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완역본 이우헌 선생 훈가서...자손들의 삶을 밝히다

한 집안의 가풍은 조상과 조상의 가르침을 따라 면면히 내려오는 것이다. 선대의 가르침은 후대에 이어지고 또한 후대로 이어지며 그 집안의 정신이 차지하는 정수리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몸의 가짐과 마음의 가짐이 정하고 바르기를 기대하는 마음, 그 마음을 간직해 온 선대가 후대에게 다시금 그 마음을 전하고 남기는 일에 어찌 삿되고 그릇된 바가 있을 수 있으랴. 정히 살펴 그 간곡한 마음을 오늘의 삶에 이어이어 사는 일 또한 미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든 집안마다 가훈(家訓)을 정해 삶을 살아가는 기본으로 삼는다. 가훈에는 그 집안사람들이 지향하는 목적과 자녀교육의 방향, 도덕율이 함축돼 있으며, 가훈의 번짐이 학교의 교훈(校訓)이 되고 회사의 사훈(社訓)이 되고 기관의 관훈(官訓)이 되고 더욱 더 크게 번져 국시(國是)가 된다.

그렇듯 광양 땅에도 후대의 바름을 바라며 선조가 남긴 훈가서(訓家書)가 면면히 내려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훈가서는 집필된 지 수백년을 내려오며 한 집안의 살아야 할 바를 밝히고 있고 최근에는 한글본으로 번역, 발간되면서 읽고 배움에 덕을 더하고 있다.

이우헌, 그는 정종의 제십남 덕천군의 제십삼대손으로 예로부터 옥룡면 추산리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 후대가 여전히 그 터전을 지키며 광양에 살고 있다. 그는 살았을 적 몸의 정갈함과 마음의 예를 중히 여겨 후대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것을 찾다 이윽고 후대가 거울로 삼을 수 있는 바를 남기니 그것이 바로 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이우헌훈가서(李愚軒訓家書)다.

이우헌훈가서는 충효를 근간으로 극기(克己), 정심(正心), 신언(愼言), 사친(事親) 등 삼십육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우헌 선생은 이 훈가서를 집안에 남기면서 <인생이 세간에 있어서는충효 뿐인 것이라 충을 하면 곧 자기의 몸을 다 바치고 효도를 하면 곧 자기의 마음을 다한 것이니 사람의 자식이 되어서 반드시 행하여야 할 일이니라>라고 일렀다. 또 이르되 <세상의 사람이 다 산업으로써 그 자손에게 이를 물려주려 하나 나는 다만 충과 효의 두 글자로써 이를 자손에게 물려주려 하니 산업은 쉽게 없어지되 충효는 영원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이 같은 선생의 훈가서는 지난 1932년 옥룡면 추산리 상산마을에서 태어나 광양군수로 재임하다 순직한 고 이윤하 군수가 집안 사고에서 잠자고 있던 것을 발굴해 오늘에 전해진다. 그 바름이 여일하고 넓으니 이 씨 집안을 넘어 우리지역의 소중한 유고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윤하 군수는 그토록 바랐던 이우헌훈가서의 번역본을 생전에 이루지 못했다. 누구나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하고 일일이 이를 살피다가 간행직전인 지난 1991년 11월 3일 재직 중에 순직했기 때문이다.

결국 훈가서 한글본은 그의 후손 대에서야 빛을 봤다. 그의 아들 이은항(현 국세청 근무) 씨가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번역과 교정을 완료했고 이윽고 발간했다. 이를 집안을 중심으로 배포하면서 한문과 친숙하지 않은 어린 세대들도 훈가의 뜻을 이어받고 있다.

이은항 씨는 발간서문을 통해 “늦게나마 훈가서를 남기신 어른과 번역 간행에 애쓰시던 분의 덕을 기리며 이 훈가서를 오늘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우헌 선생의 후손이자 광양시청에 근무하고 있는 이은관 씨는 얼마 전부터 가문에서만 훈육서로 내려오는 것이 안타까워 페이스북을 통해 36선에 이르는 이우헌 선생의 가르침을 알리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그는 “이우헌훈가서는 우리 자손들의 삶의 지침서가 되고 있고 집안의 가풍이 모두 담겨 있다”며 “광양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훈가서의 내용이 중용 등 유교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정수들을 모아 후손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라며 “형제는 물론 자녀들까지도 필독서로 권하면서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 자녀교육을 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활을 하면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는 물론 가정과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좋은 가르침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우헌 선생의 이름은 기원(祺遠)이며 자는 덕오(德吾)다. 우헌은 그의 호다.

*고 이윤하 군수는 옥룡면 추산리 상산마을에서 1932년 태어났다. 공무원 시절 청렴, 강직하기로 이름난 고 이윤하 광양군수는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내무공무원으로 입문, 순천시청 공보실장, 전남도 서무과장, 광주시 도시국장, 광주시 동구청장, 진도·담양·강진·장흥군수를 거쳤다. 그러나 광양군수로 재임하던 지난 1991년 11월 3일 광양군민의 날 체육대회 행사장에서 과로로 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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