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임금 줄이려 휴게시간 늘리는 ‘꼼수’

한숨과 탄식만 내뱉는 경비원의 밤샘 근무


“똑똑”
1월 1일 아침, 반가운 손님이 경비실 문을 두드렸다. 바로 ‘7530원’과 일자리 안정자금 최대 ‘13만원 지원’이다. 광양한 아파트에서 10여 년 동안 일한 김갑 을(가명·65)씨는 기쁜 마음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경비실 밖으로 붙여진 경비원 '휴게시간' 안내문.

어지럽혀진 분리수거장을 치우는 데도 몸이 가뿐하다. 큰돈이 아닐지라도 그간 일 해온 노고를 알아주는 듯해 고마운 마음만 가득하다. 경비실의 묵은 먼지를 닦아내며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해본다.

그때였다. 경비실 문 앞으로 ‘경비원 식사 및 휴게 시간’이라는 안내문이 붙여졌다. 정오부터 14시까지 중식시간, 17시부터 19시까지 저녁시간. 무려 2시간 씩 총 4시간의 식사와 휴게 시간이 상정 된 것이다. 갑을 씨의 얼굴에 일순간 그늘이 졌다.

갑을씨는 지금껏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휴게시간이라는 말속에는 늘 ‘근무 장소를 지키며 대기’라는 무언의 압박이 숨어있었다. 어쩌면 정말 보장된 ‘휴게시간’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난 12월, 월급 통장에 찍힌 액수는 172만원.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최대 13만원을 받기 위한 자격조건은 근로자 30인 미만을 고용 하고 월평균 보수액 190 원 미만 노동자를 1개월 이상 고용 유지해야 한다. 고로 1월 김 씨의 월급 액수는 변해도 변하는 것이 아니다.

휴게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분리수거 중인 경비원. (이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주민들의 ‘손발’로 아파트 관계자들 에게는 ‘을’의 역할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칠 만큼 지쳤다. 정부의 방침도 꼼수로 대응하는 아파트 관계자들이 애석할 뿐이다. 아니, 이제 나라도 믿을 수가 없다.

갑을씨는 좌절했다. 결국, 최저임금 인 상은 인력 구조조정과 함께 휴게시간은 늘고 임금은 그대로로 돌아왔다. 작은 희망에 매번 속고 속기를 반복하고 있다. 속상함과 억울함이 동시에 물밀 듯밀려온다. 그에게 최저임금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임금이 아니었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임금은 대부분 시급으로 산정된다. 경비원 임금 편법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매년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법 으로 임금인상을 회피해 왔다. 휴게시간은 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돼 최저임금 인상분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주자측의 일방적인 강요에 의한 휴게시간 조정은 최저임금을 회피하기 위한 엄연한 ‘편법’이다.

갑을씨는 고개만 떨굴 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가 일하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도 그런 경비원의 사정을 딱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다.

더욱 안타까운 건 ‘슬퍼할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갑을씨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손자와 손녀 에게 용돈을 주는 할아버지로, 자식들에 게는 당당한 부모로, 무엇보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성취감도 경비원 업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갑을씨는 ‘휴게’시간에 ‘일’을 하며 그들을 향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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