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 광양사랑의교회 목사

라종렬 광양사랑의교회 목사

광양 진상쪽을 가다가 안타까운 풍경을 봤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산에 아직 붉은 기운이 남아 있어서 아직도 잎이 다 떨어지지 않았나 싶어서 가까이 가 보았더니 그것은 단풍이 아니라 대봉감 이었습니다. 가격하락과 감을 딸 수 있는 인력이 없어서 감을 따고 출하를 해도 인건비는 커녕 되려 손해를 보게 생겼으니 아예 수확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버린듯 싶었습니다. 재배한 농가의 시름이 달려진 감만큼이나 많겠다 싶으니 마음이 착찹했습니다. 시내에선 사먹을 때 턱없이 산 가격에도 비싸다 했는데 정작 농부들이 하는 수고를 생각하면 그것도 싼게 아닌데 달린 감을 보니 맘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어릴적엔 떨어진 감홍시 하나 주워 먹는 일도 눈치봐야 했고 남의 집 감이면 더더욱 떨어진 것도 함부로 못먹었을 만큼 귀했던 것인데 요즘엔 먹을것이 지천이어서 그런지 수요와 공급을 못맞춘 것인지 몰라도 씁쓸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냥 대봉감을 따서 알맞은 장소에 보관하면 달고 예쁜 홍시가 되는데 나무에 그대로 달린 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검붉은 색으로 변하면서 꼭 늙어가는 노인들의 피부처럼 윤기도 색도 바래가서 몰골이 흉하게 변해가다가 마침내 곯아 서 떨어지거나 그대로 검게 말라버립니다.

잘 익어갈 때는 때깔도 곱고 윤기도 나고 탱클탱글 탐스러운데 철이 지나니 어느새 흉하게 변해 버립 니다. 아마 감이 열린 가지를 잘 전지해 주어야 다음 해에 감이 더 많이 열리게 된다고 하는데 이래 저래 수확을 하지 못한 감이 농부의 시름을 더 깊게 만드나 봅니다.

연말연시를 보내면서 많은 단체와 모임들의 리더십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한해의 일들을 마무리 하면서 그 성과를 논하여 잘한 일들을 치하하고또 부족한 점들은 다시 재고하여 새롭게 다짐을 하면서 이전보다 더 나은 일들을 소망하면서 정리하고 또 새해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꼭 한 두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서 모임의 온도와 색깔이 많이 좌우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든 모임이든 시간이 지나 연륜이 쌓여 가면 당연히 더 성숙하고 노련해 져서 더 무르익어 가야 하는데 꼭 이런 과정에서 덜익고 넘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익어서 곪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부패한 경우이고, 전자의 경우는 아직 더 성숙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둘 중에서 지속되는 모임은 그래도 부족하지만 아직 발전 가능성이 있는 전자의 경우입니다. 부패한 모임은 이제 지속할 여력이 없어서 뿔뿔히 흩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니 사람이 잘 익어가고 무르익어 갈 즈음에는 떠날 때, 내려놓을 때, 넘겨줄 때를 잘 알고 마무리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고 공동체를 위해서도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잘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은 떠날 때도, 떠난 자리도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하는가? 생물학적으로는 여자는 22세, 남자는 24세까지 신체적인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 뒤로부터는서서히 신체적으로 하강하는 과정이 진행됩니다. 하지만 20대 후반이나 30대까지는 아직 하강한다거나 늙어간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40이 넘어 가고 성인병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조금씩 늙어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체적인 성장에 대한 것이고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성숙은 이러한 한계가 없습니다.

사람은 성장해 가는 동안에는 성숙해가고 익어가는 것이지 늙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간다면 그는 겉사람은 후패해져 갈지 몰라도 속사람은 계속 성장하고 잘 익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배움을 멈추고, 성장을 멈추고, 소통을 멈춘다면 그땐 급격히 늙어갑니다. 그래서 익어갈 때는 곱고 예쁘고 아름답던 것이 늙어가면 모든 것이 추해집니다. 겉모양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잘 익어간 이를 만나면 넉넉한 언행심사에 위로와 격려와 힘을 얻어 그 광채에 많은 것들을 또한 배우지만, 성장이 멈추고 늙어간 이를 만나면 괜스레 답답하고 블랙홀처럼 진을 빼는 느낌이 듭니다.

평균 수명은 늘어가는데, 그래서 겉사람도 늙지 않고 팽팽하게 하는 기술도 늘어 가지만, 정작 속사람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기술과 노력 그리고 공부는 자꾸만 게을러 집니다. 정년이 빨라지고 다른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이 해야 할 일과 설자리들이 줄어가는 상황속에서 우리의 속사람을 개발하고 무르익어가지 않는다면 가는 청춘을 못잡고 오는 백발을 막을 수 없다 하는대로 도태의 길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 이 글이 눈에 들어온다면 여전히 우리에겐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속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을 지속하므로 늙어가지 말고 익어가는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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