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 칼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영미’ 열풍과 빙상계 세대교체로 대변되는 이번 올림픽은 17일간의 일정 내내 말할 수 없는 큰 감동과 놀라움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스피드를 겨루는 빙상 경기의 속성상 메달의 색깔은 백분의 일초로 갈리곤 한다. 쇼트트랙에 참가한 우리 남자선수는 백분의 7초 차이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백분의 일초 차이란 감지할 수도 없고, 감지할 필요도 없다. 찰나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미세한 간극이 준비기간의 눈물과 땀에 대한 보상이 된다. 그게 올림픽이고, 경쟁이다.

올림픽 경기만큼이나 치열한 게 취업 경쟁이다. 모두가 올림픽 축제에 심취해 있는 동안 대학 졸업생들이 사회로 나왔다. 해마다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축하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이 청년들이 세상이라는 황량한 전장에서 취업의 목표를 향해 고통스럽게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를 맞춰 기업에서는 신입사원 공채계획을 발표하였고, 며칠 뒤면 공무원시험도 시작된다.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경쟁이 곧 시작된다. 9급 공무원 시험만 해도 그렇다. 문제 하나만 틀려도 낙방이 된다고 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치열하다. 어떤 능력을 갖추었느냐보다는 누가 실수를 더 하느냐를 찾는 방식으로 시험이 변질된 지 오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취업 준비생의 삶이라는 게 백분의 일초를 다투는 올림픽 경기나 마찬가지로 마이크로의 기준선을 올라타고 걸어야 하는 아슬아슬한 긴장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취업준비생의 생활을 도대체 얼마나 계속 해야 하는 것인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지난 가을학기에 실용문 작성에 대해 강의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가장 긴요한 실용문이라면 자기소개서이다. 일반 기업에서는 1차 서류전형에서 자기소개서 제출을 요구한다.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쓰는 게 뭐 어려울 게 있겠나 생각한다면 아직 7080세대의 사고방식으로 사는 사람일 게다.

요즘 직장에서는 20~30년의 인생사를 간략히 서술하는 방식의 자기소개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조직이나 타인을 위해 나에게 예상되는 손해를 감수하고 일을 수행한 경험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기술하라” 하거나 “예상치 못했던 문제로 인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해내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던 경험이 있으면 서술하라”는 식의 질문을 던져주고 거기에 맞춰 자신의 경험을 기술하도록 요구한다.

취업전선에 갓 뛰어든 청년들이라고 하면 이제 20대 중후반일 텐데, 그동안 가정과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착실히 공부한 경우라면 이런 질문에 답할 거리가 준비되어 있을리 만무하다.

세상의 찬바람을 처음 맞는 청년들이 도대체 언제 조직이나 타인을 위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달려든 일이 있었겠으며,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던 경험이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런 물음이 이제는 사기업에까지 일반화되어 가는 추세다.

사회생활이라고 해봐야 학과 선후배 사이의 인간관계나 대학 동아리 활동이 전부일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작은 경험을 거창하게 부풀려 쓸 수밖에 없다.
이른바 ‘자소서’가 ‘자소설’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고, 자소서 대필, 자소서 컨설팅이 등장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자기소개서에 남다른 몇 줄을 추가하려고 일부러 학교를 휴학하고 인턴십에 참여하거나 하다못해 해외 배낭여행이나 워킹홀리데이라도 다녀오려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른바 스펙싸움에 내몰리는 것이다. 학벌, 학점, 토익, 자격증, 어학연수, 수상 경력, 인턴 경험, 봉사활동이 8대 스펙이란다. 스펙만 좋으면 취업에 반드시 성공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요즘에는 ‘스펙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유행하고 있다.

경쟁자보다 백분의 일초가 더 아쉬운 올림픽 선수들을 보면서 경쟁자보다
스펙 한 줄이 더 필요한 청년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가에 번지는 스펙 경쟁이 오히려 염려스러운 것은 쓸데없는 과잉경쟁에 청년들의 젊음을 허비하게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젊었을 때는 두 번 거듭 오지 아니하고 하루에 새벽도 두 번 있지 않나니” 하며 노래하였다.

인생 전체를 두고 볼 때 청년의 때에 해야 할 마땅한 일이 있음을 일깨우려는 의도에서였다. 그게 적어도 지금의 스펙 경쟁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온 취업철에꿈같은 얘기일지 모르나, 청년들이 스펙보다 더 이상적인 일, 자신만의 인생철학과 가치관을 세울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일에 마음을 쏟으며 청년답게 살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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