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바다’의 기억을 지닌 사람들

광양시에는 280여개의 마을이 있으며, 각 마을 마다 고유의 특성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 시민신문은‘ 이장님 막걸리 한 잔 하시죠!’를 기획해 직접 지역내 마을을 찾아다니며각 마을의 이장님을 만나 뵙고 생생한 마을의 소식과 각 마을의 보석 같은 숨겨진 이야기,아쉽게 잊혀져가고 있는 이야기, 골목과 토담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며 기록한다. <편집자 주> 막걸리 협찬: 광양주조공사

‘삼바래기 몬당’이라 부르는 북쪽에 위치한 산에 올라보면 마을 구석구석이 한눈에 다 내려다보인다. 바로 내다보이는 곳에는‘ 컨테이너부두’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곳은 과거‘ 하포항’으로 여수, 부산은 물론이고 일본에 까지 이어지는 해상교통의 중심지였다. 또한 주민들 대다수가 이곳에 기대 어업에 종사하며 삶을 일궈갔다.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골약동 하포마을에 박이복 통장(66)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골약동 하포마을 박이복 통장.

하포마을은 150여 가구 350여 명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이 고추, 마늘, 참깨 등의 밭농사나 벼 농사에 종사해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박 통장은“ 구봉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주고‘ 황금바다’라고 불리는 앞바다에서는 고막, 굴, 바지락 등 수산물이 풍부해 그 어느 마을보다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며“ 마을에 소득이 좋다보니 인근 마을주민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그럴 바다가 없으니 대부분 농사를 짓지만 큰 수익은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함께 자리한 주민 한 사람은 ‘우리 마을 역사는 바다를 빼고는 논할 수 없다’며 하포의 옛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포항은 1912년 개항했다. 여수와 부산, 일본까지 이어지는 전남 동부 6군의 해상교통 중심지가 됐고 금세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몇 년 뒤 골약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 등이 옮겨왔고 하포항의 중심지인‘ 장길 나루터’에는 장이 서기도 했다.

박 통장은“ 일제 강점기 때 옥곡이며 진상이며 광양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이 하포항에 집결됐고 그것들이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다”며 “어렸을 때 사회책을 보면 다른 곳은 나오지 않아도 우리 마을은 지도에 표기가 돼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시절에는 정확한 이유를 몰랐지만 어린마음에 우리 마을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고 전했다.

하포마을은 하포항 개항과 동시에 행정, 교육, 교통, 경제의 요지로 부상했지만, 이후 1930년대 중반 호남선 철도가 순천에서 여수까지 연장돼 개통되고 여수항까지 개항되자 또 다시 변화의 물결이 밀려왔다. 이후 하포항은 폐항됐지만, 옛부터 마을의 형상이‘ 홍선출해(커다란 배가 바다를 향해 힘차게 출항하는 모습)’라 큰 항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고 실제로 컨테이너부두가 건설됐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박 통장은 올해 3년차 통장직을 맡고 있다. 지금은 농사를 짓지만 이전에 양식업에 종사했으며, 어촌계장을 20여 년간 맡아왔다. 반평생을 함께 동고동락해 온 마을 주민들은 그에게 그 무엇보다 큰 의미라고 했다. 특히 마을에는 100여명의 노인들이 있는데, 그들의 불편사항을 개선하고자 통장직을 맡은 이후 줄곧 마음을 쓰고 있다.

박 통장은“ 마을회관 뒷편에 경모정 건물이 있는데 바로 붙어있어 어르신들이 365일 어두컴컴하니 빛을 볼 수가 없어 매우 안타깝다”며“ 그동안 경모정을 이전에 신축하고 싶어도 여건상 그것이 불가능해 속상했는데 올해나 내년쯤에는 개선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뻐했다.

약 15년 동안 하포마을은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었다. 도로 안길포장은 물론이고 70년대에 지어 낡은 마을회관 보수도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경모정 신축은 그림의 떡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될 것이고, 마을 회관앞에 마련된 부지에 경모정을 신축해 어르신들이 편하고 즐겁게 생활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박 통장은“ 마을 주민들은 물론이고 청년회의 회원들이 마을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고 하나로 의견을 잘 모으니 어떤 일이든 추진하면 이뤄진다는 게 하포마을의 자랑”이라며“ 든든한 지원군인 주민들이 있으니 남은 임기동안 경모정은 물론이고 마을 안길이나 농로 등을 개선하는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함께 둘러앉아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주민 한 사람이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 몇 장을 보여주면서 “저번 달에는 우리 마을 사람들은 버스를 3대나 불러서 경주 불국사로 관광 갔어. 청년회가 주최해서 마을 효도관광을 보내줬거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라고 말했다.

이에 박 통장은“ 옛날에는 마을이 워낙 크다보니깐 5개 반으로 쪼개서 마을 체육대회도 개최하곤 했는데 이제는 나이든 사람들이 많고 다들 바쁘게 사는 시대”라며“ 예전만큼은 못해도 매년 명절에는 다 함께 모여 민속놀이도 함께 즐기고 정월대보름에는 주민들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의 전통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와는 많이 그 모습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하포마을’의 주민으로서 전통과 정을 이어가려는 그들이 있기에 여전히 마을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막걸리 잔을 높이 든 주민들과 박 통장은‘ 하포를 위하여!’를 큰 소리로 외치고 잔을 비웠다. 그 외침이‘ 삼바래기 몬당’을 훌쩍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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