘 딸에게 스무살 이후 경제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김씨는 “용돈을 주기 싫은 부모가 어디 있겠냐”며 “그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역할이 부모가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오경란 씨도 동의했다. 오 씨는 “생물학적인 요소를 제외하고는 위험한 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 등은 여자가 하지 않아도 되지 않냐”며 “위험한 일은 무조건 남자가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이기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 씨가 대학 시절, 모꼬지를 갔을 때 일이다. 몸이 안 좋아 체력훈련을 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쓰러졌다. 함께 훈련을 하던 남학생은 끝까지 하라는 선배의 불호령이 내려졌지만, 오씨는 방에 들어가 쉬었다. 그는 “별거 아닌 사소한 일일 수 있지만, 그때 여자라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며 “그것도 차별로 보일 수도 있고 약자라는 의식이 깔린 결과일 수 있겠지만, 몸이 너무 안 좋은 상태에서는 쉴 수 있다는 이유 하나가 크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강서영 씨는 “시대가 많이 변화했다. 여자로 가장 힘든 삶을 살았던 것은 우리 엄마와 할머니 시대”라며 “나에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매일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여성 그리고 엄마들이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더 큰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외치는 워킹맘

지난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조기퇴근 시위‘3시 스톱(STOP)’참가자들이 빨간색 가발을 쓰고 남녀 간 임금 불평등을 규탄하는 시위를 했다. 한국 여성 임금이 남성의 6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후 3시부터는 사실상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자 오후 3시에 퇴근하자는 행사다. 임금 차별뿐 아니라 승진 차별, 육아 부담 그리고 터무니없는 혐오 등 한국 여성의 고통은 한둘이 아니다.

김현숙 씨는 “여자니까라는 말보다 큰 차별이 어디있겠냐”며 “그 말속에 이미 너무도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속상해했다. 이승애 씨는 “딸이 지금 취업 준비생인데, 남자 직원 우대인 기업이 많아 취업이 잘 안 된다”며 “딸 뿐만 아니라 조카도 결국은 폴란드로 유학을 갔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가부장제 때문에 여자를 생계 주체로 보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지금까지도 나아지질 않고 있다. 김 씨는 “여성의 지위향상과 사회진출이 국가발전의 중대 조건이아니라는 낮은 인식이 문제”라며 “뿌리 깊은 남성중심의 사고방식 탓”이라고 말했다.

박혜숙 씨는 “여성들의 절반이 출산과 육아로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못하고 능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사정이 이러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대학졸업 이상 고학력 여성의 취업률이 꼴찌에 머물고 있다. 이제는 차별을 넘어서 혐오까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모두 “지역에서부터 여성을 위한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며 “시도해보지 않고 변화를 바라기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집에서는 아내로 엄마로, 밖에서는 직장인으로 힘들고 지치지만 그래도 끝까지 해내야겠다는 일념은 여자이기 전에 ‘나’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별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된다. 뜻 깊은 날, 오가는 대화 속에 ‘희망’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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