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 광양보건대학교 교수

김광희 광양보건대학교 교수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한 사람이 사람됨을 이루어 가는 것은 그 자신 혼자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성장하는 것이야 시간의 흐름에 맡기면 되겠지만 인격의 성숙과 발달은 많은 손길의 보살핌과 훈육을 필요로 한다. 좋은 가르침 아래에서라야 비로소 사람은 참된 모습으로 완성되어간다. 그 가르침을 베푸는 이를 가리켜 스승이라 한다. 스승을 마음에 모시고, 그의 업적과 정신을 칭송하고 오래 기리고자 하는 마음을 담으려고 우리는 이날을 기념한다.

나도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는 까닭에 스승의 날이 되면 여느 날과 사뭇 다른 마음으로 이날을 보내게 된다. 교수 생활을 막 시작하던 무렵, 나는 스승의 날이 몹시 낯설고 불편했다.

학생들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스승의 노래를 불러줄 때면 어서 노래가 끝나고 이 어색한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기만을 기다렸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누군가로부터 스승이라는 칭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거추장스럽고 부끄러울 수 없었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게 마땅한지 스스로 몇 번씩이나 되뇌었다. 이런 감정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먼저 배운 지식을 뒷사람에게 전해주는 지식 전달자로서의 역할은 비교적 충실히 해왔다고 자부하지만, 학생들의 인격적 성숙에 내가 진정 무슨 이바지를 했는지 생각하면 예나 지금이나 허망할 따름이다. 사람들은“ 이 시대에 진정한 스승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 내가 경험하는 부끄러움의 본질 역시 사람들이 던지는 이 물음에 내 스스로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교사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참 많다. 인생의 목표를 그렇게 정한 이유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교사라는 직업이 갖는 근로 여건이 마음에 들어 그 길을 가려는 청년들이 많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 결과 사도(師道)를 생각하는 사람, 사표(師表)가 되고자 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촌지와 선물이 스승의 날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버렸고, 촌지 문제로 인한 오해를 없애려고 스승의 날을 임시 휴업일로 정하는 학교도 생겨나더니 마침내 법으로 현실을 규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학생이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어 개인적으로 교사에게 선물하면 재료 가격과 상관없이‘ 김영란법’ 위반이라고 한다. 이 법에 따르면 교사와 학생은 더 이상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성적과 수행평가 업무를 매개로 한 쌍방의 이해 관계자일 뿐이다. 이것이 2017년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단면이지만,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우리 모두가 자초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래서 더 부끄럽다.

<논어> 자한(子罕) 편에는 스승인 공자에 대한 제자 안연(顔淵)의 찬송이 나온다.“ 선생님의 도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어 볼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보면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시어 학문으로써 나를 넓혀 주시고 예로써 나의 행동을 단속해 주십니다. 공부를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으며,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해 선생님을 좇아가면 새로운 지표를 또 하나 우뚝 세워놓으시니, 비록 좇고자 해도 따를 길이 없습니다.”

스승의 날 노랫말이 된‘ 우러러 볼수록 높다’는 안연의 표현만큼 스승에 대한 겸손과 존경을 표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이런 존경심을 우러나오게 한 스승의 태도를 같은 책(자한 편)에서는‘ 절사(絶四)’ 라 하여“ 편협하게 뜻을 세우지 않고, 장담하지 않으며, 고집을 부리지 않고, 사사로움이 없다.”라고 소개하였다. 네 가지 태도가 스승다움의 기준이고, 제자의 칭송을 받을 만한 덕목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글을 읽는 세상의 모든 스승들과 스승이 되기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이‘ 절사’의 가치로 자신을 돌아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끌어 가며, 학문을 베풀어 학생들의 생각과 지혜를 넓혀주고, 예법으로 행동을 가르치며, 먼저 공부하는 태도로써 학생들 앞에 새로운 지표를 세워주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진정한 스승이 있는가를 묻는 세상을 향한 웅변의 답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