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면 섬거리 스타사진관 여수복 사진가의 인생

▲ 스타사진관 여수복 사진가

떠올려보면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지나온 시대를 찬찬히 살펴보면 첫 돌, 입학, 졸업, 환갑까지. ‘기념’인 날에는 늘 사진관을 찾았다. 출장을 가기도 했다. 진상면 섬거리 스타사진관에는 90년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색이 바란 사진들도 지나온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필름카메라는 당시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오래된 사진 위로 켜켜이 쌓인 먼지를 툭툭 털자, 우수수 추억이 쏟아져 내렸다.

“김치, 치즈 해야지~” 눈을 감고 있는 친구, 앞니가 쏙 빠졌지만 좋다고 웃고 있는 친구들 표정이 하나같이 다 살아있다. 이렇게 살아있는 사진을 본 것이 얼마만인가. 진정한 ‘추억’이었다.

그때 그 시절에는 사진은 무조건 특별한 날에만 찍었다. 그렇게 한 세기가 지나가는 동안 사람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던 사진관들은 디지털카메라에 치이고 이제는 스마트 폰으로 인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찰칵’ 누른 셔터 수만큼
쌓아온 남편에 대한 그리움

22년 동안 스타사진관을 지키고 있는 여수복(63) 사진가 인생에는 늘 남편이 있다. 여수복 사진가는 처음부터 사진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때는 바야흐로 꽃다운 나이 스물넷. 하동이 고향인 여수복 사진가는 진상으로 시집을 왔다. 딸 하나, 아들 둘을 낳고 사랑하는 남편과 알콩달콩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중 1995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남편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남편을 잃은 슬픔은 깊어만 갔다. 하지만, 어린 자식들을 위해 남편의 업을 이어받기로 마음먹었다. 여수복 사진가는 “매정하게 가버렸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좋은 사람이자 남편이었다”며 “어린 자식들을 위해 남편의 업을 이어받아 여기 저기 사진을 찍어주고 다니게 됐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사진관에는 환갑, 돌 기념사진, 가족사진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문득, 어릴 적 시골집마다 마루 바람벽 위로 정겹게 걸어져있던 액자들이 떠오른다.

여 사진가는 “적어도 진상 사람들은 환갑, 칠순, 인물 사진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며 “동네 학교 졸업 앨범도 내가 직접 다 제작했다”고 말했다. 환갑이나 칠순 같은 잔치가 서너 집이 겹치는 날이면 정신없이 뛰어다녀야했다. 동영상도 찍었다. 그럴 때는 아들의 힘을 빌렸다.

사진은 기다리는 맛
그런 다음에는 추억이 되지

필름 카메라를 쓰던 시절에는 첫사랑에게 쓰는 편지 한 장처럼 설레었다. 어떻게 나올까. 필름에 담긴 자신의 모습이나 친구들의 모습이 어떻게 현상 돼 나올까는 상상하면서 기다리는 것 또한 두근거렸다.

한때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 하지만 지금은 주인 잃은 현상된 사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따뜻함을 가득 채우던 사진관은 쓸쓸함이 내려앉고 있다. 하지만 여수복 사진가는 행복하다. 그녀는 “에이, 바쁠 때는 바빠서 좋았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좋은걸”이라며 “오늘 오전에도 인물사진을 찍고 간 어르신이 계셨는걸.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을 묵묵히 지켜내고 있는 스타사진관은 여수복 사진가가 힘이 닿는 데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여 사진가는 “나는 나대로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찍을 것”이라며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 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드리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사진관 안으로 따뜻한 봄 햇살이 찾아들고 있었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